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에 개인적 고찰
연대에 개인적 고찰
  • 박병규수습기자
  • 승인 2016.05.25 09:21
  • 호수 2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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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일본에서 법조인이 쓴 글이‘아카하타‘라는 잡지 창간호의 앙케트에 실린 적 있다. 내용은 대략 “일본과 한국의 합병은 어떤 미사여구로 치장하더라도 실제로 그 이면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침략이라고 생각한다. 침략당한 조선 민중이 점점 더 착취당하고, 압박당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특히 조선 민중의 착취와 압박이 눈에 띄는 것은 무대가 무대인 점과 지나친 미명 아래 이루어진 합병의 실상이 너무나 참혹하다는 선명한 대조다. 나는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 민중의 해방운동에 특단의 주의와 노력을 바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이다. 읽고 있는 독자들은 이 글의 저자가 법조인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인 김병로, 이인 혹은 허헌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의 저자는 일본의 인권변호사인 후세 다츠지이다.

그는 1919년에는 2.8 독립 선언을 한 학생들에 대한 재판에서 그들을 변호한 것을 시작하여 동양척식회사에 의해 농경지를 수탈당한 나주의 농민을 변호했고 광복 후 우리나라의 건국훈장을 수여 받았다. 그 점에서 그가 조선에 애정을 가지고 활동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기, 그는 조선뿐만 아니라 대만, 당시 일본에서 상대적으로 핍박받는 반전운동가, 부락민들도 변호했다. 그는 제국주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왜곡된 애국심과 억울히 고통받고 있는 자에 대한 동정이 충돌할 때, 과감히 사회 내의 상대적 약자들을 법조인으로서 도와주고 그들과 연대하여 사회가 더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하는 것을 선택했다.

사회를 다양한 사람들의 복합체라고 전제하면 그 내부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경험을 집단적으로 겪은 자들도 존재할 것이며 억울히 권리를 침해당하거나 삶을 이어가는데 많은 고난을 겪고 있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에 관해 만약 우리가 성숙한 시민이라면 자신의 사정이 그들과 다르더라도 그 고통에 공감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위해 연대하여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님 최소한 그들을 조롱하며 상처를 주는 행동을 금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자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조선의용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학철의 자전적 소설 ’격정시대‘에는 독의일제강점기 당시 석유회사의 일본인 감독의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폭행에 항의하여 감독 처벌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일어난 원산 총파업 당시 파업깨기군, 무장 경찰과 다툼을 벌이던 조선인 파업노동자들을 일본인 선원들이 갑판에 발을 구르면서 “스또 반자이!”, “교오다이다찌 감바레!”우리말로 하면 “파업만세!”, “형제들 버텨라!”를 외치며 응원하는 장면이 있다. 이와 같이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박사, 법조인이 아니더라도 개인이 자신의 능력에 맞게 같은 사회 내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자 혹은 자신과 사정이 비슷한 자와 부, 학벌, 지역을 뛰어넘어 연대하면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큰 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자신과 관련 없어 보이는 타인과 연대한다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겁이 날 수 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특정 사회적 목표를 위해 연대하자는 구호에 심적으로는 동의하나 행동을 할 것을 생각하면 타인의 시선이나 개인적 두려움 때문에 거부감이 들며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보장될 수 있는 물적 부유함마저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역사 속 혹은 현재 사회의 위인을 동경한다. 이런 내가 타인에게 연대가 중요하다고 외칠 자격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나라도 펜을 들고 글을 쓰면서 통해 타인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지 않고 고통을 공감하는 따뜻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에게 작게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관심을 둘 것을 크게는 연대하여 행동할 것을 부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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