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작, 인권감수성
변화의 시작, 인권감수성
  •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 승인 2016.06.02 16:39
  • 호수 2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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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해도 돼
사회의 다른 영역이 거의 그렇듯이 인권 또한 이해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실질적인 참여와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인권담론이 변화하는 실질적인 운동영역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주체의 능동적인 참여와 객체의 호응이 필요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인권 감수성感受性’이다.

‘감수성’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 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인권감수성은 인권문제에 대한 감수성 즉,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조직이나 사회에서의 부조리나 불합리한 관행, 제도 등을 인권문제의 차원에서 느끼고 볼 수 있는 성질 혹은 능력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권을 단순히 무엇이 인권인지를 아는 앎의 영역에서 그치고 만다면 그것은 단순히 입시공부용 암기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인권을 이해하고 안다는 것이 인권문제를 느끼고 볼 수 있는 감수성의 영역으로 까지 확장할 수 있을 때 인권은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서강대 김녕 교수는 인권감수성을 일컬어 “중심에서 주변으로의 여행,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여행, 그리고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라고 했으며 “감수성이 있는 이들은 남들이 ‘작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에서 자주 슬퍼하고 자주 기뻐한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은 결코 작은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인권은 불편함에 의해서 성장하는 개념이다. 그 불편함은 중심보다는 주변에 있을 때,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에 있을 때 더 쉽게 포착할 수 있으며 남들이 작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예민함이 있어야만 느낄 수 있다.이렇게 어떤 상황이나 사람, 조직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 때 곧바로 인권의 침해를 떠올리는 과정이 인권감수성의 작동구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권감수성의 특징은 예민함, 즉 주변의 불편함을 포착할 수 있는 감각의 예민성에 있다.

남들은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사건이나 주변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인권의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감각의 예민함은 인권감수성의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 무엇인가 불편한 느낌을 갖는 것, 이것이 바로 예민한 인권감수성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많은 인권침해 현장을 알리고 고발하는 일들은 이런 예민한 인권감수성을 가진 이들의 행동에서 출발하는 사례가 많다.

인권감수성의 두 번째 특징은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다. 아프고 힘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 감정에 자신을 감정을 들여보낼 수 있는 능력이 ‘공감’이다.

스탠리 코언은 그의 책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에서 기존의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이루어진 인권침해 메커니즘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방관자’를 인권침해의 주요 구성원으로 등장시켰다. 이는 인권침해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방관자들도 인권침해의 구조에서는 책임이 크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개인의 문제만으로 그치는 수동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도 비쳐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능력은 인권의 향상을 위해서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세 번째로 중요한 인권감수성의 특징은 ‘의심하기’이다. 일반적인 어감에서 볼 때 ‘의심’은 부정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인권감수성의 영역에서 ‘의심하기’는 매우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각종 ‘권위’를 만나게 된다. 어릴 때는 부모, 교사에서부터 자라서는 군대, 직장, 그리고 국가에 이르기까지 일개 개인에게는 어쩌면 커다란 권력을 지닌 권위의 대상을 숱하게 만나게 된다. 힘과 권위를 지닌 대상에게 비판과 감시의 역할을 가진 세력이 없다면 그 힘과 권위는 소수에게 인권을 침해하는 대상으로 변화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특히 가부장적인 유교문화, 남성중심의 사회분위기와 서열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군대문화 등에 의해 우리 사회는 권력과 권위에 너무나 쉽게 복종하고 또 그 복종에 대해 의심하지 못하는 문화를 만들어 왔다. 커다란 힘에 대한 바른 ‘의심’과 견제는 인권감수성을 향상시켜 인권지향의 사회를 만드는 빠르고도 제대로 된 방법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이 그냥 흘려 넘길 때, 그냥 웃고 즐길 때, 한 발짝 물러서서 자신이 느끼는 왠지 모를 불편함과 불안함에 ‘왜?’라고 의문을 품어보는 것, 그 의문과 의심에 대해 해답을 찾는 과정이 곧 변화를 이끌어 내는 ‘운동’인 것이다.

이러한 인권감수성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가능할까?

인권은 무엇이 인권인지, 어떤 것이 인권침해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교육을 받는 것 자체가 인권 실현의 한 부분이라 할 정도로 교육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UN의「인권, 새로운 약속」에서는 “인권에 대해 배우는 그 자체가 권리이다. 인권에 대해 무지를 강요하는 것이나 내버려두는 그 자체는 인권 침해이다. 교육은 인권과 자유의 머릿돌이다.”라고 인권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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