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하도록 입증해보라
납득하도록 입증해보라
  • 허좋은 기자
  • 승인 2013.12.09 22:34
  • 호수 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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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가 성당을 나온 이유
사진출처-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민감한 이슈다.” 본교 교목실장 정태영 신부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며 말했다. 천주교는 지난 한 주 바로 이슈의 중심이었다. 지난달 22일(금)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이 주관한 ‘불법 부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와 박창신 원로신부의 강론이 발단이었다. 검찰 조사로 트위터 상 국정원의 대선 개입 증거 규모가 확대된 상황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이 처음으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한 미사였다.


  미사는 이슈로 만들어졌다. 박 원로신부의 강론 중 말미 연평도 포격, 독도 비유, NLL 문제를 발언한 것이 문제였다. 미사 다음날부터 방송 뉴스와 보수 언론을 통해 이슈화되었다. 지상파 뉴스는 천주교 사제들이 ‘대통령 사퇴 촉구’ 주장을 보도할 의지가 없었다. KBS, MBC는 현장에 촬영 기자조차 보내지 않았다. 두 방송뉴스에는 박 원로신부 강론 전반의 ‘천주교가 시대의 증표를 알고 발언함을 강조한 것과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정부의 종북몰이 현상 비판’은 쏙 빠져있었다.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거나 ‘종북구현사제단’(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과 같은 정부, 여당의 색깔을 칠하기가 뒤이어 보도될 뿐이다.

천주교 사회참여, 본교 신자들의 생각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박 원로신부의 발언이 언론을 통한 이슈화에 대한 반작용이다. 본교에서 만난 천주교 신자들은 사제의 사회 참여에는 동의했다. ㄱ(국사·4) 학생은 “시국선언은 사회교리 해석 문제인데, 공동선의 입장에서 사제들의 발언은 맞지만, 내가 해석하고 의미 부여하기엔 어려운 문제다. 혼란스럽다”고 했다. 김세진(중국·4) 학생은 “사제들이 자신들의 복음적 삶을 지키기 위해 나왔지 국회의원이나 감투 쓰겠다고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했으나 박 원로신부의 강론은 “너무 급하게 나갔다. 정부, 여당의 종북몰이가 서서히 진행되는 시점에 검찰 수사로 트위터 121만여 건이 터져 난리난거다. 또 하필 날짜는 연평도 포격 사건일 전날이다. 너무 잘 맞아드는 빌미를 줬다. 성급하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상당수의 사제들은 이미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시국선언을 했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따르면 시국선언에 참여한 천주교 사제의 수는 2,124명으로, 전체 사제 4,835명(주교회의 온라인 주소록 기준) 중 약 43%에 해당된다. 지난 6월 21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 8개 단체의 시국선언 이후 7월 25일 부산교구가 교구 단위의 첫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9월 4일 의정부 교구까지 전국 천주교 16개 교구 중 군 신분 사제들로 구성된 군종교구를 제외한 전 교구에서 사제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결코 소수가 아닌 사제들 다수가 세속 정치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 비신자들 입장에선 성직에만 충실 할 것 같은 사제들의 행동에 의아할 수 있다. 천주교 교리 중에는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인 사회교리가 그 근거가 된다.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사목헌장 76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회교리의 근본 원리들’에서는 사목헌장을 통한 천주교회의 정치적 참여가 정당한 경우를 밝힌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은 사회 교리적 맥락이다. 본교 정 신부는 “공동선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권력은 정당한 절차로 지지를 받은 권력이여야 자격이 있다. ‘납득할 수 있도록 정당성을 입증해보라’는 질문에 답하면 해결될 문제다. 합리적으로 대응하면 정당성을 받을 좋은 기회다. 사제가 질문할 교리적 근거는 권력자, 정치가들에게 ‘당신들의 힘이 하느님으로부터, 백성들로부터 받은 힘이니 그에 맞게 봉사해주기를 청하는 차원이다”고 했다.


  결국 권력에게 답이 있다. 천주교로서는 현재 상황을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속 시원히 못 밝히는 권력에 대해 비판한다. 당장은 사제들 발언 중 문제점 자체를 놓고 비판할 수는 있으나 의문에 답하지 않은 것은 여전하다. 박 원로신부와 비슷한 시기 막말 발언으로 집중 공격을 받은 국민TV 김용민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의 글을 남겼다. “박창신 신부 강론도, ‘애비나 딸이나’ 제 발언도 언제 했냐는 듯 잊혀지고 있습니다. 파장은 무슨 놈의 파장. 사건은 다시 부정선거 파문으로 돌아옵니다.”


사진출처-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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