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걸 포기한 2030 어려울수록 돌아가라
이미 많은 걸 포기한 2030 어려울수록 돌아가라
  • 박상준 여론단원
  • 승인 2014.09.21 20:15
  • 호수 2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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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시사문제.

이태백, 88만 원 세대, 삼포세대, 이 단어는 모두 취업 준비생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최근에는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학생' 가운데 빈곤한 사람을 가리켜 스튜던트 푸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과거에는 88만원도 받았었고 포기할 것 조차도 있었는데 이제는 '푸어(poor)'다. 말 그대로 남은 게 하나도 없어진 대학생들이다. 한 사회의 '지성'을 상징했던 대학생들은 대체 얼만큼 추락을 해야 추락을 멈출 수 있을까?

한국의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이다. 그럼에도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을 가는 것은 기본이다. 고등교육기관 이수자 수가 그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25~34세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OECD에 따르면 66%에 달한다. OECD 평균 39%와 비교하면 27% 차이가 난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높은 대학 이수자 수는 당연히 한정되어 있는 '좋은 일자리'에 노동자 과공급 현상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처지인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어려윤 처지에 대해서 이렇다 할만한 힘을 보여준 적이 없다. 대표적인 예가 투표다. 대학생들은 늘 투표에 뒷전이었다. 심지어 정치에 무관심해서, 그래서 투표를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노력한 만큼 얻는다'라는 생각이 바탕이 되어있는 경쟁사회이다. 그런데 너무 과도하다. 공무원의 경쟁률을 예로 들면 적게는 50부터 300대 1까지 경쟁률이 형성된다. 1명이 합격하면 49명 혹은 299명이 탈락한다는 것이다. 경쟁이 과도하다면 사회는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의 자정 기능일 것이다. 하지만 경쟁의 주체가 된 대학생들은 경쟁에 길들여져 버렸다.

스튜던트 푸어의 여러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쟁이라는 표어 아래, 모든 비용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낭비라는 개념을 망각하고 치킨게임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서로 "멈추면 지는 거야", "노력한 만큼 나오겠지"라는 자기 위안으로 집념을 고착시켜버린 것이다. 이젠 4포 세대(결혼, 출산, 연애에 더해 인간관계를 포기한 세대)에 빚까지 지는 스튜던트 푸어들은 이미 그들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은 잊어버렸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삶의 주체를 잃은 제2의 '경제적' 사춘기를 맞이한 것이다. 주변에서 바로잡아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대학생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고 행동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물론 '일개 학생이 무엇을 변화하겠느냐'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집단을 지칭한다. 민주 사회에서 개개의 표는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있지만 집단의 표가 되면 목소리는 그만큼 강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국가에서도 주체가 해결할 의지가 없다면, 이 의식에 어떠한 대안을 마련해 줄 수 없다. 사회적으로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종합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학생은 스튜던트이기 이전에 민주 사회의 주체로서 표 하나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만약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암담하다. 대학생들은 이제 포기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4포 세대라는 것은 4개는 여태 대학생들이 가질 수 있는데 포기를 했다는 것이다. 스튜던트 푸어도 그러하다. 돈이 있었거나 벌 수가 있었으나 끝없는 취업 경쟁을 위해 푸어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대학생들은 무언가를 포기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빼앗길 위기에 있다. 그리고 그 빼앗길 것은 '주체'이다.

어느 집단이든 간에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그 집단을 대신할 수 없다. 대학생들은 이 문제의 원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행동해야 한다. 더 나아가 다른 이가 이 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 방법이 될 것이다. 정부의 대책, 기업의 변화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그들은 대학생들과는 완저니 다른 집단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대학생 자신에게 있다. 앞으로 샤르트르의 앙가주망을 되새기며 변화를 다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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