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all strangers somewhere] “너희들이 신고하면 잡혀가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야”
[We are all strangers somewhere] “너희들이 신고하면 잡혀가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야”
  • 전수연 변호사
  • 승인 2017.04.11 20:17
  • 호수 2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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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예전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서 다른 사람의 결혼식에 가서 축가도 부르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친구의 소개로 필리핀에 있는 에이전시에 갔죠. 그리고 생후 3개월 밖에 안 된 딸아이까지 떼어놓고 한국에 왔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노래를 부른 적이 없습니다.”

 필리핀 국적의 줄리아(가명)는 ‘예술흥행비자’라고 하는‘E-6’비자를 받아 한국에 입국하였습니다. 지금은 가난하지만 한국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르면서 돈을 벌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필리핀에서의 삶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분홍빛 꿈을 가지고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줄리아는 곧바로 미군 부대 근처에 있는 술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줄리아를 고용한 파견업체와의 근로계약서상 월급은 약 120만원이었으나, 줄리아는 40여 만원을 받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심지어 첫 두 달은 줄리아가 한국에 오기까지 파견업체에서 쓴 비용(항공비나비자마련비용 등)을 충당해야 한다는 이유로 월급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매일 저녁 6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일을 했고,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13~14시간을 일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매주 줄리아가 채워야 하는 쥬스쿼터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주에 66쿼터를 다 채우면 쿼터당 2,000원을, 못채우면 1,500원씩 계산해서 주는 방식이죠. 쿼터를 채우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손님이 줄리아에게 주스를 한 잔 사주면 그것으로 1포인트를 올리게 되지만, 손님이 줄리아의 몸을 함부로 만지거나 키스를 하는 등의 온갖 난잡한 접촉도 견뎌내야 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업주는 줄리아에게 핸드잡(Handjob)*과 바파인(Bar fine)*을 해서라도 할당량을 채우라고 강요하였습니다. 물론 폭언과 잦은 폭행을 수반한 강요였습니다. 줄리아는 업소에 온 지 며칠 되지않아 이런 일들을 겪으며 도망치고 싶었지만, 들어온 첫 날에 업주로부터 여권을 압수당하고, 숙소에 사실상 감금을 당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줄리아는 업주로부터도 성추행에 시달렸습니다. 옷매무새를 지적하면서 줄리아의 엉덩이나허리를쿡쿡찌르거나, ‘이렇게 가슴이 작아서 손님들이 좋아하겠냐’며 줄리아의 옷 속에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지기도 하였구요. 백 번도 넘게 도망치고싶었지만, “신고를 하면 너희가 감옥에 간다. 신고를 하면 죽이겠다. 여기는 산이 많아서 너 하나쯤 죽여서 묻는 것은 일도 아니다.” 는 협박을 반복해서 들어왔던 줄리아는 신고하거나 도망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지, 라는 생각이 황소의 뿔처럼 마음을 뚫고 나온 어느 날 줄리아는 목숨을 건 탈출을 하였 고, 도망친 곳 인근의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경찰들에 의해 체포가 되었습니다. 출입국으로부터는 ‘강제퇴거명령(한국을 떠날 것을 명하는 처분)’을 받아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었구요. 이 당시 줄리아는 업주의 성매매 관련법 위반 사실의 피해자 자격으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줄리아를 구금한 상태로 수사한 것은 영장주의를 어긴 강압수사였습니다. 형사소송법상수사기관은 참고인(범죄혐의가 없는 제3자)으로 조사를 하는 경우에는 구속을 할 수 없으며, 피의자로서 수사를 하는 경우에도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 구속수사가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수사기관은 줄리아를 구금한 상태에서 기한의 제한없이 수사할 목적으로, 줄리아에게 ‘강제퇴거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후 보호소에 구금되면, 재판절차가 끝날 때까지 구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 업주에 대해서는 ‘성매매알선등’죄와 ‘상습강제추행죄’위반으로 고소를 하였고, 다행히도 업주에 대하여 ‘징역1년’이라는 1심법원의 재판결과가 있었습니다. 업주측은 항소를 하였고 동시에 줄리아와 합의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줄리아는 제 뒤에 있던 창문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정의를 되찾고 싶어요. 내 명예도 같이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인데, 한국정부는 나를 범죄자처럼 취급하며, 교도소(외국인보호소)에 구금시켰어요. 내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합의는 안합니다.”

전수연 변호사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필에서 는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등의 인권을 옹호하고 감시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 안의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방인(strangers)’들이죠. 그러나 우리 또한 어디에선가는 이미 이방인이며, 혹은 이 땅에서 언젠가는 이방인이 될 것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핸드잡(Hand job)은 손으로 하는 유사성행위를 의미합니다. 우리 대법원은 이런 행위에 대해서 <성매매알선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 나목의 ‘구강∙항문등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이용한 유사성교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바파인(bar fine), fine(벌금, 벌금을 과하다)의 원뜻을 고려하여 풀이하면, ‘업소의 손님이 업소에 고용된 접객원이나 종업원 등을 업소 밖으로 일정한 시간 동안 데리고 나갈 경우 업주에게 지불하는 일종의 벌금’을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바파인’은 업소의 영업시간 내 업소 밖에서 이루어지는 ‘2차(성매매를 포함하는 2차)’또는 그 ‘대금’을 뜻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보호소’라는 단어를 쓰고 있으나, 실상은 외국인들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와 동일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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