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바로 성희롱입니다.
그게 바로 성희롱입니다.
  • 주은성 기자
  • 승인 2016.03.17 00:03
  • 호수 2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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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2016] ① 여성인권
얼마전 한 여사친(여자친구)이 기자의 페이스북을 보면서 물었다. “왜 이렇게 여성인권에 관심이 많아? 여성 인권이 커질수록 남성의 권리가 좁아지는 것 같아 싫지 않아?” 뭐, 인권이 ‘제로섬(zero-sum)’ 이라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인권’ 이란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답게 살 권리이다. 이 기사가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공감될 수도, 새로울 수도 있다. 문제인 것을 문제라고 보기 위한 ‘예민함’을 기르기 위해 극도로 예민한 이 기사를 읽고 지금보다 예민해지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우리 부서 다른 여직원은 직접적으로 허벅지와 엉덩이 윗부분 등 성추행과 성희롱 당했어요. 그 때 당시 너무 불쾌했는데, 상사한테 함부로 말을 할 순 없었어요. 그냥 어영부영 넘어갔죠”

A씨(29)는 대학교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다. 하지만 부푼 마음을 갖고 들어간 회사는 그에게 상처만 주었다. 매달 있던 회식에서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한 것이다. “2차로 노래방에 갔을 때였어요. 평소엔 멀쩡하고 젠틀하던 사람이 갑자기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그럼 도우미는 두 명만 부르면 되겠다!’라고 하더라고요. 남자 4명에 여자 2명이 있으니 우리를 도우미로 여겼나 봐요.” 이 뿐 아니라 ‘술은 여직원이 따라줘야 맛이지’ 라는 말은 술자리가 있을 때 항상듣는 말이었다. 결국 그녀는 스트레스가 쌓여 얼마못가 직장을 나왔다.

B씨(24)는 대학 졸업 전 한 보험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회사 사정은 A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술자리가 있을 때는 항상 여직원을 한 테이블에 두 명씩 앉게 하고 신입 중 여자가 들어오면 소주병을 들고 다니면서 상사에게 따라주는 관례가 있었어요. 술을 마셔 상사들의 기분이 좋아지면 강제로 ‘커플술’이라는 게임을 진행해 억지로 스킨쉽도 하게 했고요.” 회사 상사들은 관례라는 이유로, ‘원래 그런거야’ 라는 말로 그를 성희롱한 것이다. “당시 부끄럽다기 보다는 무서웠어요. 더 놀랐던 건 다음날 다 모르는 척, 아닌 척 한거예요. 하지만 비합리라고 해도 직장이라서 분위기를 맞출 수밖에 없었어요.”

성희롱 당해도 문제제기 조차 어려운 현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7월 직장인 450명과 대학∙대학원생 350명 등 여성 800명을 대상으로「성희롱 2차 피해 실태 및 구제강화를 위한 연구」 를 한 결과, ‘여성 직장인 가운데 성희롱 피해를 봤을 때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겠느냐’ 는 질문에 40.2%는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문제제기를 꺼리는 이유’로는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날까봐(20.8%), ▲고용상 불이익을 당할까봐(14.4%), ▲처리과정 중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13.8%), ▲가해자를 다시 대하는 것이 불편해서(10.2%) 등이 꼽혔다. 즉 성희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순간 2차 피해에 노출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임수경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간고용노동부에 성희롱 진정사건으로 접수된 총 854건 중 가해자에게 처분이 내려진 경우는 7.1%인 61건에 불과했다. 결론적으로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없으면 성희롱 피해자는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당하기 쉽지만, 가해자가 직접적인 처벌을 받은 경우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성희롱은 학내에도 존재한다

C씨(21)는 새내기 때 기대에 찬 마음으로 개강파티에 갔다. 하지만 기대감은 곧 불편함으로 바뀌었다. 술자리 중 ‘커플샷’ 이라는 게임을 통해 자신이 원하지 않은 사람과 억지로 스킨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게임이 있다는 것을 듣기만 했지 실제로 제가 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옆에 있던 친구와 서로 ‘이 게임을 꼭 해야 될까?’ 라고 말하며 난감해 했던게 생각나요.”게임은 암묵적으로 합의됐다는 가정 하에 진행됐으며, 상황 또한 꼭 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선배 말로는 ‘이런 게임을 해야 더 친해져’ 라고 했지만 실제로 게임에 걸려 스킨쉽을 한 상대방과 더욱 어색해져 그 이후로 인사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라며 이런 게임을 한 의도에 대해서도 의아해 했다. 또한 그는 동아리 뒤풀이에서도 불편한 일을 당했다고 했다. “동아리 뒤풀이에 갔다가 집에 가려고 밖에 나왔는데, 어떤사 람이 강제로 절 껴안았어요. 당시에 너무 놀라서 바로 밀고 집에 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무서워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상대방을 껴안는 행위는 엄연한 범법행위이다. C씨는 자신이 학교생활에 많이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이러한 일을 여러 번 겪었다고 전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일들은 학생 생활 안에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민한게 잘못된 건가요?

D씨(20)는 개강 총회 뒤풀이에서 학우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술을 마신지 5분도 안된 상태여서 아무도 술에 취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학우가 ‘남자들이 콘돔쓰기 싫어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콘돔 쓰는 걸 싫어해’ 라고 말했다. 곧바로 D씨는 ‘너는 콘돔을 끼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냐’ 라고 말 했으나 D씨에게 돌아오는 건 ‘넌 성경험도 없잖아. 너가 해봐 뭐가 좋은지’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직장생활 중에 저런 말을 했다면 분명 성희롱이었을 텐데 아무런 생각 없이 여성에 대해 ‘여성은 분명 성경험이 없을 것이다’라는 잣대를 둔 것 자체가 몰상식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D씨는 주변 반응에 또 한번 놀랐다. 분명 성희롱적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남학우에게 ‘그만해’, ‘네가 잘못 생각하는 거야’, ‘네가 틀렸어’, ‘그건성희롱이야’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친구들도 ‘성희롱적인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하는 말들이 ‘너무 예민한 것 아니야?’라는 눈치를 주는 것 같았어요. 제가 과민한 것 같나요. 아니면 그냥 예민한 것 같나요.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이에 대해 『예민해도 괜찮아』의 저자 이은의 변호사는 “예민하다는 것은‘섬세하게 읽고 명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원래 기득권은 청년이, 갑은 을이, 남성은 여성이, 자본주의 사회는 가난한 계층이 부조리하거나 불평등한 문제에 예민한 것을 싫어하고 위험하게 생각해왔다. 그건 인류의 아주 오래된 역사다. 기득권은 예민한 것이 불편하고, 기득권을 욕망하는 사람들은 기득권의 의견에 동조한다. 하지만 약자가 예민하지 않으면 차별은 필연이 되고, 청년이 예민하지 않은 사회는 발전이 없다”라고 말하며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성희롱도 성폭력입니다!

성폭력은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행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성을 매개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모든 가해행위’를 뜻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성추행과 성폭행을‘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무엇이 성희롱인지 잘 파악하지 못한다. 이는 성희롱이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문제일 수도, 문제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이건성희롱이다’, ‘이건 성희롱이 아니다’라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법에서 처음으로 명문화되었는데 이 규정에 따르면

‘업무와 관련해 성적 언어나 행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등을 조건으로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

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노동부는 1999년 「성희롱행위 예시집」을 내면서 ▲음란한 농담이나 언사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 ▲회식 야유회 자리에서 옆에 앉히거나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 등을 성희롱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당사자 간 해석하는 것에 따라 어떤 것이 성희롱인지 명백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 또한 자신의 언행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언행이 누군가에게는 심한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은의 변호사는“성희롱을 성희롱이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향한 공감과 배려. 약자를 향한 예의와 배려를 함께 고민하고 각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정과 사회가 갑이 되라고 가르치기만 할 게 아니라 이런 교육을 고민하고 적용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모든 답은 권력구조에 있다

A, B, C, D씨의 불편했던 경험은 결국 자신이 속한 사회 내의 악습 또는 경험에 있었다. A, B, C씨는 각각 회사와 학교 내의 잘못 자리매김한 문화에서, D씨는 ‘남자와 여자는 각 각 이러해야 해’라는 잣대의 경험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은의 변호사는 이러한 모든 불평등한 상황의 이유를 권력구조 내에서 찾았다. 그는 “위의 사례들은 대부분 술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술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성희롱의 대상은 주로 여성들이고, 나이가 어린 사람이고, 직급이 낮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만이 아니라, 성폭력은 갑을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희롱의 경우에는 계급적 약자에게 발생하고, 강제추행이나 강간 같은 형사법적영역의 성범죄는 물리적 약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들이 ‘약자를 어떻게 또는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가’의 양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직장이나 학교가 되기 쉽다. 술자리는 긴장감이 느슨해진 상태에서 이러한 상황이 보다 쉽게 발생하는 것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본교의 반성폭력위원회 대표 신혜정(심리∙졸) 학생은 “문제적인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권위적인 체계 때문인데, 약자의 문제제기가 예민하다는 반응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권력관계 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라며, “한국사회에서 젠더감수성이라던가 실질적 성과 관련된 문화를 배우지 않는 것이 문제인데, 대학도 교육기관임으로 ‘현대 성과 문화’나‘여성학’과 같은 성이나 인격적인 부분에서의 강의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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