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노동자를 내쫓는 비용 절감 유감
학내 노동자를 내쫓는 비용 절감 유감
  • .
  • 승인 2014.09.29 22:55
  • 호수 26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록 4박5일의 짧은 일정이었으나 교황이 방한(訪韓)에서 남긴 감동과 여운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교황은 시종 이 땅의 낮은 데로 임하여 상처 받고 고통에 허덕이는 이들을 따뜻하게 끌어안고 눈물을 닦아줬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발언은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깊은 울림을 자아냈을 것이다.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일상은 무한경쟁을 통해 굴러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본교만 하더라도 회의가 열릴 때마다 다른 대학과의 비교자료를 근거로 쉴 새 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형편이다. 또한 각 전공은 그 수준이 수량으로 치환되어 전공 간 경쟁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다. 뿐만 아니라 보다 효율적인 경쟁을 위하여 학교 내 약자들에 대한 대우는 극한으로 몰아붙여지고 있다. 소위 ‘비용 절감’이란 명목이 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무한경쟁과 물질주의가 만나는 순간의 추악한 맨얼굴이 드러난다.

아마 다른 대학교의 사례로만 접했을 것이다. 청소 노동자의 경우 7시 출근이 원칙이나, 한 사람이 맡은 구역이 워낙 넓어서 ‘자발적으로’ 그 이전에 출근해야만 하는 상황. 우리 대학도 다를 바 없어서, 본지에서 취재한 결과 오전 6시 10분에 이미 출근해 있는 청소 노동자들이 상당 수였다. 그리고 6시 30분까지 출근해야만 9시 이전에 쓰레기 배출이 가능한 상황이다. 모은 폐지를 팔아 생긴 돈으로 청소 노동자들이 모여 식사를 했다는데, 그 돈이 아까워 학교에서 회수해 가버리더라는 모 대학의 알량함. 비용 절감에 투철한 본교 구성원에게는 그 알량함을 냉소할 자격이 없다. 그네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매년 계약을 체결하는 까닭에 연봉은 언제나 동일하고, 혹여 산업재해에 따른 곤란을 호소했다가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서 아무 말 못하는 사정도 판박이처럼 똑같다.

열악하기는 경비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방학 동안 통합경비시스템이 구축되었는바, 이로 인하여 본교에서 근무해왔던 경비 노동자 38명 가운데 12명이 아무 소리 못하고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아마 학교 당국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몸을 내뺀 채 용역업체와 노동자들 간의 문제라고 치부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대학에서 그 졸렬한 논리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빠져나가는 것을 이미 목도하였으며, 이렇게까지 비용을 절감해야만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리라 확신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현실이 마몬(Mammon)의 가치를 추종할 때, 가톨릭정신을 표방하고 있는 우리 대학은 어느 방향으로 나서야 할까. 설령 현실론에 따라 마몬의 가치와 적극적으로 맞서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에서는 멈출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을 떠나면서 교황은 우리들에게 깨어있기를 요구하였다. 여기서 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