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폭력, 희롱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분노할까”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폭력, 희롱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분노할까”
  • 배도현 기자
  • 승인 2015.03.17 22:57
  • 호수 2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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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성폭력위원회 인터뷰 -
▲디자인 문해든 외부필자
#1. 지난해 9월 11일(목) 몰래카메라 사건(이하 몰카 사건)이 발생했다. 본교는 학생 징계위원회를 열었고, 이 사건에 대해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시간은 흘러, 형사재판을 거쳐 교내 징계절차가 마무리 되는 중에 반년이 지나갔다.

#2. 출입보안시스템 도입으로 인해 지난 2학기 설치됐던 CCTV 수는 50대에 달했으며, 전체 모델이 Full HD급 200만 화소로 교체됐다. 비상벨도 여자화장실 칸칸마다 설치됐고, 오후 10시가 지나면 학생증을 제시해야 출입할 수 있게 됐다. 출입보안시스템은 지난해 2학기 시범운행을 거쳐, 올해 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3. 몰카 사건이 학내에 가져온 충격 탓인지, 사건 이후 몰카에 버금가는 중대한 성범죄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당시 본보의 보도로 인해 1천여명의 학생들이 기사를 접했고 분노하는 반응이 쏟아지면서 구성원 서로가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4. 지난 3일(화) 가톨릭대학교 커뮤니티 공간 ‘대나무숲’ 에 한 글이 올라왔다. 새터에 다녀온 새내기라고 밝힌 작성자는‘게임할 때 성적인 이야기나 행동 자세를 선배들이 시켰는데 불편했고 왜하는지 모르겠다’ 며 그 수위가 과했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이 글을 희화화했다. 분명‘원치 않는 성적불쾌감을 표출’ 하는 글이었지만, 사건을 희화화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반응이 이어졌다. ‘내’ 가‘타인’ 의 원치 않는 성적 행동, 언행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꼈다는 측면에서 다를 바 없는데, 반응은 이토록 달랐다.

“몰카∙강간과 같은 성범죄만을 상정해 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오히려 일상적인 문제를 수면 아래로 묻히게 한다” 는 반성폭력위원회의 말이 시사하는 바는 그래서 크다. 몰카 사건은 가해자가‘악마화’ 됐기 때문에 분노하기 쉬웠지만,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언어적, 물리적 희롱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아 문제를 가라앉게 만든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동시에 우리들에 의해 규정됐던 ‘악마화’도 함께 지나간 지금, 달라진 점이 크게 없는 현재를 ‘반성폭력위원회’ 신혜정(심리∙4), 지원(종교∙2), 혜진(사회∙4) 위원을 만나 되돌아봤다. 작년 몰카 사건을 계기로, 본교의 반(反)성폭력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자치기구 ‘반성폭력위원회’ 는‘똑같은 사건’ 을 ‘다른 사건’ 으로 규정짓고 희화화하는 우리들의 잣대를 짚어줬다.

- 대나무 숲에‘새터에서 느꼈던 성적 불편함’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는데 봤나.

혜진 : 희화화하는 반응부터 참...스스로 모른다는 것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당사자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지했다면 당당하게 술게임, 벌칙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 분위기가 형성 되도록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혜정 : 반응을 쭉 보다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문장이 있더라.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 처음 들어봤다’ 는 내용이었는데,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는게 아니라 스스로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 보편적인 건강하지 못한 술자리 문화가 일상적인 문화로 받아 들여져서 그런가.

혜진 : 러브 샷만 보더라도 단순히 팔을 꼬아 마셨다가 문제가 아니라, 팔이 꼬이면 ‘사겨라’ , ‘잘 됐으면 좋겠다’ 와 같은 분위기가 문제다.

혜정 : 맞다. 또 러브샷을 안 하겠다고 했을 때, 쿨하게 ‘하지 마’ 라고 말하며 넘어 가는게 아니라, ‘분위기 못 맞춘다’ , ‘산통 깬다’ 와 같이 비난을 하게 된다. 개개인이 하기싫은 것을 분위기로 강요하는 것이 제일 문제라고 본다.

혜진 : 한국 술자리 문화 역사들을 보면, 지금은 어느 정도 사라지고 있지만 섹슈얼한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문화들이 있다. 쉽게 말해 술자리 ‘양념’으로 삼는 건데, 그‘양념’이 되는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해봐야한다.

혜정 : 꼭 술을 먹고 친해져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처음 본 사람들이랑 술을 통해 친해지는게 모두에게 즐거운 일은 아닐 테고, 즐거운 부류는 선배일 확률이 높다.

혜진 : 맞다. 술은 마실수록 취기가 오를 수밖에 없고 불안정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속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일 수밖에 없다. 새내기들은 술을 마신지얼마 되지도 않아 조절 양을 모를 텐데 불미스런 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 술자리 말고, 일상생활 속에서는?

혜진 : 학과 내 유달리 예쁜 학생이 있었는데 해당 학과에서 그 학생에게 ‘레어템’ 이라고 부르더라. 그 학생이 그 소식을 전해 듣고 화를 냈다는 것을 들었다. 자신이 ‘아이템’이냐면서. 애초에 ‘예쁨’을 평가받기 위해 입학한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지원 : 언젠가, 남자가 많은 동아리에서 여자가 3명 정도 들어왔는데 이들보고 ‘천연기념물’ 이라고 하기도 한다. 문제제기 이전에는 인식하기 어려운 문제다.

혜진 : 일상생활에서의 일방적인 스킨십이 정말 문제다. 손을 은근슬쩍 만지는 것을 시작해서, 어깨에 손 올리는 것, 허벅지에 손을 올린다거나, 만진다거나. 당하는 입장에서 성추행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스킨십이 너무 많다.

- 흔히 학교 측에서는 보안을 강화했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혜진 : CCTV나 비상벨을 이야기하는데, 일상생활 속에서 스킨십을 예로 들면, 그러한 행위는 CCTV가 볼 수 없다. 몰카 사건은 역설적으로 가끔 드러나지만, 하루에 몇 번씩 일어나는 일상 속 희롱, 폭력은 CCTV가 파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혜정 : 비상벨 역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걸 꼭 눌려서 범인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지원 : 지키고 있구나라는 생각이지, 내가 직접 벨을 누르지 않는 이상 확신하지 못하니까 인지 할 수가 없다.

혜진 : 오히려 몰카, 강간 등 두드러지는 사건을 상정해두고 정책을 펴는 것이 오히려 더 근본적인 문제들, 즉 일상적 희롱, 폭력과 같은 문제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만든다고 생각된다. 당하는 사람 입장 생각하지 않고, 꼭 스킨십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같은 경우‘나는 몰카를 찍진 않았잖아’ 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사건 가해자와 분리시키는 우를 범한다.

-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성교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혜진 : 성교육인데, 성(sex)이 없다.

혜정 :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성교육에서 위험에 쳐했을때, ‘안돼’ , ‘제 몸은 소중합니다’ 라고 말하라는 교육을 받지 않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례도 거의 없고 한번 말해보면 미친놈 취급 받는다. 이번 새터 기획단을 대상으로 헌내기다시배움터에서 성교육을 자체적으로 했다. 성폭력에 관련된 각종 편견, 관념을 깨려고 노력했고, 술자리에서 나올 수 있는 성차별적 용어를 모두 다루기도 했다. 또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 목격자가 할 수 있는 일, 가해자가 할 수 있는 일 등 모두 언급했다.

혜진 : 언젠가 학부에서 진행하는 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근데 엄청 희화화하더라.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혜정 : 본교 인간학 특강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 몇 주차 때 태아 상태나 정자와 난자가 어떻게 만나는지 보여준다. 대학생들에게 이런 자료를 왜 보여주는지 모르겠다. 이미 초등학교 때 배운 내용 아닌가.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섹스를 할 때, 서로 입장이다를 경우 애인과 어떻게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지, 데이트 폭력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하다못해 피임방법을 알려주던가. 생물학적으로 알리는 것은 마지못해 하는 성교육과 다를 바 없다.

- 일상에서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겠다.

혜정 : 보통 여성들에게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하는데 그건 여성들에게 할 말이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성폭력 범죄에서만큼은 피해자한테 조심해라고 말하는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런 통념이 사라져야한다.

혜진 : 밤늦게 길을 걷다가 뒤에서 남자가 걸어오면 괜히 무서워서 걸음을 재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심 받는 것이 기분 나쁜 가장 큰 이유인데, 괜히 의심받는 게 아니다. 생존의 위협과 의심받는 짜증 중 어느 것이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이해되지 않을까. 사실 몰카 사건이 이슈가 됐던 것은 가해자가 ‘악마화’ 됐기 때문이다. 악마로 상정되니까 사람들이 분노하기 쉬웠던 것이다. 만약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폭력, 희롱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분노할까.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사건에 대한 인식수준은 그렇게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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