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대중문화’= ??
‘한국어’+‘대중문화’= ??
  • 윤신원 국어국문학 강사
  • 승인 2015.06.04 15:49
  • 호수 2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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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있는 강의] 한국어와 대중문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대중문화를 접하는 시선과 태도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흐뭇합니다. 무엇보다 매학기 빠르게 변화하는 대중문화 텍스트를 분석하여 그변화 양상을 수업에 적용하는 것이 매우 흥 미롭습니다. 특히 대중문화 텍스트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데 있어, 텍스트 외적인 여러 요인-매체, 기호, 수용자, 생산자의 의도, 사회문화적 환경 등이 텍스트 주제나 내용을 구성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그러한 텍스트 외적 요소들이 텍스트에 관여하는 양상을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흥밋거리가 됩니다.

우선 한국어와 대중문화 수업에서 ‘한국어’의 범위는 ‘언어 기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비언어 기호’까지 포함하는 범위로 확대시킵니다. 대중문화는 대중매체를 수단으로 하여 구현되는데, 우리가 생활 속에서 접하는, 다양한 매체를 매개로 한 텍스트는 대부분 언어와 다양한 비언어 기호가 결합된 복합 양식(multimode)으로 구현됩니다. 이는 전통적인 문자 중심의 인쇄 텍스트가 문자 기호라는 단일 양식(singlemode)으로 구성되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라디오와 같은 매체는 청각 기호를 중심으로 텍스트의 의미가 구성됩니다. 면대면 의사소통과 같은 구어체의 언어 기호뿐 아니라 음악, 음향 그리고 침묵(pause)등의 기호가 복합적으로 의미를 구성합니다. TV, 영화와 같은 영상 매체는 시청각 기호를 사용하여 텍스트를 구성합니다. 구어와 문어의 언어 기호, 카메라의 눈으로 바라본 영상, 동작, 외양, 음악, 음향, 억양, 빛, 색, 편집 등 여러 기호를 사용합니다. 요즘 학생들의 생활에 밀착된 스마트폰은 인터넷 매체를 기반으로 합니다. 인터넷 매체는 영상 매체와 동일하게 시청각 기호를 사용하여 의미를 구성하지만, 그와 더불어 인터넷 매체의 특성인 실시간성, 하이퍼텍스트성, 양방향성, 시공간의 확장성, 수용자가 매체를 직접 조작하는 인터랙션 등이 기호에 영향을 미쳐 기존의 영상 매체와는 구분되는 의미 구성 전략을 보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대중문화 텍스트는, 구현되는 대중매체의 특성에 가장 적합한 기호를 선택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매체에 따라 의미를 구성하는 기호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수용자가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이러한 매체별 복합 양식 기호들을 다중처리(multitasking)하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또한 대중문화 텍스트 생산자는, 같은 내용이더라도 어떤 매체를 선택하고, 어떤 기호를 사용하여 텍스트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를 함축한 텍스트를 생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일 때는 텍스트 내면에 함축된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텍스트를 읽기보다는 텍스트의 표면적인 의미를 무비판적으로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향은 문자 기호로만 이루어진 전통적인 책보다는 다채로운 색과 편집이 가미된 영상, 음악, 빛 등의 다양한 기호가 언어 기호와 어우러진 대중매체를 수단으로 한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한국어와 대중문화 수업은 학기 중반 이후, 학생들끼리 조를 구성하여 광고, 드라마, 영화, 웹툰, SNS, 가요, 뉴스, 오락프로그램 등의 다양한 텍스트 중 하나를 택하여 매체별로 분석하고 발표하는 조별활동을 수행합니다. 대중문화 텍스트의 담화 방식을 언어‧비언어 기호를 중심으로 면밀히 살펴, 매체별 언어.비언어 기호의 전달 방식, 실현 양상, 제약 등을 파악하고, 텍스트에 사용된 다양한 언어.비언어 기호들이 텍스트 생산자.수용자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며 텍스트의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지 고찰하는 과정이 발표 내용에 해당합니다. 이와 같은 발표 준비와 발표 후 토론 과정 등의 참여를 통해, 학생들은 그 동안 무의식적으로 수용하였던 대중문화 텍스트들을 비판적으로 읽는 시각뿐 아니라 실제 생활양식, 태도 및 가치관이 크게 변화하게 됩니다.

대개 언어는 내용을 담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내용이라도 상황과 의도에 따라 가장 적합한 그릇을 선택하게 되고,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조금씩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중문화 텍스트가 구현된 대중매체의 특성을 파악하고, 텍스트를 구성하는 다양한 언어‧비언어 기호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은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대중문화의 의미 작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그와 관련한 가치 판단을 올바르게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앞으로도 학생들이 비판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중문화를 수용하여, 바람직한 대중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주체로서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딱딱하고 골치 아픈 게 아니라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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