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삼세(師弟三世)
사제삼세(師弟三世)
  • -
  • 승인 2016.09.14 15:03
  • 호수 29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려 에어컨이 없으면 독서는커녕 잠도 이루기 힘든 지난 7월 말부터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대학생들의 대학 본관 점거농성과 시위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이 있다.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관련하여 대학생들만 아니라 동창회와 교수협의회까지 관여하며 구성원들 간의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이화여대의 일이다. 이러한 논란은 동국대 등 타 대학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등록금이 동결된 지 벌써 8년, 30억 원이라는 달콤한 재정지원을 마다할 대학은 많지 않다. 문제는 이 사업이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이라는 데 있다. 이 사업의 취지는‘선취업 후진학’의 길을 여는 것이었지만, 한편에서는 대학이 졸업장 장사를 한다, 정부가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한다 등의 목소리, 다른 한편에서는 이대 학벌주의가 미래를 가로막고 있다, 교직원 감금이라는 폭력을 허용할 수는 없다 등의 목소리가 있었다. 시위의 발단은 대학의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운영자들이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진행하여, 구성원들의 이해를 구하는 소통의 민주적 절차가 결여됐다는 것이다. 해결을 위해 총장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을 취소한다고 선언했지만, 학생들은 다시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아직도 시위 중이다. 100여 명의 여학생이 학내 시위를 하자마자, 교직원 불법감금이라는 이유로 1,600명의 경찰을 대학에 불러들인 것이 가장 큰 오류로 보인다.

법치국가에서 교직원 불법감금이라는 학생들의 행태에 대해 경찰의 대응이 왜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바로 대학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학문을 탐구하는 진리의 전당이자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민주적인 것도,합법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제지간의 도리이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제자는 스승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잊어버린 곳은 교육기관이 아니다. 경찰을 불러들였다는 것은 제자를 더 이상 제자로 볼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스승과 제자에 관해 선인들은 많은 말을 남겼다. 대표적으로‘군사부일체’는 스승은 곧 임금과 부모와 같다는 말인데, 요즈음 통용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현대사회에서도 유의미한것으로‘, 청출어람’은스승을단지모방하는것이 아니라 넘어서는 훌륭한 제자를 말하며, 아마도 모든 선생이 꿈꾸는 학생의 모습일 것이다. 또한‘교학상장’은 스승과 제자는 더불어 성장함을 뜻하는데,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를 이보다 더 잘 나타낸 것도 없는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잊지 말아야 할 가르침으로, ‘사제삼세’란 사제지간은 전 세, 현세, 내세까지 미친다며 스승과 제자 사이의 깊은 인연을 말한다.

사제지간의 본보기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다. 글을 남기지 않은 스승의 가르침을 대화편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세상을 떠난 스승에 대해 파이돈의 입을 빌려“우리가 아는 모든 동시대 사람들 중 가장 좋은 사람이고, 사려 깊음과 정의로움에 있어 모든 사람을 능가하는 사람”이라고 애도했던 사람이 제자 플라톤이다. 이와 반대로, 스승 후설은 제자 하이데거를 가장 아끼면서 자신의 교수 자리까지 넘겨주었지만, 하이데거가 총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신의 스승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대학 건물 출입 금지라는 지시였다. 제자에 대해 가장 멋진 말을 남긴 스승은 B.러셀이다. 그는제자L. 비트겐슈타인이먼저죽자“, 비트겐슈타인은 나에게 제자로 와서 동료로 살다가 스승으로 죽었다”라고 하며 그의 죽음을 비통해했다.

요즈음 대학이 대학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대학을 대학답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은 바로 스승과 제자의 도리이다. 이화여대도 다시 이것을 되찾을 때만 다시 대학다운 대학으로 거듭날 것이다. 어느 멋진 가을, 학교 캠퍼스 곳곳에 세상을 함께 논하는 스승과 제자들의 모습이 가을 꽃처럼 만개하기를 기대한다.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