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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번은 깡패가 아니다.
[285호] 2016년 03월 30일 (수) 13:40:29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
3월은 여러 가지가 공존하는 시기이다.

계절은 따뜻해지는 봄의 시작이지만 가끔 찾아오는 꽃샘추위는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의 동거를 알려준다. 학생들은 학년을 새로 시작하거나, 상급 학교에 입학하는 달이 3월인데 새로움에 대한 흥분과 기대,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약간의 두려운 감정도 공존하는 것 같다. 새내기 대학생 역시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대학생활에 대한 걱정도 있겠지만, 수년간 짓눌러온 입시의 압박감에서 해방되었다는 즐거운 기분이 훨씬 더 커 보여서인지 3월의 캠퍼스는 그 어느 때보다 생동감이 넘쳐 보인다.

이러한 밝은 분위기가 있지만 새 학기의 시작과 함께 대학에서는 비슷한 종류의 어두운 소식도 매년 어김없이 들려온다. 그것은 대학 내의 폭력사건에 관한 언론의 보도인데 요즘은 SNS를 통해서도 직접 경험한 당사자가 글을 올려 이른 시일 안에 화제가 되기도 한다. 대학 내 폭력사건은 여학생에 대한 성희롱, 성추행에서부터 집단 체벌, SNS상의 언어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실 대학 내에서 이런 사건은 일 년 내내 시기를 가리지 않고 잊을 만하면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만 신입생 OT와 환영회, 엠티 등이 집중된 학기 초에 일어나는 비중이 훨씬 높은 것 같다. 처음에는 남학생의 비중이 높은 과나 체육과 등에서 일어나는 집단기합 등이 문제가 되었지만 이제는 과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으며 여학생들이 많은 과, 예술 관련 과에서도 이른바 얼차려라고 불리는 체벌과 언어폭력 등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언론을 통해 공개된 몇몇 대학에서 벌어진 얼차려 동영상과 선배에게 군대식 ‘다나까’투로 대화하라는 지시가 담긴 SNS는 대학 내 폭력사건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대학 내 폭력사건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거의 변하지 않는 한 가지 패턴은 존재하는데 그것은 ‘선배’라는 가해자와 ‘후배’라는 피해자의 구분이다. ‘학번이 깡패’라는 구석기시대의 유물 같은 말이 버젓이 21세기 대학생활에서 통용되고 있다.

사실 대학은 여러 학년이 같은 수업을 듣는 경우도 허다하고 재수, 삼수생, 복학생도 많아서 학년과 학번으로 명확하게 구분을 지어서 생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또한, 나이만 해도 예를 들어 1996년 1월생과 12월생은 11개월 차이가 나도 같은 나이이지만 1996년 11월생과 1997년 2월생은 불과 3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도 한국의 나이 문화는 엄격하게 한 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두는 비합리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구분과 차이보다는 통합과 상호존중이 오히려 맞을 것 같은 대학생활에 ‘나이’와 ‘학번’은 학생들을 구분 짓고 선배가 후배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명하복의 비인권적인 대학문화를 만들어왔다.

물론 앞서 경험하고 배운 사람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후배가 선배를 존중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며 널리 퍼져야 할 훌륭한 전통이다. 그런데도 대학 내의 나이와 학번에 의한 상명하복 문화가 걱정스러운 것은 선배는 체벌까지 하는 잘못된 권위를 행사하지만 후배는 이에 대해 순순히 복종하는 문화가 종종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가 많다고 비인권적인 요구에 후배가 응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따지고 보면 얼마 차이 나지 않는 개월 수인데도 나이와 학번으로 차이를 두어 명령을 하고 복종을 요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작년에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중, 고등학생들의 인권의식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결과를 분석하면서 놀랐던 점은 중고등학생들이 두발과 복장을 자유롭게 하고, 강제자율학습을 금지하는 등의 학생인권조례 내용의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은 60~70%대 찬성 결과를 보여준 것이었다.

이 결과에 대해 가장 설득력이 있었던 해석은 우리 학생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가 무엇인지 그 권리를 행사해도 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단속하는 머리 모양과 복장, 실제로는 강제로 하는 자율학습이 반복되면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적어지고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소극적인 생각이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고작 학번이 앞선다고 비인권적인 명령을 내리는 선배는 그 자체로 잘못되었고 나쁘다. 하지만 그 명령을 묵묵히 수용하는 후배들의 모습은 잘못된 권위에 대해 저항을 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정당한 권리보다는 오직 의무만을 강요당해온 우리 교육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스럽다.

대학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이와 학번에 의한 잘못된 폭력적인 문화는 굳이 대학이 아니더라도 군대와 직장, 연고로 얽힌 각종 사회생활에서 한층 강화되고 고착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배우는 기회로서 대학문화는 훨씬 더 소중하다. 대학생활만이라도 차이와 차별이 아닌 공존과 상호존중의 인권적인 문화를 배우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시기여야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군대와 일부 직장의 옳지 않은 나이와 서열주의 문화가 일부 대학가를 점령하고 있다.

대학생활 4년 만이라도 존칭을 없애고 선후배가 서로 말을 놓는 다거나 아니면 서로 존칭을 붙이면서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나이와 서열에 따른 차별에 맞설 힘을 길러보는 상상은 언제나 유쾌하다.

학번은 결코 깡패가 아니다. 학번은 그저 당신이 언제 대학교에 들어왔는지를 알려주는 표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앞세워 무엇을 타인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으며 그것에 주눅이 들어 요구를 수용해야 할 의무도 당연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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