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지식인의 몰락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지식인의 몰락
  • 장한새 기자
  • 승인 2017.03.29 07:04
  • 호수 2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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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지학의 바탕에서 사회적 책무 되새겨야
▲ 일러스트_정지은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지식인들의 치부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사회에서 고속 승진을 거듭한 엘리트와 대학 교수들이 박근혜-최순실의 수족인 양 철면피하게 부역해왔던 사실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세칭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 거론되는 서울대를 졸업한 이들이 부정의 한 축을 차지하 고 있다. 각각 청와대 비서실장, 청와대민정수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던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이 그 면면을 차지한다. 이들은 모두 율사라는 공통점 이 있는데, 김기춘과 우병우는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 나가면서‘법꾸라지’라는 칭호를 획득한 양상이다.

 고고한 선비의 기풍으로 연상될 법한 교수들 역시 처참한 수준이었다. 안종범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였고, 김종 전 문화체육관 광부 2차관은 한양대학교 스포츠 산업학과 교수였으며,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홍익 대학교 시각디자인 학과 교수였다. 대학차원에서도 문제는 심각했다. 정유라의 불법 입학 및 맞춤형 학사관리로 이화여대는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류철균 교수 와 남궁곤 전 입학처장이 비리에 관련되었음이 밝혀졌다. 연세대도 장시호의 특혜입학 혐의를 비껴가지 못하였다.

 

교육은 출세를 위한 수단인가?

 지식인이란 존재가 왜 이렇게 무기력하게 부도덕한 정권의 하수인으로 기꺼이 전락해 버렸을까. 이는 아마도 대한민국의 교육 구조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 제에서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현재 이 땅의 학교 교육이 목표하는 것은 명문 중 고등학교 입학이고, 명문 대학 입학이며, 이는 출세를 위한 과정으로 설정되어 있다. 즉 교육은 인성 함양과는 별 상관없는, 출세를 위한 수단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한강의기적’을 이루어낸 지난 압축성장 시절에는 앞선 나라를 따라잡으 려는 조급함 속에서 이러한 설정이 용인될 수 있었다. 과정의 정합성은 생략한 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성 강조가 이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군사정권이 이를 활용했던 측면도 있다. 건전한 시민의식 함양이라든가 도덕ㆍ정의와 같은 가치는 군사정권이 구축하려는 질서와 정면에서 맞서지 않았겠는가. 군사정권은 다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국민의 창출을 위하여 교육을 사고 하였을 따름이다(<국민교육헌장>). 대학 입시 등 시험을 보는 방식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하게 변화해왔으나, 교육 자체에 대한 관념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가 목도하게 된 것이 현재와 같은 지식인의 몰락이다.

 ‘장미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들이 교육 관련 공약을 다양하게 내놓고 있지만, 그다지 공감되지 않는 까닭은 바로 그러한 지점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 대 이재명 성남시장과 남경필 경기지사는 대입에서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입시제도 간소화를 위해 학생부종합전형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는 수능을 자격고사 형태로 바꾸고, 한국형 입학사정관제로 학생 선발방안을 구상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는 국가교육위원회를 독립기구화하는 식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국∙공립 대학 공동학위제’를 제시했다.

 

"
참된 자기를 잃고
참됨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부리지 못한다
"

 모두들 대학에 입학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나름의 방안을 내어놓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해 내기 위한 안목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측면 에서는 대동소이할 뿐이다. 또한 이들은 모두 교육부 폐지 혹은 축소를 내걸고 있는데, 과연 이로써 교피아(교육부 마피아)의 영향력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을 것이며, 일그러진 교육의 가치를 올곧게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이런 회의감에는 교육은 결코 출세를 위한 수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개입해 있다.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

 이러한 문제를 폭넓게 조망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겠다. 그 하나는 전통을 톺아봄으로써 온고지신의 자세를 꾀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 즉 위인지학을 멀리 하면서 참된 공부는 위기지학이라고 강조하였다.

 예컨대 장자는“참된 자기를 잃고 참됨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부리지 못한다.”고 하면서 주나라 예[􃳒􂣟]에 맞춰 생사를 걸었던 이들을 비판하고 있다. 예 보다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성리학 또한 위기지학을 강조하였다. 성리학의 바탕을 닦은 정이는 ‘배움의 길을 걸었던 옛 사람들은 자 기 자신을 위한 배움의 길을 걸었다.’는 공자의 말을“배움의 길을 바깥에서 구하지 말고 자기 안에서 찾으라[􃧣􂞊].”는 뜻으로 풀었다. 또한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의 사상은 철두철미하게‘자기 자신을 위한 배움’을 목표로 시작해서 그것으로끝난다.”(드배리『, 중국의‘자유’전통』, 이산, 1998)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

 이러한 관점은 지식을 도구로 여기는 근대의 가치 체계와 충돌하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근대가 태동한 서양에서도 근대의 도구적 이성에 관한 회의가 진작부 터 확산되고 있었으며, 이를 비판하는 데서부터 탈근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위기지학으로써 가능해지는 교육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고려 해 볼 만하지 않을까. 분명한 사실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는 김기춘ㆍ우병우ㆍ조윤선 등과 대학 교수라는 안종범ㆍ김종ㆍ김상률ㆍ김종덕ㆍ류철균ㆍ남궁곤 등 이 시민들의 평균의식보다 밑도는 행태를 저질렀다는 사실이고, 이는 위인지학에만 골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지식 전통에서 시야를 조금 좁혀 보면, 시대와 적극적으로 맞섰던 실천적 지식인들을 볼 수 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은 곧 폭압적인 군사정권에 맞서는 존재로 인식되곤 하였다. 그렇지만 절차적 민주화이후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움직이는 기능적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이러한 유형의 지식인들을 비판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이야기한다. 지식인이라면 현재의 권력자와 부르 주아의 이데올로기의 하수인으로서 이를 대변하고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폭력적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 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노명우는 지식인을 대표하는 학자를 ‘사유의 대리인’이라고 말한다. ‘사유의 대리인’이란 일반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은밀하게 숨 겨진 것들을 탁월한 상상력과 통찰로써 들여다보고 문제를 찾아내며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노명우 또한 지식인이라면 권력이 구축하고 있는 이데 올로기와 맞설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 세상을 지배하는 모든 권위에 저항한 장 폴 사르트르와 그의 아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식인이라면
권력이 구축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생존을 위하여 순종만이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 그 견고한 질서 속에서 과연 누가 먼저 나서서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사르트르와 노명우의 논의는 그 역할을 지식인에게서 찾고 있는 듯하다.

 

시민의식을 요구했던 여러 대학의 입학식 축사

 올해 성낙인 서울대 총장의 입학식 축사가 언론 여러 곳에서 다뤄졌다. “최근 서울대인들은 부끄러운 모습으로 더 많이 회자된다.” 며 “서울대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한 서울대인들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성 총장은 입학생들에게 당부하였다“. 서울대라는이름에도취하면오 만과 특권의식이 생기기 쉽다. 내게 더 많은 것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생기면 출세를 위해 편법을 동원하고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 정도까지 강렬하지는 않지만, 경희대의 입학식 총장 축사 역시 건전한 시민으로서의 의식과 덕성을 요구하는 내용이 었다. 경희대 조인원 총장은 경희대학교에서 지난 세월 중시해온 ‘학문과 양심의자유’를 강조하며 부와 경제성장을 최우선가치로 여기던 과거와 달라진 시대정 신으로 새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의 당부가 각 대학의 내실 있는 교육으로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는 알 수없지만, 그래도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드러냈다고 할 수 있겠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 사회의 적폐를 청산하고 이참에 구조를 새롭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이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거슬러서는 안될 당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러한 인식이 선거 국면에 묻혀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로 굴절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교육 개혁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이기 때문이다. 이를 몰각하는 순간 최근 몇몇 대학의 입학식 총장 축사에서 나타났던 문제의식은 구두선(口頭禪)에 머무르게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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