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서만나자
5월에서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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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5.25 09:23
  • 호수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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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참 다채롭다. 간혹은 여름이 벌써 왔나 하는 더운 기운을 느끼는 날도 있고, 이제는 더 이상 입지 않겠지 하며 넣어둔 두꺼운 옷을 다시 꺼내 입는 비바람 거센 날도 있다.

5월은 유독 행사가 많다. 어린이날, 성인의 날, 유권자의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석가탄신일 등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과 감사, 그리고 성숙과 경건을 새기고 표현할 수 있는 날이다. 특히 본교는 5월에 개교기념일과 함께 잠시 책과 펜을 놓고 학생들과 교직원,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젊음의 야단법석을 떠는 축제도 열린다.

하지만 5월은 우리사회에 있어서 의미 깊은 역사, 가슴 아픈 기억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5월은 근로의 날부터 시작한다. 이 날은 통상 근로와 근로자의 중요함을 기념하는 날로 인식되지만, 자본주의의 팽배와 함께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심해지자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인식하고 연대와 투쟁으로 노동환경의 개선을 쟁취한 것을 기념하고 노동의식과 노동권을 고취하는 날이다.

이뿐만 아니다. 5월에는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516도 있으며, 1980년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폭도로 몰려 대한민국 군인들에 의해 많은 시민들이 희생된 518민주화운동기념일도 있다. 그리고 5월 23일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대의를 위해 낙선을 기꺼이 감수한 이유로‘바보’라는 애칭을 갖고 대통령까지 하게 된 노무현 대통령이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날이다. 재임 중에는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현재는 20~40대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걸 보면 평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5월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 그리고 미래를 기획하고 각오해야 할 것들이 많은 달이다. 현재는 과거의 반영이요, 미래의 씨앗이다. 예전에 민주주의와 정의를 부르짖으며 데모 대열에 앞장섰던 대학생이 많았는데 이제는 스펙 쌓기와 취업 걱정, 비정규직에 대한 두려움에 싸인 대학생들이 많아지는 사회로 변한 이유는 우리가 과거를 지나간 일로 내팽개쳤거나 과거에 대한 성찰이 미래로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과거에서 금수저/흙수저의 현재로 변한 것은 자유가 기득권층만을 위한 자유였기 때문이요, 빈부격차가 이만큼 커진 것은 결국 분배보다는 성장이라는 선택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이며, 현재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결국 여기저기 떠도는 노동자를 더 많이 양산하는 씨앗이 될 것이다.

‘기억투쟁’이라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제 몇 분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싸움이다. 기억투쟁은 망각의 익숙함과 위험성을 지적하며, 기억에 고통이 수반함을 암시한다. 망각은 한갓 기억력의 결핍이 아니라, 의미의 왜곡과 희석이요, 언어의 상투화이고, 타자의 고통에 대한 외면이며, 남은 자의 자기소외이다. 망각에 대한 가장 큰 처벌은 역사의 반복이다. 그리고 집단망각은 권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M. 쿤데라는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투쟁”이라고 말했다.

5월은 한갓 흐르는 시간의 한 소절, 날짜들의 묶음이 아니다. 5월은 과거와 미래가 현재의 시대정신에서 만나고, 후회/감사/사랑이 교차하며, 개인의 기억과 각오가 언어와 연대를 통해 집단지성으로 성숙하는 거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성숙하니까 청춘이다. 청춘들 아, 우리 5월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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