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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all strangers somewhere] 저들은 돈 주고 부리는 인부가 아니오. 내 재산이지!
[298호] 2017년 03월 29일 (수) 07:30:43 전수연 변호사 .
   
 “저들은 돈 주고 부리는 인부가 아니오. 내 재산이지!”

 <노예12년>이라는 영화의 대사입니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840년대. 백인들에 의해 납치된 흑인들이 자신의 신분과 인격을 갈취당한 채 사람의 옷을 입은 가축처럼 백인들에 의해 부려졌던 시대를 배경삼은 영화라고 합니다. 이로부터 17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에도 몇 해전, 소위‘염전노예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지요. 우리 대부분이 무언가의 노예로 살아 가는 요즘, 노예라는 단어가 주는 신선함은 없지만, 염전노예는 말 그대로‘노예’였던 것을 알고 계신가요.

 벌써 한 해 하고도 반이 지났네요. 염전노예사건의 피해자들을 대리하여 국가배상청구를 준비하기 위해 피해자중 한 명인 박씨를 면담하러 갔습니다. 약간의 어눌한 말투… 심하지는 않았지만 지적장애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가 일했던 염전에서의 일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박씨는 1년여가 지난 일들을 마치 사진이라도 찍어놓은 듯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이어지는 고된 노동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밭가는 소처럼 일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박씨가 손에 쥔 돈은 9개월 동안 총 90만원. 종종 주인의 친구가 농사일이나 집안 수리공사를 하는 날이면 박씨를‘빌려’갔다고 합니다. 박씨는 주인 친구의 밭에 가서 하루 종일 고추나 호박을 따는 등의 농사일을 도왔지만, 박씨의 일당은 박씨가 아닌 주인이 받았으며, 박씨의 손에는 달랑 담배 한 갑이 쥐어졌습니다. 주인의 잦은 폭언과 폭행은 일상이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박씨는 탈출하기로 마음먹었고, 주인 내외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새벽에 몰래 도망쳐 나왔습니다. 10분 거리에 있는 파출소에 도착하였지만, 파출소 문이 잠겨있어 파출소 벽에 기대어 쪽잠을 자다가 새벽6시경에 순찰을 나오는 경찰에게 “나 힘들어서 여기에서 더 이상 일못하겠으니, 나 좀 이 섬 밖으로 내보내달라”라고 구조요청을 하였습니다. 경찰은 알겠다고 말하며, 박씨를 파출소 안으로 안내한 뒤 운동을 다녀오겠다며 나갔는데, 잠시 후에 파출소에 온 사람은‘염전주인’이었습니다. 여느 때와는달리 주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박씨에게“소금내는 계절까지만 일해달라”며 간곡히 부탁하였고, 경찰의 묵인 하에 박씨는 어쩔 수 없이 염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뒷마당에서 박씨는 각목으로 수 십번의 타작질을 당하였습니다. 또 한 번 도망치면 죽여버리겠다는 주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싹싹빌었습니다. 한 달 후 박씨는 다시 한 번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였고, 다행히 염전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박씨를 인터뷰하면서, 배우 하정우가 주연으로 열연했던‘추격자’가 떠올랐습니다. 사이코패스 범인이 도망간 피해자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피해자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어 방문을 열던 그 순간의 공포가, 박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밀려왔습니다. 구조요청을 하러 갔던 파출소에서 만난 사람이 박씨를 개처럼 부려먹던 염전주인이라니요. 박씨는 그 순간‘난 죽었구나’싶었다고 회고합니다.

 2015.11. 박씨와 같은, 혹은 더 심각한 상황에 있었던 피해자들을 대리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한 피고 대한민국(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의 피고는‘대한민국’이 됩니다.)과 신안군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특히 경찰직무집행법상의 적법한 권한을 불행사(구조요청을 하러 온 자에게 적절한 구조조치없이 다시 염주에게 돌려보낸 행위)한 경찰관, 사업장감독권한을 불행사한 근로감독관, 불법 직업소개소(주로 염전주인들에게 염전인부들을 팔아넘기는 브로커 역할을 함)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고용노동부 장관, 선착장(염전노동자들에게는 섬 밖으로 나가는 표를 팔지 않았음)에 대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신안군에 대해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권한을 불행사하여 발생한 정신적∙물질적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를 한 것이지요.

 박씨는 주인한테 맞아왔던 날들을 이야기하며, “저(박씨)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 주인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고, 또 일도 잘 못했기 때문에 주인도 화가 나서 저를 때린 거에요”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영문모를 주인의 매질을 이해하고 싶었던걸까. 혹은 제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합리화였을까. 박씨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주인의 얼굴이 투명하게 덧씌워져있는 것 같았습니다. 계란후라이 를 위해 집어든 소금병에 적힌“천일염 100% :국내산(신안군)”. 열 자 남짓의 한 줄. 짜고도 썼던 누군가의 회색빛 기억들.

 

전수연 변호사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필에서 는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등의 인권을 옹호하고 감시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안의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방인(strangers)’들이죠. 그러나 우리 또한 어디에선가는 이미 이방인이며, 혹은 이 땅에서 언젠가는 이방인이 될 것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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