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非)민주적 학칙, 언제즘 비(Be)민주적 학칙이 되려나?
비(非)민주적 학칙, 언제즘 비(Be)민주적 학칙이 되려나?
  • 이가현 기자
  • 승인 2013.05.23 16:00
  • 호수 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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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민주적이라 판단되는 본교의 학교회칙(이하 학칙)의 일부

▲ 국민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민주주의를 훼손시켰던 '유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죽은척 했을 뿐 죽진 않았다. 대학에서 유신은 '학칙'이란 형태로 살아남아 여전히 학생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총장이 휴학 명령을?

제21조(휴학) ③ 총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정상적인 학업의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인정되는 자에게 휴학을 명할 수 있다.

 

총장이 총학생회 해산을?

제89조(학생활동) ② 학생은 총학생회 및 그 산하단체 이외의 단체를 조직할 수 없으며, 총학생회가 원래 목적이외의 활동을 할 때에는 총장은 이를 해산할 수 있다.

 

학교에선 공부만 해야해?

제92조(학생활동의 제한) 학생은 학내에서 학업과 무관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없으며, 학업·연구 등 학교의 기본적인 기능과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개인적 또는 집단적인 행위(성토, 시위, 농성, 등교거부, 확성기사용 등)를 할 수 없다.

 

총학생회 집회도 승인이 필요해?

제93조(집회 및 행사) 총학생회가 집회 및 행사 등의 활동을 하고자 할 때에는 총장 및 교정별 부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에 관한 세부절차는「학생단체의등록과운영에관한규정」으로 정한다.

 

안심한 순간 비민주적 학칙은 등장한다

학칙, 총장 퇴진을 기원하는 축제 하지마! 

‘Anyway, good night.' 2008년 서남표 전 카이스트 총장은 총장의 개혁 정책에 대한 학생 간담회 도중 이 말을 남기고 일방적으로 대화를 종료한 채 간담회장을 나갔다. 총장 정책에 대한 학생들의 우려의 말을 견디지 못하고 불통의 상징을 남긴 채 퇴장한 것이다. 이후 카이스트에는 서 전 총장의 과도한 경쟁주의 정책의 풍파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자살하는 학생들도 나왔다. 학생들은 크게 반발했다. 이윽고 카이스트 학생들은 앞선 사건을 본떠 지난해 ‘애니웨-이 굳 나이트크럽’이란 제목으로 축제형식의 시위를 했다. 행사의 목적은 서 총장의 퇴진과 민주적인 학교 구성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학교는 ‘면학분위기’를 저해한다며 이를 막았다. 근거는 ‘학생활동지침’이었다.

학교는 행사를 불허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행사를 주회하는 학생들을 징계하겠다’고 학생들을 협박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행사를 꿋꿋이 강행했다. 총학생회 측에서도 ‘징계시 가만있지 않겠다’고 나섰다. 결국 사건은 징계 없이 끝났다.

사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애니웨-이 굳 나이트크럽’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비민주적인 학칙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왔다. 개정을 요구할 때마다 학교가 제시한 논리는 “사(死)문화된 조항인데 굳이 고칠 필요가 있겠냐” 이었다. 그러나 사문화된 조항은 죽은 척을 했을 뿐 죽진 않았다. 학교는 조항을 다시 등장시켰다. 해당 조항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시 죽은 척을 하기 시작한 조항은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 

 

학칙, 너 총학생회장 아니야! 

서강대학교에서도 죽은 척 했던 학칙은 학생들을 압박했다. 지난해 10월 제 42대 서강대학교 총학생회(이하 42대 총학)는 ‘김제동이 어깨동무합니다’라는 콘서트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학교는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사를 학내에서 열 수 없다’는 학칙에 따라 콘서트를 막았다. 이에 42대 총학과 학생들은 반발했다. 일차적으로 연예인 김제동의 콘서트는 분명 정치적인 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콘서트의 주제는 ‘웃음’이었다. 또한 김윤영 42대 부총학생회장은 김제동 콘서트의 문제를 떠나 ‘근본적으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학칙의 만행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올 초 고명우 42대 전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직을 내려놓았다. 자발적이었다. 아니, ‘학교에 의한’ 자발이었다. 고 전 총학생회장이 ‘학교로부터 현재의 42대 총학생회를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은 직후였다.

공문을 받은 올 초, 42대 총학은 등록금협상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42대 총학은 2011년 총학생회 선거로 당선돼 지난해 서강대학교를 이끌어왔다. 그러던 중 2012년 총학생회 선거가 후보 미등록으로 인해 무산됐다. 그 결과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올 3월까지 총학은 공석이었다. 부재한 총학의 일정은 총학생회 세칙에 따라 42대 총학이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지난해 12월에 이미 임기가 끝났다’는 이유와 더불어 ‘지난해 2학기 총·부총학생회장이 임기도중 휴학했다’는 이유를 들어 총학생회의 존재를 부정했다. 후자의 근거는 역시나 학칙이었다. 학칙은 ‘지난해 9월 단과대 학생회장단과 대학으로부터 휴학생신분의 총·부총학생회장을 인정받은 사실’과 ‘과거 무수한 휴학생 신분의 학생대표가 있었던 사실’을 짓눌렀다.

갑작스런 학칙의 등장에 학생들은 의심했다. 학교와 총학생회가 입장의 차이를 줄이지 못해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가 네 차례나 파행된 직후에 공문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만약 총학 자체가 부재한 상태라면 총학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더라도 등심위는 법률상 하자가 없다. 서강대는 등심위 파행 이후 일방적으로 생색내기에 그친 ‘학부 등록금의 0.62%인하’와 ‘대학원의 등록금 인상안’을 강행했다.

이처럼 학칙은 어느 날 갑자기 이들에게 칼날을 드러냈다. 고 전 총학생회장은 ‘사퇴의 변’을 통해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갑자기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라며 ‘단지 16억 등록금 인하 액이 아깝고, 정부의 높으신 분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렇게 억지논리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라면 저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라 말했다. 42대 총학의 2학기 활동을 부정한 해당 학칙으로 인해 등심위 문제뿐만 아니라 지난해 2학기 총학생회와 학교가 합의 또는 협의 했던 모든 사항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모든 것들이 전면 백지화 됐다.

42대 총학과 학교가 약속한 ‘여성주의 교양과목의 개설’도, ‘학생자치 공간의 확대’도, ‘허가제로 규정한 학생자치에 대한 학칙을 신고제로 개정하기 위한 논의’도, ‘등록금 심의위원회 운영’도 없어졌다. 모두 죽어있다고 착각했던 ‘학칙’ 때문이었다.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비민주적인 학칙이 존재하는 한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사문화됐다고 여겨졌던 학칙에 뒤통수를 맞았다. 비민주적인 학칙이 실제로 쓰이지 않는다고 안심하는 순간 학칙은 차후를 기다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본교도 예외는 아니다.

 

비민주적인 학칙은 본교에도 존재한다

지난 2007년, 가톨릭대학교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 발표한 보도 자료에 이름이 실리는 영광을 누렸다. “대학생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학칙은 기본권 침해”라는 보도 자료였다. 문제가 된 본교의 학칙은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조항(학칙 제 92조)과 그에 따라 징계하는 조항(학생상벌규정 제 7조 4항)이었다. 인권위는 ‘학생활동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규정 및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규정은 인권침해’라 판단하여 이를 개정하거나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인권위의 권고 대상 대학의 74%는 권고를 무시했다. 본교도 74%에 속한다. 본교의 전략기획팀은 “국내의 많은 언론들은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거나 집회를 허가제로 규정하는 등 현재 학칙의 몇 조항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우려를 파악하고 계셨는지요?”란 본보의 질문에 “파악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짧게 답했을 뿐이다.

결국 본교 학생들은 여전히 학내에서 학업과 무관한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 인권위의 말처럼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평화적 집회의 자유 등 헌법이 명시한 기본권을 여전히 제한받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문턱을 넘지 못한 헌법의 정신  

문제가 있는 학칙은 인권위가 지적한 두 조항뿐만이 아니다. 학칙 제 21조 3항은 총장에게 건강상의 이유로 정상적인 학업의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인정되는 자에게 휴학을 명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있다. 지난해 대학 교육 연구소와 함께 전국 4년제 대학의 학칙 및 학생 관련 규정을 전수 조사해 발표한 바 있는 정진후 국회의원실(이하 정 의원실)은 이 조항에 대해 “대단히 심각한 학습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또한 해당 학칙이 “헌법과 교육기본권의 정신을 반한다”고 덧붙였다. 헌법은 차별을 금지한다. 교육기본법 역시 신체적 조건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을 받는 것도, 휴학을 하는 것도 전적으로 학생의 선택에 의해야 한다.

학칙은 학생의 활동도 제약한다. 헌법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역시 보장한다. 그러나 본교 학칙은 이와 사뭇 다르다. 학칙 제 89조의 2항은 총학생회가 원래 목적이외의 활동을 할 때 ‘총장에게’ ‘총학생회를 해산할 권리’를 주고 있다. 또한 학칙 제 93조와 학생 간행물에 관한 시행 세칙 4조을 통해 단체가 집회나 시위를 할 경우와 간행물을 발간할 경우 역시 제한하고 있다. 학칙 제 93조는 총학생회의 집회 및 행사를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규정하고 있다. 학생 간행물에 관한 시행 세칙 4조은 간행물의 발간은 학생취업지원처장 1인과 교수 7인으로 구성된 학생 활동 운영 자문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고 ‘총장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고 명시했다.

정 의원실은 “이렇게 위헌적인 학칙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학생을 존중해야 할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을 통제하면서 과연 이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인재를 어떻게 양성하겠다는 건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우려에 대해 본교 vos팀은 “해당 학칙들은 징계의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조항과 달리 실제론 학생들의 활동을 제약하거나 징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최대한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징계해야할 사안을 웬만하면 축소하거나 합의·무마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7년 이후 본교에 징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2007년 이전의 사례들도 시험 부정으로 인한 징계가 대부분이었다. 또 본교에 존재하는 등록되지 않은 소모임의 활동도 막지 않으며 지난해 축제도중 일방적으로 학교 측에 전달받은 학제개편안에 항의하는 의미로 벌어졌던 총학생회장의 침묵시위도 막지 않은 바 있다.

VOS팀은 이어 집회 및 행사의 시행과 간행물의 발간을 허가제로 규정한 조항에 대해선 “학생들을 지원하고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답했다. 집회 및 행사를 시행할 때, 이를 승인 받기위해 학교에 문의하면 필요한 마이크, 앰프의 준비와 강의실대여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또한 간행물 발간의 승인의 경우, 대학이 간행물의 발행비를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의원실은 앞선 본교의 답변에 대해 “실제로 쓰이지도 않는 회칙을 존립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존립이유도, 실효성도 없는 비민주적 조항은 즉시 폐지되어야한다”라 답했다. 그러면서 “대학 자율과 자치가 강조된다고 하더라도 학칙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비민주적 학칙의 존재 자체가 학생을 압박한다  

대학은 학생들의 깊이 있는 학문과 폭넓은 사고를 위해 존재한다. 이를 위해선 사상과 행동의 자유 등 기본권이 보장되어야한다.

정 의원실은 “(비민주적) 학칙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정치참여는 위축되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도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고 말했다.민주주의의 전제는 국민의 정치 참여다. 대학생이라고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민주’가톨릭대학교에 존재하는 ‘비(非)’민주적인 학칙, 이제는 ‘비(be)’민주적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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