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기다리며
[사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기다리며
  • 가톨릭대학보
  • 승인 2017.04.11 20:37
  • 호수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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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상식의 사전적 의미는‘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으로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 의미’라고 한다. 이러한 상식은 법을 적용할 때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형법 제20조는 비록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해도 그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을 경우에는 위법하지 않으므로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사회상규란 ‘국민 일반의 건전한 도의감’ 을 의미하는데, 결국 상식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민법 제1조는 재판기준의 하나로‘조리(􃰫􂦶)’를 드는데, 여기서 조리란 법의 일반원리, 경험칙, 사회통념 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또한 결국 상식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수 있으므로, 상식은 민사재판에 있어서 법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식이라는 것은 무척 애매한 것이다. 예를 들어 주당 40시간을 일하고 200만원의 월급을 받던 사람이 주당 20시간을 일하되 150만원의 월급을 받게 되었다고 하면, 이러한 변경은 이 사람에게 유리한 것인가? 위와 같은 경우 시간당 임금이 50% 가량 상승하였다는 점에서 대체적으로 유리하게 변경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에 한 학생이 도무지 공감하지 못하였다. 어쨌든 임금이 줄었는데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리하다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보니 도저히 더 이상의 설명을 하기 어려웠다.

 최근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과 관련하여 찬성파와 반대파의 대립에 대해 ‘상식과 비상식의 대립구도’라는평가가 많았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평가에 이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파 측에서는 이를 받아들였을 리 없다. 그런 점에서‘상식과 비상식의 대립구도’라는 평가는 결국 “우리만 옳고 저들은 틀렸다.”는 것이고, 이런 프레임은 올바른 입장에 서 있는 ‘우리’라는 집단의 세력확장에는도움이되지만', 저들’에 대한 설득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비상식적인 집단으로 낙인찍힌 그들로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설득을 거부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대립구도가 국민통합에 장애가 됨은 물론이다. 탄핵반대집회의 참여자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단순참여자들은 설득하여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만 ‘상식’이라는 표현에 합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상식과 비상식의 대립구도’라는 표현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상식이란 결국‘일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상식이라는 것이 다수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이상, 도대체 상식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존재한다. 그러나 ‘공감대의 형성’ 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어 생각해 보면, 결국 ‘상식이 통하는 사회’ 란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회, 다시 말하면 역지사지(􃒬􃶀􂻜􃴝)가 가능한 사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점을 기준으로 보면 오늘자 학보기사의 사연들은 상식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국제학부 새터에서의 음주 문제나 이번 학생회 보궐선거에서의 불법 선거 유세의 경우, 제재와 관련해서는 일종의 편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부조리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고나 주의와 같은 약한 제재를 감수한 것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불법이라고만 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경고나 주의와 같은 제재수단을 두고 있는 취지가 혹시 있을 수 있는 실수 또는 잘못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위와 같은 편법을 사용한 것은 분명히 상식에 반하는 행위이다.

 약학관 열람실의 사용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약대생이 가톨릭대학교 학생임이 분명한 이상 약학관 열람실을 여타의 단대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와 전혀 별개로 중앙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러한 민원이 타당하다면, 예컨대 자신의 지정석이 있는 고시반 소속 학생들이나 강사휴게실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강사 분들의 중앙도서관 이용 등도 모두 불가능해야 할 텐데 그러한 제도적 장치 없이 오로지 약대생의 중앙도서관 이용을 금지한다는 생각은 단순히 ‘나도 당해봤으니 너도 당해봐라’는 식의 이른바 보상심리 외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또 평소에는 어차피 중앙도서관에도 자리가 남아도는 상황에서 굳이 실험기구 등의 보안 문제가 있는 약학관 열람실을 사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지,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논리적으로는 평등을 강제하는 것이 옳을 수 있지만, 약학관 열람실이 중앙도서관 열람실에 비해 특별한 장점이 있지도 않은 마당에 도대체 어떤 실익이 있는 것일까? 물론 중간고사 기간이나 기말고사 기간이라면 모든 학생들에게 개방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정도 기간이라면 보안 및 관리의 문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학교 당국은 약대 외의 학생들이 약대생들과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인식에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필자가 알기로 현재 약대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금은 처음 약대를 만들 때와 달리 타 단대생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줄어들었음에도 학생들은 심지어 자기 등록금으로 약대생의 장학금을 준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오해는 학생들 사이에 반감을 조성하여 대학 내부의 통합을 방해한다. 또 니콜스관, 마리아관 등의 강의동 시설을 최대한 개선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불만들을 단순히 약대생에 대한 이유 없는 질시 정도로 폄훼할 수는없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버린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학생들에게 상식대로 행동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라고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체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여기, 대학교 안에서라도 상식이 통할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일상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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