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혐오한다
혐오를 혐오한다
  • 주은성기자
  • 승인 2016.06.02 16:33
  • 호수 2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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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기자들은 예민함을 한가득 안고 본보를 꾸려나갔다. 연재 기획으로 ‘인권 2016’면을 만들어 여성∙성소수자∙장애인 인권을 다루고, 오피니언 면에 ‘예민해도 돼’라는 코너를 만들어 대학가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나아가 사회적 약자를 치부하는 현 인권 실태를 살펴보았다. 우리 인권의 현주소를 알리고 좀 더 나아지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얼마 전 5월 17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출구 인근 공동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20대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김모 씨는 “여성들의 무시를 당했다”며 범행 동기를 밝혔다. 이 사건을 통해 강남역 10번 출구는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의 장이 되었고, 범죄의 대상에 관한 다양한 퍼포먼스와 여성혐오에 대한 담론.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의 시위까지 일어나고 있다.

사건 자체는 이미 일단락 됐지만, 현재 강남역 일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혐오 담론이다. 누군가는 여성혐오가 아니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여성혐오라고 말하며 서로 공방하고 있다.

여성혐오가 아니라는 쪽은 한명의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사건으로 이미 판명났고, 피의자 말처럼 여성이 자신을 무시해서 여성에게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정신질환과 여성혐오가 양립할 수 없으며 단 하나의 원인으로 수렴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경찰은 어떤 범죄가 일어났을 때 일차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이 때 가해자에게 정신질환이 발견되면 원인을 정신질환으로 파악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가해자가 살면서 여성에게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성과 남성으로 무시한 대상을 구분한다면, 남성에게도 무시 당했을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을 무시해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피의자는 자신과 대면하는 사람들을 특정한 성별로만 범주화하고 그 성별에 따라 위해를 가해도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여기서 혐오범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혐오 담론은 이번 범죄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함께 분노해 폭발적으로 오프라인으로 나와 여러가지 퍼포먼스를 했으나, 이를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이나 소수 여성들은 퍼포먼스를 진행한 여성들을 메갈리아 또는 극단적 페미니즘으로 치부했다. 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여성들을 평범한 여성으로 인식하지 않은 것이다. 여성들은 항상 조신하고 조용하며 남자의 말에 고분고분하고 단아해야 한다는 것을 학습한 사람들은 여성이 큰 목소리를 내거나 강하게 주장을 내세운 이번 일을 보고 자신들이 알고있는 여성과 다르게 본 것이다. 결국 자신들이 생각하는 여성상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들을 불편해 한 것인데, 이 또한 여성혐오에 바탕된 것이다. 여성차별 이데올로기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여성을 차별하거나 혐오하고 있다는 자각 없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보고 자랐고 그렇게 배웠으며 그렇게 행동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민하게 보는 시각이 늘어나면서 기제로 깔려있던 것들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왔다. 보통사람들은 ‘너 왜이렇게 예민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허나 이는 젠더 감수성과 인권감수성의 문제이다. 문제인 것을 문제로 보는 것이 여기에 있다. 보통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닌 이상 그 일에 대해 공감하기란 매우 어렵다. 하지만여성혐오에 대해 직접 경험한 여성들은 혐오 상황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그만큼 남성에 비해 감수성이 높다. 당장 젠더 프레임을 해결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관계의 바탕을 파헤쳐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소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런 담론 이후에는 현재의 담론이 좋은 양분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강남역 10번출구 부근. 수많은 여성들의 울분과 슬픔 토로 절망 두려움이 그 자리에서 한낮 종이쪼가리로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도록. 쌓여있을대로 쌓여있어 분출될 곳이 없었던 분노가 표출된 것을 단지 단면만을 보고 폭력적이라며 그 안의 고름에 눈감지 않도록. 자신들이 말하는 양성평등의 기준이 자신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실된 상생을 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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