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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자체가 ‘불법’인 무국적 아동
[296호] 2017년 02월 28일 (화) 21:14:17 전수연 변호사 .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필에서는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등의 인권을 옹호하고 감시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안의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방인(strangers)’들이죠. 그러나 우리 또한 어디에선가는 이미 이방인이며, 혹은 이 땅에서 언젠가는 이방인이 될 것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지유(가명)를 알게 된 건 재작년 가을이었습니다. 지유는 국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현재는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습니다. 지유의 엄마와 지유를 보호해 온 한 기독교 단체의 간사님을 통하여 지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유의 엄마는 베트남 국적이었고, 한국에 들어와 한국남성과 혼인한 이주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오래 가지 못하였고, 얼마 안가 이혼을 하였습니다. 이후 갈 곳이 없어진 지유엄마는 시설에서 잠시 머물렀지만, 우울증과 알코올의존증이 심해져 더 이상 시설에 머무는 것마저 힘들어졌습니다. 당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가 지유까지 있었던 터라, 이를 보다 못한 간사님이 지유엄마와 지유를 간사님의 가정으로 데리고 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지유엄마는 지유를 간사님의 가정에 남겨둔 채, 베트남으로 홀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지유엄마로부터 국제전화가 왔습니다. 지유엄마는 “지유를...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실낱같은 말을 남겼고, 그 말은 지유엄마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숨이 되었습니다.

 지유엄마... 왜 이리 무책임했을까 싶으면서도, 얼마 전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미친년 널뛴다는 말은 폭력적이다. 미친년을 널뛰게 만든 미친놈들의 존재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은유 산문집,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잠시 ‘미친놈’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아니 ‘미친놈’의 시각으로 지유엄마를 바라보고 있던 제 모습에 반성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지유는 현재 여러 사정상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지만, 간사님의 가정은 여전히 주말에는 지유를 집에 데려와 함께 지내는 등 여전히 ‘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지유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기에 불편한 점이 또 불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출생신고는 ‘속인주의’에 따라 부모 혹은 부모 중 일방이 한국 국적이어서, 아이도 한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무국적 아동들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경우로는, 한국에서 마땅한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이거나, 혹은 정치, 종교 등의 사유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민’의 자녀로 태어난 경우입니다. 우리나라는 놀랍게도(?) 무려 1962년에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비준하였습니다. 동 협약에는 학교교육과 노동권, 사회보장 관련해서는 무국적자에게 ‘내국민과 동일한 대우’를 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국적자 특히 지유와 같은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나 정책적 고려는 50여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미비한 상태입니다. 난민법도 난민‘인정’된 자의 자녀에게만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데,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현재 4-5% 수준으로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 쉬울지도. 이외의 범주에 속한 아이들의 경우, 그나마 초등학교는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입학은 가능하나, 재량으로 거절해도 그만입니다. 중학교∙고등학교에서 교육받을 권리는 법령으로도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건강권의 경우, 건강보험을 받지 못해 단순 감기로 병원비를 몇 만원씩 지불하기도 합니다. 지유를 보호하는 간사님도 지유가 혼자 다니다 교통사고라도 날까 노심초사하신다는 말씀에 제발 그런 일없길 바라는 저의 맘을 같이 실었습니다.

 국적 없이 어디에서도 증명되지 못하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숨 쉬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연결되어 있지요. 존재의 기록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곧 한국사회에서 기록된 존재로서 숨 쉬고는 있으나 ‘존재’로서의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대다수의 존재들도 함께 노란빛 봄꽃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을 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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