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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가작] 공회전
[294호] 2016년 11월 29일 (화) 18:23:06 우성원 (국어국문∙4) .
공회전

1

버드나무 가지처럼 늘어진 포차의 발 사이로 자르랑자르랑 소리가 나자 더벅머리 댕기 치레하듯 반듯한 양복 입은 사내가 들어섰다. 일상의 생기가 누진하여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진 사람들에게서는 삶의 노곤함과 취기와도 같은 음울함이 스멀스멀 풍겼다. 포차의 붉은 지붕은 낡기도 하고 빗물에 처져서, 오른쪽 가장자리가 푹 눌러앉아 불쾌감을 자아냈다. 그밖에 자리에는 너더댓 명씩 모여 복작거렸다. 우선생은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오른쪽으로 향했다. 탁자에는 물이 흥건했다. 천장에서 이따금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우선생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쓰윽 쓸고는 탁자 중앙에 난 구멍에 물이 떨어지도록 자리를 맞춰 잡았다. 의자에는 눅진한 방석이 덮어씌워 져 있었지만, 플라스틱 의자가 노인의 그것같이 절고 있는 덕에 우선생의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 다시 도졌다. 그러나 우선생은 자리를 뜨지도 의자를 바꾸지도 않았다. 담뱃재만 탁자 중앙에 난 구멍에 톡톡 털었다. 포차 안에 사람들은 여전히 시룽시룽했고 문득문득 노랫가락과 함께 욕설이 뒤섞여 들렸으나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우도록 우선생은 아무 말도 없었다. 이윽고 널브러진 술병과 담뱃재를 비우던 포차 주인이 우선생을 발견하고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뭐 드릴까?"
우선생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제가 후배 녀석을 만나기로 했는데, 그 녀석이 아직 안 와서요. 조금 이따가 시켜도 되겠습니까?"
"예~ 그러셔요."
포차 주인은 건너편에 손님이 아즈메하고 손짓하여 점원의 걸음으로 돌쳐나와 잰걸음을 옮긴 것이나 우선생은 죄지은 것도 없이 괜스레 손이 부끄러워져서는 휴대전화를 꺼내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이놈은 왜 안 오는 거야,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로구만."
담뱃갑의 빳빳한 깃이 주눅 들쯤에야 이성인이가 들어섰다. 꽁초가 되도록 짜리몽땅한 담배가 너덧이요. 비벼 끄다 부러진 장초가 서너 개였다. 우선생은 오래간만에 마주한 친구 놈이 반가우면서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이 말했다.
“거진 한 시간이야. 이놈아.”
전체적으로 길쭉하나 가슴 아래 배 둘레만큼은 표주박 같은 성인은 미안, 미안하고 출렁이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동굴이나 다름없는 구석진 자리가 못마땅하여 엉덩이를 주춤주춤하는데 포차 주인이 탁자 사이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는 둥 담뱃값이 얼마인 줄이나 아느냐는 둥 잔소리를 늘어놓는 통에 자리를 옮기자는 말도 하지 못하고 소주 두 병과 안줏거리를 시켰다. 통 연락하지 않다가 오래간만에 자신을 불러낸 대는 이유가 있으리라. 성인은 로또복권이 어떻다는 둥 요즘 노래는 영 재미가 없다는 둥 시답잖은 말이나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했다. 술만 홀짝이던 우선생의 젓가락이 빈 접시 위를 달각거리더니 뜬금없이 양복 얘기를 한다.
“내가 오늘 양복을 입고 왔지 않으냐. 이게 작년에 마누라가 사준 새 양복이거든, 어떠냐? 멋지지?”
‘이놈이 술 잘 처먹다 또 마누라 없는 사람 놀리는구나.’
“별, 실없는 소리도 잘한다. 그래, 추레한 몰골에 그 정도면 멀끔하네. 옷 자랑하려고 나왔니?”
우선생은 성인의 못마땅한 표정을 익살스레 받았다.
“이깟 옷 자랑하려구 내가 너 만나러 왔겠니, 왜 있잖아 서 선생님.”
성인이 누군지 몰라 멍하니 있자 우선생이 한마디 더 거든다.
“나 학교에 처음 와서 어리바리할 때 도움 많이 주셨다던 그 국어 선생님 계시잖어.”
이제야 성인은 응응한다.
“그분이 내달에 정년퇴임이야, 그래서 새로 선생을 한 명 뽑잖아. 그래 그제 수업시연을 봤는데 글쎄. 합격자 명단에 성원이가 있는 게 아니냐. 성원이 말이야. 그 샌님 성원이, 그래서 입고 나왔지. 명색이 내가 스승 아니냐.”
가만히 술과 안주를 집어 들던 성인의 얼굴이 곰실거리더니 이내 듣지는 않고 고개만 끄덕끄덕하며 그럼 그럼 한다. 그 얘기는 중언부언이나 추려 한 데 모으면 다음과 같다.

2

우선생의 양복이 신세대에게 맞는 그것은 아니더라도 정갈하고 품이 맞아 새 선생 노릇 하던 시절이었다. 서른둘에나 초임한 놈은 시험 감독이 처음이라 근면하게 교탁과 책상 사이를 드나들며 감독했다. 평소에는 아이들이 장난을 쳐도 허허 웃고 넘어가는 젊은 선생이라 학생들이 까불다가도 시험 중에는 공연한 장난을 삼가고 얌전하게 굴며 뒤에서는 이중인격이네 졸보네 떠들었을 만큼 우선생은 바짝 군기가 들어 있었다. 시험은 나흘간 이어졌다, 개중에 삼일은 하루에 시험 서너 개를 보고 다음 날 시험공부를 하라고 집으로 곧장 보내줬으나 마지막 날은 시험이 끝나고도 남은 수업시수를 채우고자 7교시를 했다. 애들이 학교에서 해마다 두 번씩 보는 시험이 무에 중요할까 하지만 과목 중에서도 ‘중요과목’이 있어서 국어, 영어, 수학 따위를 같은 날 시험 치게 하면 부모가 학교에 연락해서 펄쩍 뛸 정도로 내신이란 놈이 퍽 중요한 시절이었다. 그놈이 마지막 날 감독을 맡게 된 과목은 미술이었는데,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체능 과목은 대입시에 별 영향력이 없다. 또, 다른 과목과는 반대로 실기가 7이요 필기가 3 남짓이라, 몇몇은 한 줄로 내리긋기하고 자는 애들이 있었다. 놈이 그 애들을 깨우느라 작은 소란이 일면, 손아귀에 땀 흘리며 부지런히 검은 칠하던 아이들마저 다소 깔깔거렸다. 처음 해보는 시험감독이라 긴장했으나 예의 사람됨이 친근한 데다 본인이 과민하다는 소리가 싫었는지, 아니면 시험의 끝물이라 긴장이 풀렸는지, 그놈도 다소 유하게 웃기도 하며 감독을 보았다. 그때 세로 넉 줄 가운데 셋째 줄에 평소 언행이 정숙하여 요조하다고까지 불리는 성원이란 놈이 왼 주먹을 손마디가 보이게 책상 위에 놓고 부들부들 떨었다. 다들 다소 웃는 분위기에 성원이란 놈이 손을 떨자 그놈은 범생이마저 선생을 우습게 알고 장난을 거는구나 하고 괘씸하였으나 그 아이가 다른 아이도 아니고 성원이라 가만히 서서 생각했단다. 제 딴에는 그 일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범생이가 선생과 장난을 쳐서 아이들의 주목을 받고 싶구나 하여 다소 자신의 소신과 어긋날지라도 장단을 맞춰주마 하였다. 놈은 짐짓 모르는 척 성원이 앞에 엎드려 자는 홍찬이란 놈을 깨우고는 자지 말고 열심히 풀어 하며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홍찬이란 놈은 무에 그리 좋은지 실실거리면서 이제 시험 끝났으니 이따가 국어시간에 놀게 해달라고 졸랐고 놈은 시험 잘 보면 이따 국어시간에 서편제 보여주마 했다. 애들이 영화 얘기에 웅성웅성 하자 놈은 ‘자 조용! 아직 시험시간이다.’하고 애들을 달래고는 성원이를 힐끗 봤는데 성원이의 얼굴이 찌뿌듯했다. 웃는 듯 찡그리는 꼴에 땀까지 뚝뚝 흘리며 손바닥을 연신 허벅지 위에 문지르는 꼴을 보니, 자신이 한 말에 놀라 장난치려다 겁먹었나 싶어서 놈은 성원이가 제풀에 지쳐 장난도 못 칠까, 먼저 농을 걸었다.
“성원아 뭐하니?”
“네?, 그게 아니구요.”
놈은 성원이의 손바닥을 펴서 지방(紙榜)을 읽듯이 소리를 길게 늘였다.
“오방, 몰골, 영모화….”
손바닥에 유성 사인펜으로 큼지막하게 적힌 글을 읽어 나가던 놈은 웃으며 말하다가 끝에 가서는 석고마냥 굳어 말이 없다. 답을 아는 몇몇 아이들이 그 소리를 듣고 쫑그렸고 전에 일로 눈엣가시처럼 여겼으나 학생들 간의 의리로서 고자질하지 않던 몇몇 아이들이 성원이가 부정행위 한 것이 들켰음을 눈치채고 크게 요란을 떨었다. 소요가 일자 더욱 당황한 놈은 이거 시험 범위니? 하고 주변 아이들에 묻더니 네네 하는 소리가 들리자 당황해서는 소리를 질렀다.
“손바닥 펴!”
놈은 손바닥을 바짝 당겨서 자신의 휴대전화로 연달아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의 철컥거리는 소리가 허공에 하는 작두질마냥 손바닥을 내리쳤고 성원이는 손을 떨며 잘못했어요, 죄송하다며 눈물을 소 새끼마냥 뚝뚝 흘렸다. 탁상 위에 시계가 시끄럽게 째깍대며 제시간을 다 채우고 나서야 놈은 아차 싶었단다. 시험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답안을 걷고 우는 아이의 손을 잡아 교실 문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선생이라는 놈이 한다는 말이
“선생님은 네가 장난치는 줄 알고…….”
또 울고 있는 애 앞에서 가만히 있다가
“선생님이 조용히 처리했어야 하는데…….”
변명을 늘어놓는 꼴이 누가 선생이고 누가 우는 애인지 분간이 안 갔다. 놈은 원칙대로 학생을 교무부장에게 데려가고 자기변명을 일장연설한 후에야 제 딴에 닿는 힘껏 학생을 변호했단다. 본래는 그 전에 시험 본 과목 전부 빵점이나 이번 과목만 부정행위 한 것으로 처리되었다고 말하는 놈의 얼굴은 봉사 눈 꿈적이듯 허공만 보고 있었다.
“내가 교사 생활을 13년이나 했지만, 그때 그 눈을 잊어버려지지가 않아. 그 원망에 찬 눈. 말은 못하고 겁먹어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안녕히 계세요하고 그놈이 전학 가던 그 모습을 말이야. 공부 하나 잘하는 걸로 애들이 깔보고 무시해도 견디던 놈이, 쟤가 어떻게 하겠느냔 말이야. 다 내 탓이야 내 탓. 그런데 말이야 성인아. 난 너무 어렸어. 그땐 나도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구.”
꼬꾸라지든지 아니면 한 얘기를 되하던지 해야 할 터인데 놈의 레파토리에는 십수 년 수 년 만에 처음으로 살이 붙는다.
“성인아, 성원이가 말이야 잘 자라서 대학에도 가고 교직이수도 했다고 하더라. 오늘 학교에 찾아왔어. 자기도 이 학교에 국어 선생이 됐데. 국어선생이 말이야. 날 보면서 어찌나 반갑게 웃던지, 내가 고마워서 말이야. 정말 고마워서. 임시면 어떻고 계약직은 또 무에냐 우리 성원이가, 내가 가르친 제자가 우리 학교 선생이 됐다 이 말이야.”
놈은 탁상을 밀어제치는 힘으로 비스듬하게 일어나더니 계산은 자기가 하겠노라고 지갑을 꺼내 돈 몇만 원을 낸다.

3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 와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픈 것이 어제 친구 놈을 만나 술 한잔 한 것은 기억이 나는데 어느 순간부터 드문드문하다. 남덕이 엄마는 보이지 않는 걸 보니 토요일인데도 일을 나갔나 보다. 남덕이를 불러 물 한 잔 떠오너라 시켰는데 원, 대답이 없다. 얘가 나갔나 싶어 어머니 방을 열어보니 구석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애비가 부르면 대답을 해야지, 왜 대답을 안 하니? 할머니 엄마랑 나갔어?”
술기운이 덜 가신건지 목이 컬컬하다. 어머니는 어디 계신지 보이질 않고 아들이란 놈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 안사람과 어머니가 안 보이는 걸 보니 둘이 어디 나갔나 보다. 남덕이가 입을 댓 발 내밀고 휴대전화를 쏘아보는 것이 뭔가 불만이 있는 모양이나 도통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나.
“왜 그래, 할머니랑 또 싸웠니? 할머니는 이제 90 다 돼서 애야 애. 니가 할머니랑 싸우면 되겠니?”
이놈이 또 대답이 없다. 애비가 살갑게 굴어도 아들놈이 들은 척도 안 하니 기어이 하지 말아야 할 소리까지 나오고야 만다.
“어휴. 저놈 커서 뭐가 되려나 몰라. 콤퓨타 그만하고 가서 공부 좀 해. 너 좀 있으면 대학생이야 이놈아. 애비처럼 고생하려고 그래?”
목이 탄다. 스테인리스 대접이 쨍 소리가 나게 정수기 주둥이에 갖다 대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들놈은 지 할머니와 방을 같이 쓴다. 두 살 터울 딸내미가 태어나자 지 베개를 들고 어머니 방에 건너가서는 여태껏 이다. 거진 고삼이 되도록 아들내미 방 하나 못 만들어주고 할머니랑 같이 자는 아들이 안쓰러워서 제 방을 하나 만들어주마 해도 지가 싫다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맞벌이하는 통에 3살부터 여태까지 아들내미가 먹고 자고는 다 제 할머니가 해줬다. 그러니 정이 오죽할까. 다만 아들은 점점 머리가 자라고 커가는데 어머니는 자꾸만 어려지시니 원.

4

열흘 전부터 자기도 이제 고등학생이니 미용실에 가서 다른 애들처럼 파마 좀 시켜달라고 하도 조르기에 학생이 단정한 게 제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이제 방학인데 뭐 어떠랴 싶어 딸내미와 미용실에 갔다. 재잘재잘 딸내미가 어찌나 말이 많은지 머리에 랩을 감고 서너 시간 가만히 앉아있었는데도 졸기는커녕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애 아빠가 남덕이랑 목욕탕에만 다녀오면 이놈이 아빠보다 몸무게가 더 나간다는 둥 너무 세게 밀어서 등껍질이 홀라당 벗겨졌다는 둥, 우리처럼 드문드문 날 잡아서 목욕탕에 가는 것도 아니고 매주 드나들면서 뭐 그리 할 말이 많은가 싶었는데 이런 맛에 자식 기르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찬거리를 사가지고 들어가는데 어째 집안이 조용하다. “애 아빠가 아직도 자나, 엄마 왔다.”
주말이라고 머리도 안 감아서 사방으로 뻗침 머리를 하고 아들내미가 터덜터덜 걸어와서 00 마트라고 쓰인 비닐 봉투를 뒤적인다. “엄마 왔는데 아는 체도 안 하니? 아빠는 주무셔?”
“몰라. 방에 있어.”
기분이 안 좋아 보여 또 컴퓨터 했냐고 물어보려다가 방안을 한번 슬쩍 봤더니 컴퓨터가 꺼져있다. 어머니도 안 보인다.
“할머니는 어디 가셨어?”
“아 몰라. 짜증나게 자꾸 손 목수 할머니네 가보자고 하잖아, 그래서 그렇게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고 했더니 나갔어.”
기분이 확 가라앉는다. 혼자 잘 걷지도 못하시는 노인네가 이 추운데 어딜 나갔단 말인가. 얘는 아무리 귀찮아도 그렇지 할머니 좀 모셔다드리지 않고 뭐했나 싶다. 애 얼굴에 짜증이 그득한 게 훈계하지 말라는 투가 분명하지만, 걱정이 돼서 또 말을 붙인다.
“언제 나가셨어?”
“한 세 시간 됐어. 나 안 데리러 가 엄마가 가던가 말던가 마음대로 해.”
‘세 시간이나 지났다고…….’ 손 목수 할머니네 전화를 걸면서도 뭐가 아이를 저렇게 만들었나 싶다. 손바닥만한 동네에서 지금까지 아무 말 없는 거 보면 큰일이 일어나진 않은 것 같은데 어머니가 다치지는 않으셨을까. 오늘따라 연결음이 유난히 길다. 비발디 사계 중 봄. 누가 집 전화, 휴대 전화할 것 없이 기본 통화 연결음으로 설정해 놓았는지, 현란한 바이올린 음이 정신을 더욱 날카롭게 한다.
“안녕하세요. 저예요, 남덕 에미. 거기 어머님 계세요?”
“아, 남덕 엄마구나, 몸도 불편한데 할머니를 혼자 오시게 하면 어떻게 그래, 할머니는 잘 계신데 집에 가고 싶으시대. 남덕 엄마가 좀 데리러 와. 내가 모셔다드리고 싶은데 나도 다리가 아파서…. 다 큰 아들, 딸 두고 뭐야 그게.”“네, 금방 모시러 갈게요. 애들이 밖에 있어서 몰랐나 봐요.”
변명하면서도 화가 난다. 제가 뭐라고 남의 자식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한단 말인가. 곱게 말해도 될 일을 자식을 걸고넘어지니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마침 딸내미가 화장실에서 나온다. “정화야, 손 목수 할머니네 가서 할머니 좀 모셔와라.”
“아 싫어, 거기 개 있어서 무섭단 말이야.”
평소였다면 그냥 넘어갈 일도 손 할머니 말이 맞는 것 같아 화가 난다.“그럼 어떻게 하니, 조금 있으면 아빠 일어나실 텐데 니가 저녁 차릴래? 애가 왜 철이 없어!”
“아 왜 나한테만 그래, 오빠한테 가라고 하던가. 괜히 난리야”
문을 쾅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 애들이 하나같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성치도 못한 몸을 끌고 나가셔서 괜한 일을 만드신단 말인가. 애꿎은 어머니가 미워진다. 딸을 혼내야겠다. 문을 두드린다.
“우정화, 너 문 안 열어? 혼나 볼래?”
소리가 나니 남편이 깼나 보다. 슬그머니 나와선 큰소리친다.“무슨 일인데 엄마한테 큰 소리를 내! 우남덕! 가서 할머니 모시고 와”“아 만날 나만 시켜 짜증나게.” 남덕이가 남편의 엄포에 대답은 듣지도 못할 뒷말을 하고 나간다.
“저 버르장머리 봐 저거!”
안 그래도 요즘 아들과 투닥거리는 남편인데 주일 저녁이 엉망이 된 것 같아 힘이 빠진다. 닭볶음탕을 하려고 산 생닭과 당근, 감자가 짐처럼 느껴진다.

5

아내는 온종일 아무런 답이 없다. 이런 날은 바쁘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방학식이 코앞이라 수업도 없고 학생부장으로서 엄하게 할 필요도 없으니 공연히 잡생각만 늘어간다. 아내는 지금쯤 뺨이 퉁퉁 부어있으리라. 그렇게 조곤조곤, 할머니한테 대들면 안 된다. 할머니는 내 엄마인데 니 아들이 엄마한테 대들면 마음이 어떻겠냐고 말했는데도 어젯밤에 기어이 또 큰 소리가 났다. 잠이고 뭐고 화가 나서 저놈의 세끼 혼구녕을 내러 들어갔는데, 아내는 따라 들어와 애를 왜 때리느냐고 잡아 말렸다. 애새끼가 저 지경인데 편을 드는 게 화가 나서, 결국 저질러 버렸다.
‘피부가 약해서 조금만 다쳐도 표가 나는 여자를 어쩌자고 올려붙였는지…….’“선생님, 안녕하세요!”
갑자기 누가 불쑥 튀어나온다. 어느 예의 없는 사람이 이렇게 사람을 놀래키나 하고 인상을 쓰고 고개를 돌리는 데 성원이다.
“무슨 고민 있으세요? 안색이 불편해 보이시는데….”
“아, 아니. 선생님은....... 아니, 나는 괜찮아. 그래, 서 선생님께 인수인계 받느라 정신없을 텐데 무슨 일이야?”
성원이가, 아니 이제는 엄연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니 정 선생이라 해야 할까. 정 선생은 내가 정색하는 표정을 보고 놀랄 법한데도 싱글벙글 여전히 웃는 낯이다.
“아, 서 선생님께서 오늘 수업 없다고 다른 선생님 찾아뵙고 배우라고 하셔서요. 선생님께 좀 배우고 싶어서 왔어요. 그런데 선생님 표정이 어두우셔서….”
한결 기분이 편안하다. 정 선생은 다 잊었나 보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먼저 다가와 주니, 언젠가 술 한잔 하면서 다 풀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괜찮다니까, 아니 덕분에 좀 나아졌어. 그런데 내가 뭐 가르쳐 줄 게 있나. 늘 열심히 하는 정 선생인데 말이야. 이번에 어느 부서로 가게 됐지?”
“저는 학생부요. 이건 비밀인데… 사실, 교무부가 되진 않을까 은근히 걱정했어요. 저는 공문을 다루는 것보다 아이들이랑 빨리 친해지고 싶거든요.”
“학생부 좋지. 아이들과 가까이하니까. 또 내가 학생부장 아니야. 안 그래도 새 학기라서 학교폭력 예방교육 기간인데 한 번 쭉 돌면서 뭐가 있나 보자구. 그런데 정 선생.”
“네, 선생님.”
“정 선생님이 좋다니까 하는 말인데, 사실 처음으로 부임한 선생님은 열에 아홉은 학생부야. 아이들이 젊은 선생님만 따르고 나이 먹은 선생님은 싫어하니까.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싶어.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가끔은, 애들 가르치러 학교에 나오는 게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그깟 공문보다 말이야.”
화기애애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마디, 불쑥 거든다.
“그럼, 늙으면 애들이 싫어하지. 그래서 말인데, 우선생. 그놈들 고등학교 가면 또 거기서 하니까. 정 선생님이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서 선생님은 60나이 치고는 허리가 굽었달까, 주름이 많달까. 유난히 할아버지 상이다. 까맣게 염색한 머리 사이로 흰 새치가 둥지를 튼 얼굴에 항상 골덴바지나 허리춤이 헐렁한 양복만 입고 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깜짝 놀라는 우선생이었다.“아, 서 선생님 오셨어요. 언제부터 듣고 계셨던 거예요, 기척도 없이. 커피 한잔 하실래요?”
서 선생님은 가만히 손을 들어 인사를 받더니 또 가면서,“난 됐어, 늙어서 그런가. 커피만 마시면 잠이 안 와서 말이야. 그보다 그렇게 할 거지?”
“네......? 네. 네! 그래야죠. 정 선생 괜찮겠어? 자네만 괜찮다면 부탁하고 싶어서….”
내가 말을 더듬자 정 선생도 얼떨결에 네네 한다.

6

어릴 때만 해도 선생이란 사람들이 하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다 똑같았다. 기껏해야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애들 엎어놓고, 종이 한 장에 반에서 누구 괴롭힌 거 본 적 있는 사람, 괴롭힘을 당한 사람, 괴롭힌 사람 있으면 쓰라하고 10분 있다가 걷어 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아니,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다. 적어도 콩나물시루처럼 강당에 모아놓고 알 수 없는 소리로 웅얼거리지는 않으니까. “선생님은 중학생 때 왕따였어요. 막 이따 만한 안경도 쓰고, 얼굴에 여드름도 많고, 키도 작고, 또....... 운동도 못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었어요. 내가 이걸 말하면 반 따에서 학교 전체 따가 되지는 않을까. 다른 반에 있는 나랑 친한 친구들마저 나에게서 등 돌리지는 않을까. 그때는 또, 그게 효도라고 생각했어요. 가만히 있으면서 참는 거. 이런 일로 가뜩이나 힘드신 부모님께 미안해서,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쪽팔리게, 눈시울이 붉어져서 괜히 창문 밖을 내다봤다. 십삼 년 전에는 더 커다랗게 보였을 운동장.......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큰 숨을 한번 쉬고 말을 잇는데 목소리가 여전히 떤다.
“그리고 죽어라 공부만 했어요. 애들이 깔보지 못하도록. 아니, 내가 아이들을 깔볼 수 있는 구실이 필요해서요. 그런데 여러분은 그러지 마세요. 나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부도 안되고 결국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다 잊어버리더라구요. 나는 한참 아픈데, 그 아이들은 오래전에 다 잊어버리더라구요.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선생님은 올해 이 학교에 처음 왔어요. 처음 온 선생님들이 다른 선생님들께 잘 보이려고 더 열심히 하는 거 아시죠? 진짜 아프면, 숨기지 마세요. 제가 해봐서 아는데 진짜로 아프거든요. 제가 이 학교에서 왕따였으니까, 겪어봤으니까. 선생님 찾아오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그 문제 학생 학교 못 나오게 해드릴게요.”
수업을 하는 건지 고해성사를 하는 건지 얼떨결에 칠판에다 휴대전화 번호만 휘갈겨놓고 후다닥 교실 밖으로 나와 버렸다.
“정 선생님 인사는 받고 가셔야죠.”
우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교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데, 애들은 깔깔대고 웃느라 정신이 없다. 당황하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서 얼른 얼버무렸다.
“너희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 자, 차렷”
“선생님이 먼저 울었잖아요. 뒤에서 우쌤도 울었어요.”
그 말에 우선생님을 한 번 쳐다보니 눈이 빨갛다.
“자, 자. 조용. 차렷. 경례!”
웃어서 그런지 울어서 그런지 어쩐지는 몰라도 속이 시원하다.

7

어차피 집에 가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다. 십수 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게 이제 좀 풀리려는데 한 잔 마시고 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정 선생을 태워 집 앞에 있는 포차로 향하면서 연거푸 속으로만 되뇌는 말이었다.
‘정신 차리자.’
포차의 발을 손으로 힘 있게 걷어낸다. 안으로 들어서자 기름 냄새, 막걸리 냄새, 뜨끈한 어묵 냄새 할 것 없이 이것저것 섞인 냄새가 퍼지면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자 이제야 좀 상념이 깨진다.
“처음부터 둘이 오니까 좋구만 그래. 아주머니!”
우선생은 생전 해 본 일 없는 붙임성까지 보이면서 안주 하나와 소주 두 병을 시켰고 처음 하는 데 왜 이렇게 잘하느냐. 요즘 선생님들은 완성돼서 오는 것 같다면서 칭찬을 반주 삼아 연거푸 술을 마셨다. 정 선생도 칭찬 한 번 들을 적마다 아니에요. 부끄럽습니다.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했다. 어느덧 소주병이 쌓이고 어묵탕의 국물이 자작하게 쪼그라들 즘에야 우선생이 칭찬을 멈추고 꼬부라진 혀를 빼어든다.
“정 선생. 아니, 성원아. 참 미안하다. 내가 미안해. 넌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말이야, 겁쟁이야. 겁쟁이! 너가 중학교 3학년 때 으? 응? 기억나지. 그래,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어. 적어도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어야 했어. 정말 미안하네.”
말을 하면서도 소주잔에 입김이 맺히도록 후후 불더니,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픽 숙여서 인사하는 시늉을 연달아 한다.
정 선생은 말마디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하면서 뻣뻣한 광대뼈를 풀며 도리질을 하더니
“우선생님. 원망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요. 사실은 당신께서 이미 까먹은 줄 알았어요. 저한테나 선생님이지 선생님한테는 제가 수백, 수천 중에 한 명이었을 텐데. 또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왕따니까. 쯧, 그게 가여워서 장단 맞춰 주려다 그러신 거 아닙니까. 소심하신 분이.”
우선생은 들은 건지 못들은 건지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미안하다고만 한다.
“그런데 선생님은 적어도 저를 괴롭힌 그 새끼들이랑은 다르게 안 까먹으셨잖아요. 제가 3학년 때 10반이었던 거 선생님이 기억하시고 뒷반부터 가신 거죠? 에? 그렇죠? 전 그걸로 만족해요. 진짜로. 그땐 저만큼 어리셨잖아요. 에? 그러니까 이제 잊어버리세요. 저는 다 잊었어요. 에? 제가 정말로 못 잊었으면 이 학교에 안 왔겠죠.”
“고마워. 고마워. 정 선생. 나 그때 이후로 반성 많이 했어. 응? 잘 해보자구. 고마워, 아니 미안해. 정 선생.”

8

다리가 휘청휘청하다. 정신은 하나도 없는 데 기분은 좋아서 노래도 몇 소절 부르면서 그렇게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집안이 조용하다. 시간이 몇 시인가? 이제 한 시 조금 넘었는데 다들 자나 보다. 마누라가 화가 잔뜩 나서 골이나 내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던 차에 참 다행이다. 양말 꼬투리를 잡아서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TV가 켜져 있다.
“지금, 몇 시야? 어딜가서 술을 그렇게 떡이 되도록 마시고 왔어?”
말끝이 날카로운 게 곱게 자기는 글렀다. 내가 죄인이니 비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다.
“미안해 여보. 내가 잘 못 했어.”
“아주, 술이라면 환장을 하지. 환장을 해. 어제 그 난리를 쳐놓고 술이 넘어가디? 어떻게 사람이 그래 어쩜?”
아내의 언성이 높다.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자는 애들 다 깨우게 큰소리를 낼 건 또 뭔가.
“아, 그래. 미안해. 그 일은 내일 다시 얘기하자. 우선은 내가 취했으니까. 응 미안해 여보.”
에두르고 침대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려는데 침대에 앉아서는 두 손으로 냅다 밀어낸다.
“지금 잠이 와? 애 세끼가 할머니랑 도저히 못 살겠다고 울면서 어제 그 난리를 쳤는데 불쌍하지도 않디? 당신 오기 전까지 마루에서 우두커니 TV만 보다가 당신 숨소리 들리니까 제 방으로 들어갔어.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당신만 자면 다야?”
슬슬 성질이 난다. 나보고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런데 저놈은 아버지가 오셨는데 자지도 않으면서 얼굴도 안 내비쳤다는 거지. 지 할머니를 병신이라고 부르지를 않나 치 디밀어 부딪쳐서 시퍼렇게 멍이 들었는데, 사죄하고 빌지는 못할망정 성깔을 부려?
“야, 우남덕! 너 이리 좀 와봐! 우남덕!”
소리를 지르니까 몸에 열이 더 받는다.“애를 불러서 어쩌자고 소리를 질러! 됐으니까 빨리 잠이나 자.”
자지 못하게 디밀더니 이제는 빨리 잠이나 자란다. 가만히 들어가서 잘까도 했지만, 어른이 불렀는데 꿈쩍도 안하는 저놈이 괘씸해서 한 번 더 소리를 지른다. “우남덕! 빨리 안 와! 이놈의 세끼가 아버지가 부르면 재깍 와야지!”
“얌전히 자라는데 왜 난리야! 내일 학교 갈 애 괴롭히지 말고 가만히 잠이나 자!”
아들이 문지방을 넘어 마루에 모습을 보이자 아내가 어서 들어가서 자라며 손을 내젓는다. 아들놈은 쭈뼛 쭈뼛 하는데 어머님이 문지방을 넘어서 나오신다. “아니, 조선에 어느 집안 여자가 이렇게 소리를 질러 그래? 옛날부터 여자가 시끄러우면 집안이 망하는 거야! 남자가 술췌서 들어왔으면 얼른 자게 해줘야지. 아주 잡아먹는구나 잡아먹어.”
갑자기 울화가 확 치민다. 어머님은 왜 이 싸움에 끼어드셔서 여자가 어떠네 하시는 걸까.
“어머니, 가서 그냥 주무세요. 예? 저도 그냥 잘 테니까 가서 주무시라구요. 제발 좀 얌전히 계세요.”
저놈의 세끼 버릇을 고쳐줘야 하는데 말 한마디 더 꺼냈다가는 집안싸움 나게 생겨서 눈으로 한 번 흘기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목이 탄다. 시원한 냉수 한 대접 마시고 자야겠다 싶어서 화장실에서 오줌을 넣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 방에서 큰 소리가 난다.
“좀! 그만 좀 해! 할머니는 여자 아니야? 여자가 어떻고 사내가 어떻고 좀 그만하라고! 그럼 할머니 같으면 자기 뺨 때리고 그 날 바로 술 처먹고 온 사람한테 좋은 말이 나가겠어?”
“그래, 지 어미 닮아서 잘한다 그래. 남덕아 너도 그런 말 하면 못써. 죄받아. 대명천지에 나가서 물어봐라. 니 애미가 잘했나. 편들 걸 편들어야….”
머리가 쭈뼛 서고 얼굴이 뜨거워진다. 정신은 말짱한데 이놈의 주둥아리가 가만히 못 있고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만 좀 하세요! 예? 어머니 때문에 이렇게 싸우는 거, 지긋지긋해요. 아시겠어요? 이러니까 낮에 오는 아줌마도 석 달을 못 채우고 나가는 거 아니에요.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아시겠어요. 예? 저는 이제 어머니 못 모시겠어요. 아니, 이제 안 모셔. 밤낮없이 싸우는데 누가 어머니를 모시겠어? 내일 날 밝는 대로 요양원에 모실 거예요. 아셨어요?”

9

몽실몽실 하늘에서 눈이 떨어진다. 찬바람이 돌면, 구름을 깨뜨려서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다 익기 전에 그릇에 담아낸 것 같은 눈. 매해 2월이면 스크램블을 해 먹었다. 첫해는 우울하니까 반쯤 장난으로, 나중에 고시원에 들어가서는 울거나 취한 채. 재작년, 한 번에 다섯 개까지는 그래도 아프니까 청춘인 것 같았다. 학원알바 과외알바를 전전하면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 천직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올해 정말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꿈이 깨졌을 때, 아홉수 때문이었을까. 이제는 깔끔하게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한 해를 함께 했던 네이버 밴드를 지우고 다음 참사랑국어에서 탈퇴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사 주신 Guess시계도 버렸다. 11종의 교과서, 국어학 개설, 한국문학통사, 어문규정, 교육학 문제지 전부를 고시원 비상계단 모퉁이에 던져 버리고 빈 몸으로 집에 왔을 때 아버지는 소주 한잔을 사주셨다. 꽤나 오래 잠만 잔 것 같다. 하루, 어쩌면 이틀이 지난 것 같은 저녁. 도저히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서. 아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두려워서 사립학교 채용 공고를 뒤져봤다. 문산 중학교. 내가 전학 갔던, 아니 내가 버려둔 기억이 있는 곳. 이곳이 무덤인 것 같았다. 이 학교라면 날 받아주지 않을까. 다시 일어서지 못할 만큼 흠씬 두들겨 맞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면접 대기자였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앞에 면접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을 조금은 구경했던 것 같다. 시연하고 면접을 보면서도 처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다 포기해서 그런 건지, 서 선생님의 얼굴이 반가웠던 건지. 속 시원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 서 선생님이셨다. 술 한 잔 하자고 하시기에, 좋습니다하고 만났다. 나중에 우 선생님이 데려가신 포차였고 그때는 서 선생님과 함께였다. 잘 지내느냐고 물으시기에 그렀노라 대답했다. 펑펑 울었다. 서 선생님은 우 선생님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 끝에, 좋은 결과 있을 거라고 기운 내라고 하시고는 헤어졌다. 노량진으로 가는 지하철도, 낡아서 뛰어내리지 않아도 같이 무너져 줄 것 같았던 육교도 없는 고향에서 맞는 따뜻한 눈이다. 지금 같은 교직생활은 어쩌면 꿈인지도 모르겠다. 속 시원하게 털어버릴 수 있게 마음이 만든 꿈.

10

일주일 병가를 냈다. 애들을 볼 상태도 아니거니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는 문제로 누나들을 만나고 어머니를 설득시키느라 시간이 필요했다. 휴가 아닌 휴가. 나흘째 되던 날 저녁에, 어머님을 요양원에 모시고 왔다. 소주 한 잔을 반주 삼아 먹고 누웠는데 이사장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우선생님, 지금 당장 학교로 나오세요.”
화가 잔뜩 난 목소리에 신경질이 묻어났다. 평소였다면 묻지도 않고 바로 학교에 나갔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말 한마디 보태려는데 칼같이 잘리고 돌아오는 것은 비명이다.
“이사장님, 제가 몸이….”
“빨리 처 오란 말이야!”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고 무슨 일인가 사정을 알기 위해 주변 선생님께 연락을 돌렸다. 정 선생이 일을 저질렀단다. 10반에 ‘아범’이라고 부르던 김성현이 왕따를 당하고 있었는데 정 선생한테 털어놨고 정 선생은 바로 이사장님께 보고했단다. 며칠 있으면 고등학교에 가는 중학교 3학년이고 그 반 애들 중 3명은 특목고에 가는 것이 예정된 일이니 괜한 흠집 내지 말라고 정 선생을 타일렀단다. 아마도 그게 더 불을 질렀겠지. 정 선생이 교육부에 신고하고 연줄이 많은 이사장이 연락을 받기까지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작당 모의’를 한 정 선생과 이를 묵인한 서 선생님 모르게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소집하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조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이사장과 교감 그리고 학생부장인 나와 2명의 학부모님으로 구성되어있다. 두 분의 학부모님 중 한 분이 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현수의 어머니였고 다른 한 분은 현수 어머니의 친구였다. 실질적인 폭력도 없고 반 애들 전체가 폭력 대상으로 지목된 것이기 때문에 설문지를 돌려도 아무것도 적히지 않을 것이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21일 이전에 졸업식이 치러지기 때문에 고등학교로 조사를 떠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대체, 어쩌자고 정 선생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른 걸까. 모든 매뉴얼이 빠르게 검토될수록 머릿속이 복잡하다. 우선은 만나야겠다. 아니 따져야 했다. 왜 나를 부르지 않았는가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끝나자마자 손가락이 부러져라 꾹꾹 자판을 두드렸다. 정 선생은 순순히 전화를 받았다.
“대체 어쩌자고 일을 저지른 거야! 힘들게 얻은 직장인데 바로 때려치우고 싶어! 적어도 나한테 말은 했어야 될 거 아냐! 정 선생, 어디야!!”
주차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목에 힘줄이 터져나갈 듯이 꿈틀거렸다. 저 어린놈의 치기에 화가 났다. 한편으로는 불똥이 내게 튀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대답도 하기 전에 말을 쏘아붙였다.
“선생님 저 그 포차에 있는데 같이 한잔하실래요?”
정 선생은 천하태평이다. 욕이 목구멍 밖까지 치솟는 걸 참고 전화를 끊었다. 가는 길에 어느 정도 화가 누그러들자 머리가 팽팽 돌았다.
‘설득해야 한다. 좋은 말로 해야 정 선생도 안 다칠 거야. 대체 어쩌자고…,’
발을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고개를 휘저어 정 선생을 찾는데 저만치 구석에서 손을 흔들고 서 있다.
“오셨어요. 선생님.”
여전히 웃는 낯이다. 저 자식은 이 일이 심각하다는 걸 모르는 걸까. 짜증이 치밀어 오른 채로 플라스틱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리가 뜨끔했다.
“정 선생, 가서 빌어. 대체 어쩌자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내가 짤리지는 않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까. 아무 말 하지 말고 가서 싹싹 빌어. 그게 맞는 거야.” 가만히 웃고 있던 정 선생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뀐다.
“선생님, 성현이가 어떤 아이냐 하면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잘해서 나중에 톨킨 같은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예요.”
“아 글쎄, 그런 게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야. 벌써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열렸고 얘기도 끝났어. 혐의 없음. 그게 다야. 그 허망한 결과 보고 너만 죽어 나가는 거야. 멍청하게 왜 그걸 몰라. 그만둬!”
내 목소리는 여전히 크고 정 선생의 말은 조곤조곤하다.
“그런데 성현이가요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어요. 왼 어깨에 털이 좀 많이 났는데, 애들이 진화가 덜 된 거라고 놀렸대요. 그냥 참고 살다가 제가 하는 말을 듣고 용기를 얻어서 자기 담임선생님한테 털어놨대요. 그런데 선생님. 그 선생이란 사람이 선생님이 조사해 줄 수는 있지만 조사하는 과정에서 성현이가 왕따였던 거 다 드러난다고, 다 잊고 새 학교 가서 새롭게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그랬대요. 맞는 말인 거 아는데, 슬퍼서.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저한테 말하고 싶다는 애를 두고 제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선생님.”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정 선생의 눈망울이 촉촉하다. 그래도, 먹고 사는 문제인데 감정적으로만 하면 안 된다. 내가 선배로서, 말려야 한다. 화는 나지 않았다. 그저 비는 투로
“정 선생, 내 나이 서른둘에 교편을 잡아서 정년까지 해야 연금 나와. 늦은 나이에 선생질 시작해서 아직도 까마득해. 십삼 년이나 했어도 아직 반도 안 했다는 말이야. 정 선생은 이제 시작인데 어쩌려고 그래. 이제는 어른 노릇 해야지. 부모님께 용돈도 좀 드리고 말이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선생님은 가정이 있으니까, 아버지로서 그렇게 하세요. 저는 끝까지 싸우다 깨끗하게 그만두고 싶어요. 다른 선생님이 이 자리에 오시는 게 맞는 것도 같고....... 어휴, 좀 취한 것 같네요. 선생님. 이제 그만 일어나봐야겠어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정 선생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휙 가버렸다. 나는 잡지도 못하고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정 선생! 자꾸 부끄럽게 만들 거야? 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야 나더러!!”

11

우 선생은 차를 몰아 어머니를 모신 요양원으로 향했다. 요양원 앞 공터 어귀에서 우 선생은 문밖을 나서지 않고 소주 두 병을 따서 마셨다.
‘내일이면 주일이다. 그렇다면 매일이 주일일 텐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 선생은 가만히 있는 차에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공회전을 만들었다. 그의 교직 생활 동안 발이 돼주었던 고물차는 검은 매연을 뿜어내며 부들부들 떨었다. 차의 변속기는 여전히 p에 놓여 있다. 차는 제 자리를 돌며 후덥지근한 열기만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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