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대가 광장에 나온 까닭은
[사설] 그대가 광장에 나온 까닭은
  • 가톨릭대학보
  • 승인 2017.03.29 07:55
  • 호수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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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탄핵”,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 가장 큰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마치 바둑 경기 후 복기를 해 보는 것처럼 주요한 의미들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승리라는 결과에만 만족한다면, 그 사건은 우연에 그칠 수 있고, 앞으로 만들어 나아가야 할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게 된다.

 이 사건과 관련지어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시민의승리”,“ 촛불의승리”,“ 민주주의의 승리”“, 국민의 명령”등이었다. 이것들은모두 같은 뜻, 다른 표현으로, 국민들의 민주적 정치 참여를 관통한다. 민주주의에 대해 다양한설명이 있지만, 이를 가장 단적으로 나타낸 것은 H. 아렌트의“함께 말하고 실천함으로써 나타나는 사람들의 조직”이다. 이를“의사소통 민주주의(communicative democracy)”라고도 한다.

 인간이 실현했던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는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민주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을‘아고라’, 즉 광장이라고 했다. 광장에서의 의사소통 방식과 그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 특성을 나타낸다. 바로 그곳에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모이고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의견이 정당한지 토론하고, 사안에 대해서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함께 결정하고 그 결정을 수용한다. 이러한 직접민주주의와는 달리, 오늘날은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대신할 국회의원들을 국민들이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이다. 대리인들의 존재이유는 오직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여 국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이번 촛불시위는 폭력 없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며, 많은 선진 국가에서 놀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촛불시위는 유력 정치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멈칫거린 그들마저 국민의 뜻을 읽고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주체는 곧 국민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건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일은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그들도 촛불시위에 참가한 국민들만큼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지닌다. 문제는 그들의 의견 표출방식이 민주적인가 또는 폭력적인가,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인가 또는 특수 목적의 정치인이 이끈 것인가, 의견의 토대가 진실과 사실에 기반하는가 또는 거짓과 왜곡된 사실에 의존하는가, 법치국가의 마지막 보루인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수용하는가 또는 부정하는가 하는 의사소통의 민주성과 정당성이다. 아직도 탄핵 무효를 외치는 사람을 지지할 국민은 많지 않은것 같다.

 사건 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여러 과제들이 논의되고 있다. 그 근본은 바로 의사소통의 민주화이다. 비민주적인 지배구조의 오랜 관행으로 인해 공공기관, 기업체, 학교 등 모든 공동체에서는 아직도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침묵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행태가 자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개선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노력해야 한다. 이제 의사소통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드러난다. 민주적 공동체에서 공적 문제에 대해 의견들이 대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의견들을 합리적으로 비교하고 평가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요컨대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중고등 학생들과 대학생들에 게 더 좋은 세상을 꿈꾸고, 그 실천에 참여하는 민주적 지성인 교육과 비판적 사고력 교육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견이 심각하게 대립하고, 상대방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고 비판할 때도 소통하는 법, 설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탄핵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말들을 들었다. 그 중에는 오직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말, 사실을 왜곡하는 말, 상대방을 겁박하는 말, 조롱하는 말, 국민을 이간질하는 말 등 말답지 않는 말을 많이 들었다. 민주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유는 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구하기 위함임을 알았더라면, 모든 국민의 비판능력이 뛰어났더라면 이런 유형의 말들은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말은 곧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요, 말들은 곧 그 사회의 민주적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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