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학과 찾았던 현주, 어디서 무엇할까
인기학과 찾았던 현주, 어디서 무엇할까
  • 박일우 (계명대학교 타불라라사 칼리지 기호학 교수)
  • 승인 2017.05.18 04:23
  • 호수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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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교육의 허와 실
▲ 박일우 계명대학교 타불라라사 칼리지 기호학 교수 - 경북대학교에서 융복합 학문의 전범인 기호학으로 박사학위 - 1983년 이후 계명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 2000년 이후 계명대학교 타불라라사 칼리지(교양교육대학)교수로 재직 중 - 현 한국교양교육학회 연구부회장

 ​1990년대 초, 당시 국내 대학은 이른바 '학부제'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유사한 계열의 전공 혹은 학과를 한 모집단위, 즉 학부로 묶어 학생들이 특정 학부에 입학했다. 학부제는 일 년 동안은 해당 학부의 기초과목을 수강하여 자신의 적성을 파악한 후 특정 학과나 전공으로 진입한다는, 겉으로만 보면 상당히 합리적인 제도였다. 신입생들은 가을학기 중간쯤에 지도교수와 면담하고 지망학과를적어 내는 절차를 겪게 되었다. 문제는 희망하는 진입학과’가 학생들 스스로의 냉철한 자기 성찰의 결과가 아니라 부모나 친구, 혹은 그 시점에서만 인기 있는 학과라는 점이었다. 당연히 그러한 학과는 희망자가 넘쳐나니, 수치화된 기준, 예를 들자면 입학당시의 수능점수, 첫 학기 학점 등을 통해 신입생을 배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필자는 '어문학부'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때가 되어 신입생들을 한 명씩 연구실로 불러 '진입 상담'을 했다. 말이 상담이지 당연히 많은 학생들의 진입 희망학과는 당시 인기순위 1위이었던 영어영문학과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이렇게 며칠이 지나간 어느 날, 필자는 한여학생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처들 수밖에 없었다.

 

 "현주, 어느 과 가고 싶어?"

 

 "일어일문학과입니다!"

 

 "응? 자넨 입학성적도, 저번 학기 성적도 어문학부 최상위인데?"

 

 "그렇지만 전 일어일문학과 가고 싶어요. 조금 있으면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다고 하잖아요. 일본 대중문화가 들어오면 우리 대중문화도 일본에 수출될 거잖아요, 전 졸업한 후 그 일을 하고 싶어요."

 

 필자는 서 있던 현주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하고, 제대로 된 상담을 시작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결과는 이러하였다.

 

 1. 일어일문학과를 제1전공으로 한다. 현주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어문학부 범주의 학과는 도구로서의 일본어이기 때문이다.
 2. 복수 전공으로 국제통상학을 한다. 문화교류 사업도 국제무역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3. 부전공으로 미디어학과 전공교과목 일부를 선택한다. 문화의 속성을 미리 공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4. 수강학점 여력이 있으면 시각디자인 핵심 교과목을 공부한다. 일본 대중문화는 시각문화가 주종이기 때문이다.

 

 현주는 입이 찢어져 연구실을 나갔다. 그리고 다음 해 봄, 우연히 필자는 복도에서 만난 현주가 반가웠다.

 

 "현주, 일본어 공부 재미있어?"

 

 "교수님... 저 영문과 다녀요... 엄마가 영문과 나와야 시집 잘 간다고 해서..."

 

 "..."

 

 그 후 20여 년 동안, 이른바 '한류'는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의 '핫 아이템'이 되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성립되지 않지만, 필자는 K-Pop 비즈니스로 대성한 몇몇 기획자들의 얼굴에 아직도 그 예뻤던 현주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환각을 겪는다. 융∙복합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가 원하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내가 다니는 대학교, 즉 모든 전공 분야를 다 품에 안았다는 의미의 'university'(라틴어 어원 universitas는 "전체", 혹은 "협업"을 의미한다.)가 제공해 주는 학문 풀 가운데서 내가 필요한 학문영역을 가로질러 익히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융∙복합 교육의 진정한 의미이다.

 

스티브잡스, "Connect the dots."

 

​  우리나라 고등교육에서 갑자기 융∙복합이란 말이 유행하게 된 것은 2007년 아이폰 출시 직후였다. 스티브 잡스는 웹브라우저, 디지털 카메라, MP3를 하나로 묶어 스마트폰이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이른바 '통섭(consilience)'이라는 개념이 학계에 상륙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융∙복합연구∙교육의 담론은 기존의 인문∙사회분야 종사자들이 주도해 왔지만 막상 '융∙복합 학문분야'라 할 만한 것들은 기존의 자연∙공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앞서서 개척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융∙복합의 원조인 '통섭'개념의진원지가 자연과학∙공학이라는 사실에서도 보였지만, 실제로 융∙복합의 필요성은 지식산업계에서 먼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이른바 '창조경제'모토가 더해지면서, 융∙복합은 뭔지는 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이며, "융∙복합 연구∙교육을 표방하지 않으면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 사업 대상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인식이 정부 당국, 학교 경영자의 뇌리에 박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파도에 휩쓸리기 전에 먼저 생각했어야 할 점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만들 때, 그는 별로 한 것이 없었다. "단지 이미 있던 점(웹브라우저, 디지털 카메라, MP3 등)을 연결했을 뿐"이다. 되돌아보자. 그 당시 웹브라우저, 디지털 카메라, MP3은 최상의 상태로발전되어 있었다. 어설픈 점들을 연결했다면 스마트폰은 실패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융∙복합 연구∙교육이 바로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융∙복합 교육과정이란 가능한가

 

 ​융∙복합은 굳이 비유하자면 뷔페식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객은 자신의 식성과 체질에 따라 스탠드를 돌아다니며 야채, 생선, 육류, 면류 중에서 일부 혹은 전부를 골고루 담아와 먹고 이를 영양분으로 저장한다. 융∙복합 교육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앞의 현주의 예에서 보듯, 자신의 미래와 적성에 따라 '대학교'라는 거대한 식당에서 골고루 지식을 '섭취'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그러한가? 위에서 말한 학부제의 결과 소위 비인기 학과는 학생들이 없어지고, 폐과 위기의 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운운하며 아우성을 치고, 그래서 다시 '학과'가 대학 입학과 행정의 기초단위가 되고, 정부는 온갖 재정지원 사업으로 일찌감치 도태되어야 할 대학들마저도 근근이 연명하게 만든 것이 지난 20여년 교육정책의 민낯이었다. '학과'는 교수들의 공고한 '성'이다. 이 성에서 교수들은 학생 입장으로는 4년 동안, 혹은박사학위 취득까지 10여 년을 성주로 군림한다. 내 학과의 학생이 "감히 내 수업을 듣지 않고"다른 학과로 가거나, 인기 많은 "내 전공수업"에 다른 학과 학생들이 알짱대면 내쳐버린다. 쉽게 말해 학생이라는 고객은 전채만 먹거나 육류만 먹어야 한다. 그 학생의 체질, 영양 상태 따위는 안중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실상이다. 대학을 와보니 전공 외에 다른 곳엔 눈길도 주지 말란다. 내가 뭘 미리 알아서, 좋아서, 이 과에 온 것도 아닌데. 담임선생님이나 엄마가 점수 맞추어 원서 써 준건데… 그래서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다른 학과 강의실을 찾아가니 당연히 그 학과 재학생들로 넘쳐나 들어오지도 말란다. 이러니 대학생활이 즐거울 리가 있나? 그런데, 그 학과의 교육과정은 원래부터 그렇게 학문적으로 대단한 것이었던가? 그렇지 않다. 모든 학문은 처음에는 모두 다 융∙복합 학문이었다. 그 학문이 시대를 잘 만나 체제가 잡히고 보급이되면 독립교과(discipline)가 되고, 이 역시 시대의 요구에 뒤떨어지면 슬며시 사라지게 된다.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 모든 교육과정 역시 순환하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융∙복합적 존재이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문∙이과로 나누어지기 전까지는 우리는 다 같은 존재들이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과학관에서 신기한 눈망울을 굴리고, 지겨운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교과서 한 귀퉁이에 낙서를 끄적이던. 그런데 대학이 자기 마음대로 학과를 가르고, 서열화하고, 자기들만의 맛도 없는 요리를 펼쳐놓고 우리를 한 군데로만 몰아가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결과로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일자리만 살아남는다는데, 앞으로 우리는 평생 동안 몇 번이나 직업을 바꾸어야 한다는데, 이렇게 한 분야, 그마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졸업을 해야 한다니!

 

 그래서인지, 정부 교육당국과 각 대학은 갑자기 "융∙복합 전공교과목"이란제도를 들고 나왔다. 이른바 융∙복합 교육과정의 유∙무, 융∙복합 전공교과목의 수가 각종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계량화, 성과관리, 보고서 작성에 이골이 난 대학들은 서둘러 융∙복합 전공교과목을 개설한다고 부산한 모습이다. '학과'는 그대로 둔 채로 말이다. 학과 내 교수들 간에도 소통이 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타 학문∙학과와 연계한 교과목이라니? 그 결과 "~과", "~와"라는접속사로 연결된 그야말로 뿌리 없는 교과목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스티브 잡스가 한 일의 정반대이다. 전공 교육과정은 어설프게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해야 한다. 생선회와 갈비찜을 함부로 섞어 꿀꿀이죽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요리가 최선의 상태로 조리되어 있으면 우리는 알아서 찾아 먹는다. 교수와 학교는 그 요리에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단, 우리가 다른 음식도 먹을 수 있게 학과의 경계는 없애야 한다.우리가 아직은 미숙하니 경험 많은 교수님들은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선 이것,저것을 먹어보라"는 멘토의 역할을 잘 해주기 바란다.

 

 그런 대학이 있는가? 물론이다. 미국,나아가서 세계를 움직이는 대부분의 인물들의 모교는 미국 동부의 소규모 자유학예대학(Liberal Arts College)들이다. 이학교들은 인문, 사회, 자연, 예술 영역의기초 교과목들을 골고루 배우게 하고, 그 기반에서 학생들이 적성을 찾아내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자신만의 '복합 전공'을 스스로 설계하여 심화 학습하게 도와준다. 아니면 노트르담 대학처럼 아예 교과목이고 뭐고 없이 그냥 인류의 지혜인 고전만 읽고 졸업하는 대학도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융∙복합교육과정과 융∙복합 대학 편제이다. 우리는 그런 대학을 가질 수 없을까? 아마도 어려워 보인다. 재정지원을 걸고 '건수'만 따지는 정부 당국과 대학 당국, 학생들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학과'의 교수들, 전혀 개념설정이 잘못된 융∙복합 전공교육과정이 있는 한 말이다.

 

 이제 이렇게 주장하자. 대학에서 내 꿈을 만들어갈 권리를 되돌려 달라고. 우리는 낡은 패러다임에 물든 엄마를 설득할 수 있는 당당한 현주가 되고 싶다고.

▲ 일러스트_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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