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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학생들은 차별에 찬성하게 되었는가? (1) - 자기계발의 덫
[불편하면 어때]
[277호] 2015년 09월 04일 (금) 01:27:58 오찬호 (사회학 박사) .
자본주의는 ‘성과에 따른 차등적 보상’ 이라는 능력주의 모델을 중요한 이념으로 삼고 있다. 개인의 생산성을‘순위’에 따라 평가하고 이에 걸맞는 보상이 이루어지면, 이에 호응하여 ‘더 열심히’노력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여 궁극적으로 사회전체의 노동과 삶의 질(㷓)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이론’일 뿐이다. 능력주의를 한 사회에 적용할 때는 전제가 있다. 경쟁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모든 과정이 공정해야만 한다. ‘공정성’ 은 기회∙과정∙결과의 평등을 뜻한다. 다른 것은 이해하기 쉽지만, ‘결과의 평등’은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결과의 평등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보상’ 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승패결과에 상관없이‘현실성 있는 보상’ 을 지급하여 ‘누구든’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복지’ 로 대변되는 사회안전망을 통해 이 지점을 보완한다. 물론 ‘한국사회’는 이런 점에서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결과의 평등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은‘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거칠게’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이들의 요구는 사회적인 호응을 얻지 못한다. 이는 사람들이(특히 대학생들이!) 결과의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무임승차자’ 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란 책에서 이 부분에 주목했다. 대학생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달라’ 는 요구를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라면서‘도둑놈 심보’로 이해했다. 이는 누군가가 받는 차별이 부당하지 않다는 것이니, ‘차별에 찬성’ 한다는 입장 아니겠는가. 나는 그 원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2회에 걸쳐) 제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자기계발을 권하는 사회’ 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사실, 자기계발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것은 동물은 절대 시도하지 않는 인간만의 위대한‘의지실천’ 이다. 하지만 그것이‘잘못’이용되면 문제가 크다. 취업하기 너무나 힘들다는 대학생들은‘자기계발을 하라’ 는 분위기에 늘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대학생들의 고충이 과연 ‘당사자들의 자기계발이 부족해서’등장한 것일까? 대학생들이 한국사회의 이슈가 되는 이유는 아무리 자기계발을 해도, 그렇게 자신의 몸과 시간을 잘 관리해도 그 노력의 결실이 ‘없기’때문이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과거의 동년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개인의 발전을 위해 투자한다. 하지만 경제적 유예상태는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그렇게 가난했다던 시대에도 별 고민거리가 아니었다는‘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에 대한 희망이, 모두가 스마트폰을 보유하는 풍요로운 지금, 오히려 말 그대로‘꿈’과 같은 일이 되었다. 당연히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식으로는‘지금 여기’의 대학생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아프니까 청춘이다” 와 같은 위로는 “나도 아픈적 있었다. 그런데 이겨냈다. 그러니 너도 이겨낼 수 있다” 는 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이겨내기 위해 아파야 하는 경험’ 자체가 다른 이십대들의 현재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즉“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이십대의 구체적인 경험을 감당하지 못한다. 취업9종세트(학벌∙학점∙토익점수∙어학연수∙자격증∙봉사활동∙인턴∙수상경력+그리고 ‘충격적이게도 성형수술’)라고 하니 말 다한 거 아니겠는가? 문제의 원인이 이것이 아닌데, 마치 이것인양 진단이 내려지고 처방이 내려지면 당사자의‘상처’ 만 커지게 된다. 자기계발이 ‘늘어났음에도’ 바늘구멍이 더 ‘좁아지는’ 현상에 의문을 품지 않는 사람은 ‘어른’의 자격이 없다.

자기계발은 표면적으로는 “하늘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 “땀 흘리면 성공한다”. “좌절이 성공의 문” , “일찍 일어나는 새가...” , “티끌을 모으면...”,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등의 전통적으로‘성실’ 슬로건을 모토로 하지만 이는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면서 문제의 인과관계를 사회에서 찾는 걸 원천봉쇄하고, “노력은 안 하면서 주변 탓만 한다!”면서 사회를 언급하는 사람을 ‘불평불만 가득한 투덜이’로 평가절하 해버리는 효과를 연쇄적으로 야기한다. “사회구조를 문제 삼는 것이 당장 먹고 살아야하는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가!”라면서 궁극적으로 개인이 사회를 바꿀 수 없으니 스스로가 사회에 맞추어야 함을 부단히도 강조한다. ‘그것이 효율적이라는’ 사회 안에서 개인들은 서로 분쇄된다. “당신이 비정규직인 건, 그만큼 노력이 부족한 것이니 무작정 정규직 되게 해달라고 떼쓰면 안 된다” 는 무섭지만 자연스러운‘차별의 정당화’논리는 그렇게 등장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그런건 없다. 자신의 고통을 늘 스스로 삼켜야 하는 것으로 강요받는 시대에서 남의 고통을 대단하게 여길 어떤 이유도 없지 않은가.

아울러 자기계발이란 것이 한국사회의 구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듯하다. 심리학에서는 “닥치고 자기계발!” 만이 강조되면 애초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크나큰 상처를 얻게 된다는 연구가 많다. ‘긍정마인드’ 가 ‘자신의 현실을 비참하게 여기는’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은‘1등이 되라’ 고만하지‘2등이니 괜찮아’ 라고 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자신감만 강조하지, ‘자존감’에 관한 교육이 없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자기계발이 강요될수록‘상처받는 영혼’ 만이 배출된다.

걱정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자기계발의 부작용을 ‘문제화’하는 프레임이 이 사회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현상을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대학이 전혀 그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다음 호에서 이 지점을 다루겠다!). 이와 비례하여 ‘차별에 찬성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오찬호(사회학박사, ‘우리는차별에찬성합니다’, ‘진격의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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