말없는 토양과 더불어 살며
말없는 토양과 더불어 살며
  • 이상훈 교수
  • 승인 2009.08.25 19:18
  • 호수 1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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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

 

이상훈 환경공학 교수

 

토양은 모든 생명체의 출발점이자 최종 분해가 동시에 일어나는 곳이다. 성장에서부터 생명이 다한 동∙식물, 폐기물 그리고 모든 오염물질을 받아들이며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시킨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모든 것을 제공하며 묵묵히 감내할 뿐이다. 그래서 대지는 만물의 어머니인 가이아(Gaia)로 인격화된다.

대지를 구성하는 토양은 공기나 물 같은 다른 환경매체보다 포용력과 완충능력이 훨씬 커서 우리에게 쉽사리 불평을 하지 않는다. 우리 장기 중 가장 참을성이 많다는 간장에 비유할 수 있겠다. 과거 경험을 보면, 소득이 향상되면서 사람들이 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후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점차 공기의 질에도 관심을 가진다. 정수기 다음에 공기청정기가 등장한 것을 기억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물과 공기의 오염이 우리에게 미치는 피해는 가시적이면서 신속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빠를 수밖에 없다. 반면 토양은 그 피해의 모습을 잘 나타내지 않는다.

자연과 생태계 변형을 야기하는 대규모 토목, 건설 현장에서도 ‘환경친화적’이라는 그럴듯한 조어로 사용되는 탓에 정작 환경의 본질이 애매해지고 있으나, 환경은 한마디로 ‘생명’이다. 즉, 건강하고 질 좋은 생명유지가 환경의 본질이며 이는 우리와 긴밀히 관계를 맺는 생태계의 다른 종들이나 매체의 건강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토양은 공기, 물과 함께 지구를 구성하는 3대 권역의 하나이며 지구 전체 물질과 에너지 순환을 조절하는 중요한 인자이다. 인간은 토양 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내는 온갖 오염물질들이 토양으로 흘러들어가게 되며, 이는 다시 성장 중인 식물, 주변 강, 호수 그리고 대기로 이동하면서 오염을 확산시킨다. 이 때 토양에 존재하는 원소들, 특히 중금속은 다양한 반응과 인자들에 의해 조정되어 사람 또는 성장하는 식물로 노출, 전이된다. 특히 폐 광산에 남겨진 유용 원소를 채취하고 남은 광물찌꺼기, 탄피 등으로 오염된 군사격장, 지하유류저장고의 누출 등 다양한 오염원들이 토양에 오염물질을 방출한다.

우리 실험실은 ‘생물환경지구화학’이란 조금 긴 이름을 가졌다. 토양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과 오염현상은 무기인자 뿐 아니라 미생물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학적 인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무기인자와 생물학적 인자와의 상호반응과 상관관계는 국제적으로 연구 초기단계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연구 주제와 가능성이 열려있는 분야이다. 중심분야인 토양∙지하수 중금속 오염문제 뿐 아니라 탄소를 광물과 함께 침전시키거나 지하수층에 가두는 이산화탄소 저감방법 연구, 미생물에 의한 나노 철입자 형성 등, 응용 분야와 순수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군기지 이전, 폐 광산 주변 농작물 오염 등의 여러 현안들은 우리 실험실을 더욱 바쁘게 하고 있다.

공학과 과학은 관점에 따라 ‘어떻게?’와 ‘왜?’의 차이로 요약될 수 있다. 공학 중에서도 환경공학은 현실학문이자 현장을 출발점으로 한다. 그러나 ‘왜?’를 고려하지 않는, 즉 과학의 기초원리가 이해되지 않은 현상기재적 연구결과는 생명력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실험실은 현장조사와 기초 연구를 병행하면서, 나노입자나 수 억분의 일의 농도를 다루는 미시세계와 지구시스템이라는 거시세계를 포괄적 시각으로 아우르고자 한다. 오늘도 실험실 구성원들은 말없는 토양과 같이 화려한 allegro(빠르게)가 아닌 andante(느리게, 꾸준한)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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