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회 가대문화상 수필 심사평
제 37회 가대문화상 수필 심사평
  • 박상민 (학부대학 교수)
  • 승인 2016.11.29 19:43
  • 호수 2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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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민 (학부대학 교수)

제 37회 가대문화상 수필 심사평

공모전의 시대라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교내외 공모전이 있고, 그 중에는 에세이 공모전도 많다. 몇 해 전부터 가대 문화상에 투고한 작품 수가 줄어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고작이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어 여전히 가대 문화상의 위상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좋은 작품들이 여러 편 출품되어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지만, 고민 끝에 <오만과 편견>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나 아픈 기억을 털어놓은 친구. 그를 위로해주기보 다는 스스로의 놀란 가슴에 더욱 당황스러웠던 기억들이 담담한 필체 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충격적 기억을 오랫동안 반추하면서 차츰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고, 오만과 편견을 극복한 글쓴이의 정신적 궤적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러한 고통과 공감의 기억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자신과 친구에게, 그리고 읽는 모두에게 진정한 위로를 준 것은 글쓴이만의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런 따뜻한 마음과 깊이 있는 정신적 성찰을 지속해 나갈 것을 기 대한다.

여자 친구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추억한 <급성거인증>도 문장력과 감수성이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사적 고백에 치우쳐 있어, 다수가 함께 읽을 만한 수필의 균형 감각이 다소 부족하였다. 자신을 출산했던 24년 전의 엄마보다 한 살 더 나이가 많게 된 스물네 살 딸의 시각에서 엄마의 인생 역정을 서술한 <엄마, 라비앙로즈!> 역시 흥미로웠다. 개인사의 솔직한 기록에만 머무르지 않고, 엄마의 인생을 통해 세상살이의 보편적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에까지 나아 갔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중학교 때에 만난 수학 선생님을 추억한 <달빛이 짜준 마음의 무늬>도 특이한 감수성을 보여주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적 기억과 감정들이 너무나 견고하여 구체적인 부분에서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할머니의 죽음을 소재로 했던 <매미껍질> 역시 비슷한 지적을 하고 싶다.

수많은 공모전이 있지만, 당연하게도 가대문화상은 가장 높은 문학적 감수성과 완성도를 요구한다. 이 때 문학적 감수성의 핵심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개성’과 함께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성’의 경지를 동시에 의미한다. 누구보다 풍부한 감정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자신만의 감정에 묻히지 않고 이를 객관화 시킬 수 있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내가 겪은 아픔이 나만의 아픔이 아니라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아픔이라는 자각, 그러한 자각 속에서도 나의 상처가 너무나 깊고 선 명하여 글로 풀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서 위대한 작품이 생산되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가대 문화상에 작품을 투고한 모든 응모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비록 수상하지 못했더라도, 개인적 아픔을 한 편의 글로 완성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큰 성취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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