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학생들은 차별에 찬성하게 되었는가? (2) - 비판이 사라진 대학교육
왜 대학생들은 차별에 찬성하게 되었는가? (2) - 비판이 사라진 대학교육
  • 오찬호 (사회학 박사)
  • 승인 2015.09.16 23:46
  • 호수 2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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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면 어때] 당연한 것을 삐뚤어지게 바라봐라
이전 글에서 나는 대학생들이 ‘차별’ 을‘자본주의 사회에서 별 수 없는 것’ 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에 대한 원인을 ‘자기계발을 권하는 사회’에서 찾았다. ‘자기계발서’ 들은 원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극단적인 경쟁사회에서 개인이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지침서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구성원들이 ‘객관적인’사회문제를 ‘자기계발’ 에 의지할수록, 사회문제 자체는 전혀 해결 되지않게 된다.

문제는 이런 풍토가‘대학에서조차’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대학들은 이십대들을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만드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미지메이킹’, ‘면접연습’, ‘CEO 특강’, ‘비즈니스 예절’등의 실무(?) 강의가 있는 거대한 ‘취업준비학원’에서 ‘비판적 사고력’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경영학 위주로 인문사회 영역을 재편한 것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2014년 기준으로 전국에 일반 4년제 대학(교육대, 산업대 제외)은 189개다. 이들 학교 안에 경영학계열의 학과가 무려 686개다. 학교당 3-4개의 경영학 관련 전공이 개설되어 있다는 거다. 이름도 다양하다. 글로벌경영학과, 디지털기술경영학과, 지식경영학과, 벤처학과, 기업경영학과, 경영정보학과, 경영과학과, 파이낸스보험경영학과, e-비즈니스학과, 금융공학과, 미디어경영학과, 공공서비스경영 등 화려한 팔색조를 방불케 한다. 686개라는 수치는 1999년 424개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측면에서 더 눈여겨 볼만 하다. 참고로 2014년 기준으로 국문과(165개), 철학∙윤리학(71개), 사회학(45개), 정치외교(82개), 심리학(60개)계열을 다 합치면 423개다. 사회학과와 비교를 해 보면, 1999년에는 경영학계열 학과수가 사회학과(49개)보다 8.7배 많았는데, 2014년에는 15.2배 많다. 인원으로 느껴보자. 1999년에는 일반 4년제 대학생 158만 7667명 중 경영학 전공자의 비율은 7.1%(11만 2310명)다. 2014년에는 전체 213만 46명 중 9.6%(20만 4183명)다. 경영학이 121개 계열 중의 하나란 점을 볼 때, 9.6% 퍼센티지의 무게감이 상당하다. 인문∙사회 계열내로 좁혀보면 그 무게는 21%에 이른다.

대학 내 학과들이 특정한 잣대로 정리(?)되면서 대학 안에는 과거와는 다른 가치관이 자리 잡는다. 경영학이 대세가 된 곳에서의 토론은 ‘인간의 노동을 철저하게 비용, 숫자로 계산할 수 있음’ 을 더 자주 확인하고 그 정당성을 듣는 자리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할수록 사회적 약자를 더 외면하게 된다. 효율성의 저울 위에서 ‘자본의 가치에 억압받는 경우들’은 단지‘부수적 피해’ 에 그치고 만다. (이것은 경영학 자체가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걱정하는 지점은 경영학이 ‘대세’가 되면서 모든 현상을 하나의 잣대로 사유하는 분위기가 가속화되는 것이다.) 이와 비례하여 현실에 대한 비판적 촉수가 대학에서 거세된다. 비판이 낯설어진 대학에서 다루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다’ 가 전부다. 이제 대학 나온 사람의 입에서‘사회적 문제’를 그저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차별’을 야기하는 사회구조적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차별에 찬성하는 ‘친밀한’ 공동체만이 남지 않겠는가.

문제는 이런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도 취업문제가 심각한데, 어쩔수 없잖아요! 인문학 잘한다고 취업이라도 되나요?” 라는 현실론의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의 변화가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지난 10년 동안 대학이 변화하는 것과 비례하여 취업3종 세트는 ‘9종 세트’ 로 진화했다. 9종 세트의 종류가 무엇인지 외우는 것도 힘들다. 기존 3종에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인턴, 봉사활동 그리고 마지막은 어처구니없게도 ‘성형수술’이다. 이것도 취업 ‘준비’의 자격요건일 뿐이다. 대학생들은 자신이 ‘더 스펙터클한’봉사활동을 했다면서 경쟁해야 하고 ‘열정페이도 참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앞다퉈 인턴생활에 목숨 건다. 취업을 위해 외모도 경쟁력임을 인정하고 거울보고 웃는 연습까지 해야 하는 것이 ‘필수’ 라는 건, 이 사회가 갈 때까지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대학이 선택한 ‘시대에 따른 변화’ 가 문제 해결은 커녕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경영학과가 많아졌지만 ‘청년의 취업고충’은 나아지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다. 취업문이 좁아진 애초의 이유가 대학생들이 경영학을 선택하지 않고 CEO 특강을 외면했기 때문이었겠는가.

이 사실은 역으로‘대학의 인문학적 정신’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비상식적인 스펙관리를 위해 ‘초인적인’생활을 해야지만 취업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사회를 ‘잘못되었다’고 말할‘비판적 학문’ 에 재갈을 물려버리자, 잘못된 것이 더 맹렬하게 ‘최악으로’치닫는다. 그나마 있던고삐가 풀린 셈이니 이런 사회의 미래는 ‘청년들의 삶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취업 10종 세트’ 아니겠는가. 대학의 역할은 한 사회의 ‘경제적 중산층’을 늘리는 것에만 있지 않다. 대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높은 경제성장’ 이 아니라 ‘좋은 사회적 성장’이다. ‘자본’ 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감시 할 영역이 사라진 대가는 이토록 참혹하다. “그게 취업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냐!” 면서 모두가 인문학을 찬밥대우 했는데, 이와 비례하여 ‘차별에 찬성하는’ 사회적 강도만 높아졌을 뿐이다.

오찬호(사회학박사, ‘우리는차별에찬성합니다’, ‘진격의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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