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을 던져라
물음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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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1.12 09:47
  • 호수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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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

얼마 전 지하철을 이용하다가 생긴 일이다. 혼잡하기로 유명한 신도림역에서 1호선 환승을 위해 환승통로 계단을 오르는데 맞은 편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칠 뻔 했다. 나는 표지판대로 걸었고, 그는 습관대로 왼쪽으로 걸었다. 주변 사람 모두가 각자의 취향(?)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기존의 좌측보행 문화가 이번 달부터 지하철을 비롯한 공공시설물에서 본격적으로 우측통행으로 바뀌었다. 좌측통행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령으로 바뀐 것”이며, 우측보행이 “인간의 신체특성을 고려할 때” 안전하다는 사실이 정부가 내세우는 이유다. 개정된 통행제도를 따른 이유는 제도 개정에 대해 타당성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다. 알게 된 이후 반대하는 바도 아니다. 평소 공공장소의 규범을 지키는 준법정신이 투철한 시민은 아닌데, 지키지 않으면 위에서 내가 느꼈던 불편을 타인에게 줄 수 있기 때문에 지키는 편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이 규범을 지키겠다거나 혹은 지키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자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문제의식을 가지는 부분이 굉장히 표면적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언론에서 흔히 회자되는 비정규직 문제, 높은 등록금, 대학 내 민주주의 등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고 문제의 실체를 느끼기에 용이하다. 그러나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문제점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우리는 슬프거나 행복에 겨울 때, 피곤할 때가 많을 때 나와 별 상관이 없거나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 문제에 관해서는 더더욱 관심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가 놓치는 일상의 문제들은 많다.결론적으로 변경된 통행정책은 그 나름의 합리성이 있었다. 이를 따라 우측통행을 준수하는 사람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합리는 있었다. 하지만 어느 주체도 바뀐 문제에 대해 둔감했다. 그러나 국가를 비롯한 모든 권위체제에는 국민과 지배대상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푸코(Foucault)의 주장처럼,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작은 행동 하나까지 국가의 통제에 따를 위험이 있다. 그것을 나는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일상에 속지 않도록 촉수를 세워야 했다.

예민해지고 싶다. 좌측통행입네 우측통행입네 더 불편한 방식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80년 이상 유지되었던 관행이 바뀐 것에 대해‘물음’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방식이 꼭 비판일 필요는 없다. 다양한 사람의, 서로 다른 의견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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