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원
나의 소원
  • 이나경(사회,4)
  • 승인 2014.12.09 21:09
  • 호수 2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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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한센병문화상-시 부문/당선

■제7회 한센병문화상-시 부문/당선

 

몸이 화두인 시대에
나는 언제나 아픈 사람이었다.
나는 언제나 가슴 아픈 사랑을 했다.

 
자연스레 나의 소원은
응애응애하며 건강한 아이로 태어나는 일.
사랑하는 당신께 접붙임이 되어 가 닿는 일.

 
나는 매일같이
영원한 작별을 꿈꾸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영원하지 못한 사랑과 이별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 형상에
애틋한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림자 시간.
세상 모든 것들의 표정은 지워지고
나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드리워지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가장 닮아 있었다.

영원하지
못했던 소중한 순간과 가장 닮아 있었다.

 

 

시 부문 당선 수상소감_이나경(사회,4)

현생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일을 수도 없이 생각했을 거 에요. 나균이 피부 전체를 덮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현생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일을 수도 없이 생각했을 거 에요. 몸과 마음의 고통은 한센병을 앓지 않는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고통이었을 거 에요. 시를 쓰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고통에도 차별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지금 이 순간 내가 한센병을 앓고 있다면 그가 가진 소원은 무엇일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어요. 고민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이라, 감히 글을 적어내려가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센병을 앓는 '그'가 식물 같은 마음으로 사람에게 사랑으로 다가가고 싶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 마음을 '접붙임'으로 표현했어요. 그러나 한센병 환자는 그마저 할 수 없죠. 말로써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이 언제, 어느 순간에 견딜만한 고통으로, 고통 없음의 순간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자연스레 이 부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이입하게 되었네요.

사소하고 소소함 그리고 소중한 순간인 '그림자 시간' 안에서 저는 조금은 독특하게 바람의 생김새와 그곳의 냄새를 기억하고 곱씹을 줄 알거든요.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삶을 특별히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을 떠 올리며, 이 시를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 부문 당선 심사평_김지연 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리 가톨릭대학교 학생 40명이 총 77편의 시를 투고했다. 시를 통해 들끓는 청춘들은 혼란스러운 존재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예년에 비해 응모한 학생과 작품의 수도 적다. 갈수록 바빠지는 학교생활 탓인지, 습작의 시간을 가지지 않은 채 투고한 것으로 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자신의 시심(詩心)에 집중해 시다운 매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을 찾을 수 없었다. 당선작도 가작도 올리지 못했다. 당선작 없이 심사평을 쓰자니 손끝이 시리다.

응모작들에는 유난히 비통하고 을씨년스러웠던 올해의 사건 사고를 모티프로 삼아 그 울분과 상처를 토로하거나, 불안정한 현재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좌절감과 갈등을 표출한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잔인한 4월’, ‘도마뱀’, ‘깨진 거울’, ‘향수’, ‘피지 못한 꽃’, ‘꽃이라 부르지 말아라’, ‘낙엽’, ‘방관하는 고뇌’, ‘꿈’, ‘해바라기’, ‘연두’, ‘새벽 해’ 등의 시제(詩題)에서, 예감할 수 있는 시상의 전개와 메시지의 처리, 관습적 관념적 이미지의 나열 등이 이어져 상상력의 빈곤을 느끼게 했다.

사랑을 모티프로 한 시편들은 소극적이고 자조적인 독백이 이어져서 참사랑이 무엇인지, 화자 자신도 알 수 없는 모호한 사랑의 느낌이 추상화된 경향이 짙었다. 견디기 힘든 청춘의 에너지를 뿜고 있으니 사랑의 열락에 사로잡힌 불온한 몸짓이 강한 향기로 울려 퍼져도 괜찮지 않은가. 생명본능이라 일컫는 격정적 에로스로 자신을 온전히 투신하는 그런 열정적 사랑을 학생들은 꿈꾸고 있을까. 청춘 시절의 풋사랑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뜨거워지기도 했다.   

기존의 시나 방송멘트에 기대어 즉흥적 인상을 장난처럼 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작품도 눈에 띄었다. 예를 들면 광화문 교문문고 빌딩에 걸려 있었던 나태주 시인의 <풀꽃> 중 인상적인 시구 “너도 그렇다”를 제목으로 쓴 작품이 그것이다. 학생들이 패러디와 표절에 대한 이해도 없이 글을 쓰는 것인지, 시인들이 피 흘리는 몸부림 끝에 짜낸 귀한 시를 창작을 향한 아무 고통도 없이 패러디로 처리하는 말장난이랄까. 현재 한국문화의 여러 형식 속에 시가 들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원작[정전]의 독창성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화현상과 시의 운명을 생각하며 자못 씁쓸해진다. 요즘은 시를 매스컴의 공익광고에서, 고층빌딩의 현수막에서, 지하철의 벽보에서, 대중가요의 멜로디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응모작 중 여러 시편에서 다매체 시대 문학의 생산과 소비의 특징으로 일컬어지는 무한한 자기증식, 혼성 모방, 장르 혼합의 현상이 보이고 있어 안타까웠다.

시인 정지용은 “안으로 열(熱)하고 겉으로 서늘옵기”가 시의 관건이 된다고 하였다. 그는 절제와 함축, 절도와 조화, 자기단련과 감상벽의 통제 등을 통해 자신의 창조적 상상력을 자신만의 언어로 육화시키려 했다. 그리고 항상 생명에서 튀어나오는 최초의 발성처럼 구극(究極)에서는 기법을 망각하고 정신의 순수성으로 영원한 생성의 세계를 노래하려 했다. 정지용의 절창(絶唱)을 떠올리며, 학생들이 시 창작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신의 세계를 극대화하는 치열한 탐색의 시간을 가졌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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