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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문화상 최우수] 지나간 이야기
[294호] 2016년 11월 29일 (화) 20:23:21 정지은(사회과학부·1) .
   
▲ 일러스트_정지은 수습기자
어둠이 내리깔린 고속도로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자동차 계기판의 바늘은 기름이 떨어질 듯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내비게이션 화면에 뜬 시각은 밤 12시 13분으로 막 자정을 지났다. 졸음이 몰려와 갓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나가 싸늘한 공기를 가르며 팔 다리를 흔들었다.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니,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헐벗은 산이 도로를 둘러싸고 있었다. 하늘은 완전히 밤의 색에 잠겨 달이나 별의 어슴푸레한 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깜깜한 밤하늘에 희미한 형태를 보이는 것은 똑같이 어두운 색의 구름뿐이었다. 찬 공기에 잠이 깨는 듯 시원했지만 주위가 새카만 어둠으로 뒤덮여 있어서인지 왠지 모를 음산한 기운도 함께 느껴졌다.

구름이 지평선에 내려앉았는지 도로 위에 탁한 안개가 점점 짙게 깔렸다. 멀리 있는 도로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더 늦으면 안개가 더 심해질 것 같아 급하게 차에 다시 올라탔다. 차 안에서 숨을 쉬자 입김이 창문에 서렸다. 차 안으로 들어와 앉자, 옆 좌석에 놓았던 핸드폰이 진동으로 위잉 울리다 꺼졌다. 부재중 전화가 왔나 싶어 핸드폰을 집어 켜는데 화면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배터리가 나갔나‥."

여분의 배터리가 없으니 집에 돌아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비게이션에 남은 거리는 약 18.7킬로미터. 빠르게만 가면 30분 안에도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시동을 걸고 다시 도로를 탔다. 피곤함이 몰려와 눈을 더 부릅뜨고 가는데, 갑자기 도로 한 가운데에 사슴이 가만히 서 있는게 보였다. 놀라 브레이크를 밟고 자세히 보니 사슴만한 바위였다.

"누가 이런 걸 도로 한 가운데에 갖다 놔!"

큰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다. 황당함에 잠이 확 깨서 정신이 들었다. 자동차로 다시 돌아가 옆 차선으로 돌아 다시 도로를 지나기 시작했다. 한참 지나다가 이쯤 되면 건물이 보여야 하는데 싶어 내비게이션을 보니 아까 갓길에 세워뒀던 자리에 위치가 멈춰 있었다. 생각해보니 핸드폰도 그렇고 도로 위 바위도 그렇고 일진이 나쁜가 싶어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어디서 쉬다가 아침에 돌아가던가 해야지. 우측에 처음 보는 듯한 도로 너머 어렴풋하게 다닥다닥 붙은 건물이 보였다. 찜질방이든 어디든 쉬다 가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좁은 도로로 빠졌다. 얼마 안 가서 미류동(微?洞)이라고 쓰인 초록색 표지판이 높은 곳에 걸려 바람에 끼익끼익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안 가서 차를 멈춰 세웠다. 안개가 짙어진 데다 내비게이션이 고장인지 깜빡깜빡 빛을 내다 전원이 나갔다.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마을에서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근처에 건물이 꽤 보이니 어디든 길을 물어보면 알려주지 않을까 싶었다. 마을 주민의 잠을 깨우는 것이 아닐까 불편한 마음도 있지만 그렇다고 계속 차 안에서 가만히 앉아있자니 추워서 감기에 걸릴 지경이었다. 헤드라이트를 켜 두고 차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쌩 불어 팔을 문질렀다. 마을로 들어오고 나서 기온이 더 내려간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뒤편에는 아까 지나쳤던 미류동이라는 표지판이 멀지 않은 곳에 걸려있었고, 앞쪽에는 포장된 도로가 양 옆으로 나 있고, 좁은 비포장도로가 가운데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도로 사이사이를 3층 정도 되는 가정집들이 채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을 초입까지밖에 들어오지 못한 듯싶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아 희미하게 보이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가장 가까운 건물 앞에 섰다. 현관으로 보이는 문 옆에는 흔한 현관 벨도 없었고, 주소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문을 똑똑 두드렸다.

“계세요!”

외침이 찬 공기에 섞여 울려 퍼졌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내 목에서 나온 외침뿐이라 꼭 혼자 남겨진 듯해서 불안함이 올라왔다. 밤공기에 섞일 법한 소음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 때였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들릴 법한 흙먼지가 날리는 소리, 돌들이 부딪치며 긁히는 소리 같은 것이 수초에 한 번씩 들려왔다.

“거기 누가 계십니까?”

이번에 목에서 나온 말은 조심스럽게 공기를 타고 흩어졌다. 작은 소리라 듣지 못했을 수도 있을까 싶어 다시 말을 물으려는데, 헤드라이트 불빛 가까이 검은 무언가가 스윽 지나갔다. 들짐승인가 싶어도 크기가 꽤 컸다. 다급해져서 눈앞에 있는 현관문 문고리를 붙잡고 다시 문을 똑똑똑 두드렸다. 그러자 바로 문이 벌컥 열렸다.

“뉘시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밤중에도 희한하게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옷차림이 특이해 한참을 보다가 허리춤에 묻은 붉은 자국에 억지로 눈을 치켜뜨고 입 꼬리를 살살 올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얼굴에 진 주름이 전부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중에 죄송합니다. 길 좀 여쭈러 왔는데요. 민박이나 여관이 있습니까? 아니면 찜질방이라도 근처에 어디 있나 싶어서요.”
“…무슨 일로 오셨소?”
“아, 운전하다가 졸음이 와서 쉬다 가려고 왔습니다.”
집 주인은 묘한 눈치로 눈동자를 아래위로 굴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는 눈치에 거북한 기분이 들었지만 의심스러운 눈치를 주느니 차라리 가만히 서 있었다. 이유는 몰라도 외지인을 꺼리는 동네라면 정말로 차 안에서 덜덜 떨며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다시 말을 꺼냈다.

“찜질방이나‥ 어디든 좋으니 길 좀 알려주시면….”
“충고 하나 하지요. 실수로 들어온 거라면 당장 나가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요. 여기 있어 봐야 좋은 꼴 못 봅니다. 동 트기 전에 나가시오.”

현관문이 별안간 쾅 닫혔다. 눈앞에 열린 문과 사람이 있었다는 잔상조차 남지 않을 만큼 깔끔한 퇴장이었다. 살다 살다 진짜 별 꼴을 다 본다. 다른 집에 물어보면 다른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치다 말고 사라졌다. 춥지만 차 안에 있다가 조용히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이 이롭겠다 싶어 등을 돌리고 헤드라이트 불빛을 따라 차로 걸어갔다. 그러다 다시 아까 본 들짐승이 근처에 있을까 싶어 무서운 마음에 급하게 차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 뒷좌석에 혹시나 무언가 타고 있는 것은 아닐지 팔을 휘휘 저으며 확인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겨우 눈을 감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여기서 한숨 자고 나가는 것이 나을지 도로로 나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자는 것이 나을지 머릿속으로 저울질하다 눈을 떴을 때,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검은 형체가 앞 유리창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차 내부 등을 켜고 앞을 보자 코가 안으로 주저앉고, 턱이 살짝 떨어져 덜덜 떨리는데다 눈은 무서울 정도로 움푹 파여 있었다. 피부도 노인처럼 주름이 많이 가 있는데다 손은 마디가 뒤틀려 누가 봐도 정상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기괴한 것은 뒤틀린 손으로 천천히 똑, 똑, 똑, 똑 앞 유리창을 두드렸다. 정신을 똑바로 차릴 때까지 굵은 빗줄기가 차창을 때리는 듯한 환각을 느꼈다. 그러나 비는커녕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앞 유리창을 소리 내어 두드리는 것은 정체모를 사람이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운전석의 유리창을 손가락조차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조금 열었다. 딱 숨만 쉬고 소리만 전달될 틈이었다.

“거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내뱉고 보니 비명에 가까운 외침은 그것에게 닿은 듯 했다. 그는 꿈틀거리며 보닛에서 내려와 운전석 옆 유리창에 달라붙었다. 그제야 긴 머리카락이 보였다. 귀신인가 사람인가 싶어 창문을 올리려는 차에 그가 창문 사이로 손가락을 끼워 닫히지 못하게 했다.

“아기를 뱄습니다. 지켜주십시오. 아기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살려주십시오.”

아직도 사람인지 귀신인지 헷갈리는 통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미류동에서 치료받는 나병 환자입니다. 의사들이 아기를 밴 걸 보면 분명히 아기를 죽일 겁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숨겨주세요.”

그는 한 번만, 이라며 손을 창문에서 떼고 겨우 엄지만 덜 굽힌 손 모양을 해 보였다. 가는 여자 목소리가 어눌하게 이어지는 동안 나병이라는 병이 무슨 병인가 계속 머리를 굴렸다. 옮는 병인가 아닌가. 안 옮는다!

경적을 세게 울렸다. 큰 소리가 나자 여자는 놀라 뒤로 넘어갔다. 경적을 한 번 더 누르고 창문 틈에 대고 소리쳤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여자가 배를 감싸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이를 가진 건 사실인 듯 했으나, 아이를 밴 몸으로 혼자 밤에 돌아다니는 행태가 이해되지 않았다.

“거짓말 하지 마시오! 나병이 어디 옮는 병입니까? 자식이건 누구건 옮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치료나 받으면 될 텐데 무슨 목적으로 이럽니까?"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았다. 무슨 동네가 이리 음습한지. 가만히 있다가 무슨 일이든지 휘말릴 것 같았다. 들어오는 길이 일차선이어서 유턴해 나갈 수는 없고 직진해서 길을 찾아봐야겠다 싶어 왼쪽 도로로 미끄러졌다. 구름에 파묻힌 듯 하얗게 안개 낀 도로를 한참 지나가도 왼편에는 산이고, 오른편에는 마을 초입부터 보였던 건물이 줄지어 있었다. 잠시 내려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더 가면 길이든 뭐든 나오겠지 싶어 속도를 올리는데 눈앞에 다시 미류동이라는 초록색 표지판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놀라 차를 세웠다. 방금 차를 몰고 떠난 곳에서 나병 걸린 여자가 몽둥이로 맞고 있었다. 때리는 사람은 아까 길을 물어봤던 집주인이었다. 그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었는데 다들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날이 조금 샜는지 약간의 어슴푸레한 빛에 나병 환자가 멀리서도 자세히 보였다. 맞아서인지 찢어진 옷 사이로 발자국이 찍힌 불룩한 배가 보였다. 다급하게 옆 좌석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고 전원 버튼을 수십 번 꾹 눌렀다. 핸드폰은 위잉거리는 소리도 없이 검은 화면만 유지하고 있었다. 답답함에 핸드폰을 탁탁 두드렸다. 그러자 화면에 통신사 로고가 지나가고 드디어 홈 화면이 켜졌다. 112를 누르려고 핸드폰 화면과 유리창 밖을 번갈아 바라보는데, 임신한 나병 환자가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것이 보였다. 핸드폰은 전파가 터지지 않고 있었다. 운전석 창문을 끝까지 내리고 머리를 밖으로 들이밀었다.

"거기 뭐 하십니까!"

한 마디 내뱉고 나자 없던 용기가 갑자기 불타올랐다. 현행범이니 경찰이 출동하면 잡힐게 분명했다. 어디 몽둥이로 쓸게 없나 차 안을 더듬다가 장우산을 하나 손에 쥐고 차 문을 열고 나왔다.

"거기 그 임신한 여자 아닙니까?"

세 명의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는 한꺼번에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노려보다가, 처음에 만났던 집주인이 손짓을 하자 나머지 두 명이 다시 나병 환자의 배를 걷어찼다. 나병 환자가 덜덜 떨리는 턱을 움직여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조심스레 한 발짝 한 발짝을 다가갔다. 그러다 열 발짝이 남은 즈음에 몽둥이가 발치에 턱하고 걸렸다. 집주인이 몽둥이를 들고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떠나라고 충고하였소. 남아있는 이유가 뭐요? 여기 환자는 격리된 나병 환자고, 이 마을은 격리 병원의 의사나 환자가 머무는 마을이오."

그제야 이 음습한 마을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의사였던 집주인은 구겨진 눈매 사이로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에 고개를 돌리려다가 꺽꺽거리는 소리가 들려 아래를 보았다. 나병 환자가 신음을 흘리다 눈이 뒤집혀 까무룩 기절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사람을 폭행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아이를.."

또박또박 흘러나오는 단어 사이를 한 줄기 정의감이 단단히 메웠다. 그러나 정의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집주인의 표정에 한순간 비웃음과 경멸이 스쳐지나갔다. 뒤의 의사들은 어디선가 들것을 가져와 기절한 여자를 들것에 실어 들었다. 집주인은 뒤돌아 그 모습을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윗사람 지시사항이오. 다시 한 번 말하겠소. 마을을 나가시오."

끼어들지 말라는 지시가 발목을 붙들었다. 윗사람이라는 말은 누구를 칭하는 것일까. 멍하니 힘이 풀린 눈으로 그를 보자 그는 흘깃 내 뒤쪽을 응시하더니 덧붙였다.

"차가 참 좋소. 외제인가? 최신으로 나온 스텔라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데, 있는 집 귀한 분이 굳이 외지까지 온 까닭을 모르겠소. 잘 가시게."

의미 없이 덧붙인 말에 홀려 좋은 사람인가 했다. 그 말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담겨있었다. 그렇다면 그 여자는 잡혀 마땅한 여자인가? 그래, 스텔라? 최근에 그런 차종이 나왔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온 몸에 무장했던 정의감이 땅에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처음부터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어둠 사이로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비춰 들것을 든 의사 세 명이 환자를 싣고 가는 풍경이 안개 너머 희미한 형체로 아른거렸다. 이제 정말 마을을 나가야지 싶었다. 아까는 길을 잘못 들었는지 되돌아왔지만 나갈 길이 없을 리가 없었다. 어깨와 몸이 무거워 땅에 심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선가 불어온 음산한 바람이 몸을 스쳐갔다. 발을 겨우 빼내어 차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카시트에 몸을 기댔다. 쉬기는커녕 괜히 이상한 마을로 들어와서 더 고생이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핸드폰 화면에 뜬 시간은 벌써 새벽 3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시간낭비를 제대로 했다. 이대로 운전해가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준비하고 또 출근이었다.

차를 몰았다. 이번에는 무사히 마을을 빠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천천히 오른쪽 도로로 들어섰다.

나병 격리 마을이란 것에 대해 살면서 들어본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섬 마을이었는데,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람들하고 악수도 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보았던 것도 같았다. 의아한 점은 아직도 그런 것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치료약도 분명히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런 곳이 있다는게‥. 고개를 저었다. 말 못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의구심을 품고 고발한다 해도 사실 정당한 일이었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또 괜한 일에 힘을 쏟느니 빨리 집에 가서 쉬는 편이 이롭다. 내일 일어나서 찾아보고 신고해도 되는 문제 아닌가. 혼자 나섰다가는 아까 여자에게 휘둘러진 몽둥이가 나를 향할 수도 있다. 위험은 피하고 싶었다. 멀리 처음 보는 큰 벽돌 건물이 있었다. 건물이 넓게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도로가 이어져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아까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맨 모양이었다. 엑셀을 세게 밟았다. 한 순간이라도 더 이 마을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건물이 눈앞을 지나가자 고속도로로 나가는 길이 보이는 듯도 했다. 계속 엑셀을 밟고 길을 다라 직진했다. 눈앞에 방금 보았던 벽돌 건물과 같은 건물이 또 지나갔다. 같은 건물을 많이도 지어놓았다 싶었다. 계속 길을 따라가자 다시 똑같은 건물이 시야에 잡혔다. 마을을 빠져나가려고 한 것이 오히려 더 깊숙이 들어온 거였나? 아까 그 일차선 도로로 나가야 했었나? 유턴을 하려고 백미러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차의 뒤편에는 눈에 익은 건물이 서 있고, 더 멀리에는 초록색 표지판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이 보였다. 아까 그 곳에서 불과 몇 미터조차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그러다가도 아까 길을 제대로 묻고 나갔으면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장우산과 핸드폰을 들고 다시 차에서 내렸다. 벽돌 건물이 늘어선 쪽이 아까 의사들이 향한 곳이었다. 한 건물 창문으로 전등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의식하며 걸어갔다. 건물 안에서는 나병에 걸린 그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담장을 지나고 창문이 바로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조용히 몸을 수그리고 창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의사 세 명이 마스크를 쓰고 여자의 배에 주삿바늘을 꽂고 있었다. 치료 중인가 해서 몸을 일으켜 창문을 두드리려다 바로 다시 몸을 숙였다. 방 안의 벽에 세워진 찬장 속에 놓인 사람 머리와 눈이 마주친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몸을 숙여서 붉은 벽돌 벽과 흙바닥을 보면서 생각을 가라앉혔다. 병원이라면 인체 모형이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다시 조심히 몸을 들어 방금 마주친 사람 머리를 살피자 사람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유리병에 담긴 투명한 액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체 모형을 저렇게 담아놓던가? 들키지 않도록 구석에 숨어 눈을 굴렸다. 찬장 안과 겉에 수많은 유리병이 놓인 것이 보였다. 탯줄을 단 아기가 유리병에 둥둥 떠다니는 것도 있었고, 한 유리병 안에 틈 없이 작은 아기들이 장독에 담긴 장아찌처럼 처박혀있는 것도 있었다. 사람의 장기로 보이는 것들도 유리병 안에 가득 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몇 손가락이 굳어 비틀어진 손 모양이 잘려 유리병에 발과 함께 담겨있는 것도, 한 사람의 장기를 몰아 담아놓은 것도, 사람 얼굴이 목만 잘려 동동 떠다니는 병도 있었다. 찬장 위에 놓인 큰 병들이나 찬장 안에 놓인 병들이나 다 같이 사람을 토막 내어 넣어둔 것 같았다. 여자는 아직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여자의 배가 점점 꺼지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밑에서 아기가 아무 미동도 없이 미끄러져 나왔다. 한 의사가 그 아기의 다리를 잡고 쓰레기 처리하듯 고무 양동이에 던져 넣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여자의 비명은 울음이 되어 귀신의 울음소리라도 되는 듯 음산했다. 토기가 쏠렸다. 입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발을 헛디뎌 뒤로 크게 넘어졌다. 손에 들었던 장우산이 날아가 창문을 내리쳐 창문 귀퉁이가 깨졌다. 건물의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두 손으로 바닥을 짚어 기다가 일어나 뛰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 다시 올라탔다. 시동을 켜고 기어를 올렸다. 핸들을 최대로 꺾자 차가 돌아갔다. 옆 유리창으로 건물 밖으로 나온 의사들이 이쪽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장우산을 들고 고함을 치고 있었다. 차를 다 돌리자 눈앞에 미류동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다시 보였다. 온갖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클락션을 주먹으로 때렸다. 경적이 빠앙 큰 소리로 울렸다. 머리 위로 표지판이 지나쳐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급하게 핸들을 꺾어 고속도로로 나왔다. 도로에는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았다. 돌연 눈부신 빛이 내리쬐었다. 동이 틀 시간이 가까운 모양이었다. 손을 들어 시야를 차단했다가 그림자가 진 듯해 손을 내리자마자 시야에 자동차가 가득했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볐다. 그 동안 열려있던 운전석 창문을 통해 차가 도로를 굴러가는 소음이 울렸다. 간혹 클락션 소리도 들렸다. 딱딱한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를 관통하자 눈을 떴다.

"약 18.7킬로미터 남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켜진 채로 경로를 안내하고 있었다. 오전 6시 02분. 백미러에 비친 도로에도 자동차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미끄러졌다. 꿈이라도 꾼 건가. 현실하고 혼동하고 있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건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고속도로에 차가 가득한 평범한 풍경에 이질감이 들었다. 날씨가 너무 맑아 안개가 끼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저 멀리 주유소와 아파트들이 보였다. 눈에 띈 계기판 바늘이 위험할 정도로 내려가 있었다. 차를 우회해 주유소 안으로 들어갔다. 주유소 직원이 달려 나와 창문을 두드렸다. 평범한 얼굴 위로 나병 걸린 여자의 기괴한 얼굴이 잔상처럼 떠올랐다. 창문을 열었다.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시동 꺼주시고, 주유구 열어주시고요. 건조한 목소리로 으레 들어왔던 말이 들려왔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아까 의사들의 말투였다. 나병 걸린 여자의 말투나 억양도 어쩐지 현대의 말과는 다른 오래 전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잠겨 있자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넣어드려요?"
"아, 오 만원 어치 넣어주세요."
그리고 다시 생각에 잠기려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등을 돌린 채 주유기를 조작하고 있던 직원을 불렀다.

"저기요. 혹시… 이 근처에 미류동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나요?"

직원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젓고는 "글쎄요." 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내비게이션이 눈에 들어왔다. 내비게이션에 미류동이라는 지명을 입력하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차창 밖의 직원이 주유기를 차에 꽂고 돌아와 다시 대답했다.

"이 근처에 그런 동네는 없는 걸로 알아요."

"‥네."

맥이 풀렸다. 기묘한 경험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더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출근하기도 벅찬 시간이었다. 잔 생각을 털어버리려 머리를 휘저었다. 세상에 없는 일이라면 아기가 사산당하든 사람이 잘려 보관되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전속력으로 집을 향해 달렸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오전 8시 반 쯤. 차가 막히지만 지각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집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다. 목에 맨 남색 넥타이가 목을 조르는 듯 달려있었다. 기분은 침착해졌지만 다시 토기가 올라왔다. 집에서의 일이었다.

"많이 늦었네. 잠도 못자고 기다리다 결국 소파에서 쪽잠 잤다. 일이 많았니? 자정쯤에 온다더니."

집 안에 들어서자 부엌에서 음식 냄새가 났다. 옷을 풀어헤치며 부엌으로 들어서자 새빨간 김치찌개가 피를 연상케 했다. 아무리 환상이라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며칠간 붉은 색을 띤 것은 무엇이든 보고 싶지 않았다.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나병 환자처럼 일그러져 있을까봐 쳐다보지도 않았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어머니가 소파에 앉아 뉴스를 틀어놓고 앉아있었다. 지나쳐 가려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밥 먹어라."

"오늘은 밥 먹을 시간 없어요."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그냥 다녀와서 먹을게요. 하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몸이 굳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한센병이라는 단어가 지나칠 수 없게 만들었다. 아나운서가 나오는 화면이 지나가자 사람 머리가 담긴 듯한 유리병 사진이 화면에 등장했다. 그대로 토가 나올 뻔했다. 지난밤에 본 그 나병 걸린 여자의 얼굴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벽을 짚고 간신히 섰다. 어머니가 "괜찮으냐."며 벌떡 일어서 다가왔다.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괜찮지 않았다.

도망치듯 옷을 입고 집을 나왔다. 내딛는 곳마다 흙바닥이고 붉은 벽돌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 이웃집 여자가 같이 탔다. 그 여자가 나병 걸린 여자인 것처럼 무서웠다. 유리병이 툭 깨져 발치에서 아기가 굴러다녔다. 1층입니다. 겨우 지옥을 벗어났다.

뉴스 아나운서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전국의 한센병 격리 시설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90년대 초반까지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후에도 태아를 사산하고 임신 중절 수술을 하는 등의 끔찍한 일이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도로가 한산해 속도를 올렸다. 예상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출근 시간대에 도로에 있는 것은 당연하고 익숙한 일인데 온 몸이 춥고 쓰렸다. 도시가 일그러져 보였다. 병가를 내고 쉴까 싶지만 남은 일은 산더미고 일을 하며 느꼈던 성취감이나 일자리 자체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쳇바퀴 굴러가듯 평범한 삶에서 만족을 느끼고 바쁘다며 다른 풍경은 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본대도 똑같을 것 같았다. 평화로운 세상에 끔찍한 몰골의 무언가를 보았다. 거짓이라 매도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무언가를 보았다. 얄팍하게 타올랐던 정의감 위에 위선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살려 달라 빌었다. 그는 1980년대 어느 날의 소록도일지 모르는 곳에 데려가 간절한 마음으로 생명을 살려달라고 빌었다. 불려간 이는 몇 시간 뒤 사산당할 여자를 숨겨주지 않고 버렸다. 나 또한 살인에 가담한 공모자가 아닌가. 여자는 늙어 죽은 뒤 머리만 남아 유리병에서 다른 유리병에 담겼었을 아기를 애타는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수 년 동안 격리병원 수술실 구석에서 그렇게, 그렇게.

그 장면을 보고서야 세상으로 비로소 나올 수 있었다. 죗값이 아닐까. 방조와 무관심에 대한 죗값이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나가라고,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온몸으로 확인하라고…. 아픔은 살아있다. 오랜 시간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다. 회사 가까이 도착했다. 달라진 것 하나 없었다. 몸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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