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담이 눈뜰 때
다시, 아담이 눈뜰 때
  • 홍기돈 교수
  • 승인 2009.08.25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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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를 통해
대학을 졸업할 즈음 나는 벌써 조로한 상태였다. 더 이상 어떠한 희망조차 품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가슴에 품었던 유토피아는 환상에 불과했음이 판명되었고,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은 풍차와 맞서는 돈키호테의 치기로 폄하되기 일쑤였던 것.
자본의 논리는 승리의 찬가를 합창하였으며, 그 안에서 모든 것들이 길들여져 갔다. 이를 도저히 수긍하지 못했던 내가 냉혹하게 내버려진 느낌에 빠져든 것은 어쩔 수 없는 귀결이었다. 그람시가 말한 바 있다. “낡은 것은 멸해가는데 새로운 것이 오지 않을 때 위기가 도래한다.”이를테면 당시 나는 아노미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는 어떠했던가. 내가 보건대, 눈앞에 펼쳐진 풍요는 위기에서 위기사이의 허방으로 놓인 함정에 불과하였다. 아노미란 사회현상이기도 한것일 텐데, 모두들거품 속에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따름이었다.
나의 공부는 이러한 상황과 맞서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우선 나 자신을 속이
지 않으려는 태도가 요구되었다. 즉 학문하기란 앎[􃶏]과 삶[􄎊]을 하나로 묶은 체득(􃽑􂞊)의 방편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유행을좇는 문화, 학문 경향으로부터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다. 학문의경우에는 외국이론을 무분별하게 수용하여 이 땅의 현실을 손쉽게 재단해 나가는 경향이 악습으로 굳어져 있는데, 이러한 경향과
결별하기 위하여‘일리(􃥓􂦶)’에 천착해 들어갔다. 일리(􃥓􂦶)를 통해 도달하려는 세계의 가치는 화이부동(􄒆􃤥􂸝􂝬)에 가 닿는다.
그러니 일리에 대해서라면, 배타가 아닌, 공존의 지평 위에서 이해되기를 바란다. 이 지점에서 부
각되는 문제가 바로‘관계’이다. 공존은 어떻게 가능한가. 데카르트의‘주체’라든가‘사회계약론’ 따위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유한자로서의 인간에 주목하여 한계와 대면하는 한편, 바로 그 자리에서 출구를 찾아 나갈 수밖에 없었다. 가령 헤겔은‘보편적 개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유한(􃟡􄋪)과 무한(􂬽􄋪)을 새롭게 설정하여 보편과 개별의 대립을 극복해 낸 사례이다.
한국근대문학은 이러한 고민을 풀어내기에 퍽 유용한 장이다. 예컨대 퇴계의 14대손인 이육사는 앎과 삶을 하나로 일치시켜 나갔다. 요즘 탈식민주의가 세계 차
원에서 유행하고 있는데, 이 논리의 한계는 식민지의 ‘방어 민족주의’와제국의‘공격 민족주의’를 대칭 관계
로 파악하는 데 있다. 그렇지만, 서구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관점을 넘어선다면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중국의 '조선의용군'과 긴밀하게 관계했던 육사는 그러한 다른 길의 가능성을 제시해 준
다. 그 뿐 아니다. 사회주의는 민족(국가)을 부정하면서“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공산당선언􀆭)고 주장한다. 반면 민족(국가)은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이들에게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며“국가경쟁력 강화”를
요구한다. 지금 새로운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응당 계급과 민족(국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만 한다. 육사는 일찌감치 그러한모색에 나섰다. 여기서 육사는 하나의 사례이다. 작가들이 이러한 문제를 수용하면서 어떻게 변주해나갔는지 나의 관심은 향한다.
내가 가다듬고 있는‘비민족주의적 반식민주의(non-nationalistic
anti-colonialism)’란 대체로 그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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