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회 가대문화상 시 심사평
제 37회 가대문화상 시 심사평
  • 김지연 (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16.11.29 19:24
  • 호수 2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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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연 (국어국문 교수)
시란 영원의 세계를 향해 꿈꾸고 탐색하는, 그리움과 목마름의 표현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절망적이고 비루한 영혼의 밑바닥에서 서늘하고 맑은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순수하고현묘한 체험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이 꿈꾸고 그리워하는 세계를 향해 고투(苦􄅷)하는 여정을 펼쳐 보였다. 응모작 144편을 읽고 대학생다운 실험정신과 개성적 패기가 엿보이는 작품 , <책을 읽는 방식>, <기도>, <나비>,<강박적 인간>, <시국선언 2>,<할머니 방> 등을 가려냈다.

<기도>는 화자의 고통의 실체가 존재론적인 것인지 사회에 대한 저항의 시선인지 불분명한 채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버렸다. <나비>는 생의 운명을 상징하는 나비의 비행이 상투적으로 표현되어 긴장감을 잃었다. <강박적 인간>에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인간의 비극적 삶이 토파되어 있으나 잠언적으로 흘렀다. <시국선언 2>는 삶을 잘 살아봐야겠다는 자신의‘시국선언’메시지가 강해 함축성이 떨어졌다. <할머니 방>에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추억의 방이 시화되었으나, 감정 과 이미지의 처리에 있어서 신선감을 느낄 수 없었다.

와 <책을 읽는 방식>을 읽으면서, 당선작을 결정하느라 유쾌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발상의 참신함으로 긴장의 여운을 주는 를 당선작으로, 책에의 순수한 몰입의 묘미를 보여준 <책을 읽는 방식>을 가작으로 선정했다. <책을 읽는 방식>에서 시적 자아는 지적 호기심을 향한 탐구의 시간을 사색하고 있다. 책이 푸대접받고 있는 이 시대에, 책을 통해 진지하게 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화자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었다. 자아를 직시하고, 결핍감에 사로잡히고, 묻고 고민하고, 다시 칩거하며 갈등하고, 혼돈과 호기심으로 몸부림치고, 갈구하고 동경하며, 외로움을 묵묵히 견딘다. 책이 담고 있는 독창성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자의 역동성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된다. ‘책 읽기’라는 객관적 상관물이 인생과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고단한 작업으로 읽힌다. 마음의 밭을 경작하려는 수신(􃄳􃊯)에의 끊임없는 동기로 이어지는‘책을 읽는 방식’은 자기 연마를 향한 지혜의 발걸음을 보여주고 있다.

는‘dry flower’라는 평범한 이미지에 독특한 상상력을 불어넣어 매력적인 심층을 느끼게 한다. 절망, 암흑, 슬픔에 빠져 있는‘dry flower’에 희망과 기쁨을 상징하는 햇빛 뿌리기는 아이러니컬한 인간 존재를 형상화했다. “햇빛을 한 웅큼 쥐어 잡아”‘dry flower’에게 뿌리는 행위는 살과 피가 다 말라 빠져나가고 뼈만 남아 있는 미라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허무의 율동이다. 감미로운 전율이 괴기스럽게 반전되면서 강렬한 페이소스가 드리워진다. ‘dry flower’는 타자가 아닌 저주받은 자아로도 인식된다. ‘dry flower’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연금술은 이상적 이미지를 꿈꾸며 순정한 기도를 드리는 피그말리온을 연상 케 한다. 참된 사랑, 영원한 생명, 순정한 합일은 영영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희망과 절망의 콘트라스트가 되풀이되는 심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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