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만 해요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만 해요
  • 배도현 수습기자
  • 승인 2013.05.09 16:32
  • 호수 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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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 강연회

▲ 일러스트_봉현우 기자
▶축제, 행사가 특히 많은 5월 달은 기념일도 많다. 노동절이 대표적이다. 본교 역시 메이데이의 날을 기념해 지난 29일(월)부터 1일(수)까지 메이데이 기획단이 여러 행사를 기획했다. 사회학과 메이데이 기획단 ‘반창고’의 주최로 열린 청년유니온의 강연을 살펴봤다.

 

대학생도 노동자다!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은 “대학생도 노동자이다!”라는 강의주제를 통해 대학생의 역할을 되물어 봤다. 누구나 알다시피 더 이상 대학 졸업장은 취업 보증서가 아니다. 과거 20% 정도에 불과했던 대학 진학률은 80%에 다다르고 있다. 대학진학률에 따라 변화된 사회와 현실을 나타낸다. 대학교육이 보편화되었지만 오히려 등록금은 올랐고 이에 대학생이자 노동자로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런 대학생에게 사회는 너무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 중 하나는 주휴수당이다. 주휴수당이란 근로기준법 제55조에 따라 아르바이트생, 비정규직 등에 상관없이 주당 15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1일치 임금을 유급휴일로 주도록 되어있는 제도다. 즉, 1주일 동안 당사자가 일하기로 한 날짜에 결근 없이 개근을 했다면, 해당하는 주 중 하루는 일을 하지 않고도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밑바닥을 파헤쳐보면 상황은 녹록치 않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주휴수당을 잘 모른다. 주휴수당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은 무관심하다는 것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 무관심하다는 것의 기본 전제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것의 전제는 주휴수당이 노동자와 밀접한 개념이지, 대학생과는 별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로, 노동자와 대학생을 분리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기업은 이 점을 노린다. 주휴수당을 지급해야함에도 대다수의 기업들은 현재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주휴수당과 관련해서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급주휴제도 적용률은 5.2%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청년 유니온이 지난달 서울지역 101곳 편의점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아르바이트생의 7.1%만이 유급주휴제도를 적용받는다고 했다.

청년유니온 단체 사이트에 게시된 공지에 따르면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이 정부로부터 전국단위 노동조합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구직자도 조합원 자격을 얻은 것은 청년유니온이 처음이다. 구직자를 합법적으로 조합원에 포함시키는 게 가능해지면서 활동 폭이 보다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청년유니온은 청년들을 채용할 기업들을 상대로 구직·근로 조건 협상에도 적극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청년들의 실질적 변화, 그 시작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그 기본은 아르바이트 자체도 노동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노동기본권 역시 당연한 권리로써 지켜져야만 할 것이다.

양 팀장은 편의점 실태조사, 최저임금 사업 등을 소개하며 “떼인 돈 수억을 받아냈던 주휴수당 사업도 처음엔 한 사람의 아르바이트 생, 발 벗고 나선 열 명의 조합원, 공감하는 수백, 수천 명의 청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성과다. 당신 한 명으로부터도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 당신도 청년유니온이 했던 것처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업 안 되는 것이 내 탓...? 

‘박지성의 평발, 연습벌레 강수진, 평범한 의대생 안철수’의 소개와 더불어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더불어 "꿈꿔라! 힘내라! 너희의 꿈을 활짝 펼쳐라!"고 외친다. 이는 공익광고의 내용이다. 꿈을 강조하면서 국가 스스로는 청년실업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린다. 취업실패를 개인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리고 개인의 잘못이라고 인식시키는 암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데올로기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방치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서면서 시장의 자율성이 증대되면서 국가의 책임이 줄어들었고 그에 대한 피해는 개인의 무능력으로 정당화 됐다. 개인의 무능력의 탓이라면 국내 총 생산이 줄어들었을 테지만 오히려 소득은 늘어났다. 예컨대 2011년에는 전년 대비 2.1% 증가했으며, 2012년에는 전년 대비 3.0% 로 증가했다.

이에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의자가 정규직의 자리라면, 우리는 ‘어떻게든 앉자’라는 생각으로 그저 바쁘게 살아왔다. 의자에 앉지 못하면 결국 ‘비정규직’으로 실패자가 될 테니 말이다. 바쁘게 살아온 것을 결코 폄하 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10명의 사람이 의자에 앉으려하는데 의자는 6개밖에 없다. 결국 의자에 앉지 못한 4명이 생긴다. 4명의 능력이 앉은 6명보다 부족하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의자에 앉기 위해 많은 열정을 쏟고 있다. 개인의 업무 수행능력의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4명은 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같은 맥락이다. 양 팀장은 우리 사회에 대해 “취업이 안 되는 이유는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의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두들 열정 사회의 메아리 속에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 결국 노동자의 이야기를 남 얘기가 아닌 우리 엄마, 우리 아빠, 내 동생, 내 자식들의 이야기로 지각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그런 순간순간이 모여 지금도 메아리 치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가 연대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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