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대자보
두 얼굴의 대자보
  • 허보경(영미언어문화∙3)
  • 승인 2016.06.02 16:22
  • 호수 2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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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란 명사로서 우리나라의 대학가에서 내붙이거나 걸어 두는 큰 글씨로 쓴 글을 의미한다. 순화어로 벽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오늘날 대학생들에게는 대자보라는 말이 더 익숙해 보인다. 이는 마치 ‘마르크스’를 ‘맑스’ 혹은 ‘막스’로 적는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고, SNS를 통해 홍보하는 최첨단 시대에 순백색의 큰 종이에 삐뚤빼뚤 손 글씨로 빼곡히 적힌 대자보는 구시대적인 방법으로서 시간을 역행하는 것이다.

지금도 교내에는 무언가를 알릴 목적을 지닌 수많은 대자보들이 곳곳에 붙여져 있다. 상대적으로 SNS를 활용하는 것 보다 편리하지 않으며 심지어 만들기도 어려운 대자보는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고,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또 역사적으로 대자보는 사회의 권력에 대한 반발과 감춰진 진실의 폭로를 위해 사용되어 왔다. 시민을 한데 뭉치기 위한 응집의 역할을 한 것이 대자보이며 계몽의 실현을 제공해주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런 대자보가 현 대학가에서 다시 유행하는 것은 젊은 대학생의 열정적인 저항의식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어두웠던 옛날의 모습이 아직까지 뿌리 뽑히지 못한 것처럼 보여 마냥 기뻐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지만 신문, 방송에서는 최소한의 여과장치가 존재한다. 하지만 여과장치가 없는 대자보는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정보가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수 있고 더욱 큰 피해가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배재할 수 없다. 실제로 지금까지 부착된 대자보의 대부분은 어떠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자신이 느낀 바를 어느 한 쪽의 입장에서 표현하는 글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양쪽의 입장을 모두 대변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편향성을 갖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처럼 장점과 단점,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대자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대자보를 작성하는 자에겐 사실 만을 기록하는 보도 윤리와,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유독 우리학교는 타 학교에 비해 대자보가 많이 성행하고 있다. 학교를 대표하는 커뮤니티 사이트가 없다는 점과 총학의 부재로 인한 소통의 기회가 부족한 것이 대자보의 성행에 조금이나마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권력에 대한 저항의식과 소통의 발판을 마련한 대학생들의 젊은 투지인지 혹은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에 숨어 사실여부가 파악되지 않은 유언비어의 생성 수단인지는 꾸준한 관심과 시민의식을 통해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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