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뻔뻔함에 주민들 속 타들어
가해자 뻔뻔함에 주민들 속 타들어
  • 허좋은 기자
  • 승인 2010.03.05 12:09
  • 호수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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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서해안 기름유출 현장을 가다

가해자 뻔뻔함에 주민들 속 타들어

르포 - 서해안기름유출현장을가다

“지금 전복은 다 죽어버렸어. 현대에서 기름을 싸질러나서. 전복이 기름을 겁나게 좋아해. 복구? 다했지. 그런데 복구 다 해놓으니깐 또 기름을 엎질러 놔 버려서.”최장량(41) 난지도 유류피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위원장이 지인과 전화 통화 중에 한 말이다. 대책위 컨테이너는 주민들과 대책위원들이 연방 뿜어내는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최 위원장의 휴대폰은 쉴 틈도 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변호사, 군청 직원, 주민들이다. 양식장과 펜션을 운영해왔다는 그가 여름철 말고 이렇게 바쁜 적이 있었을까.

기름때 묻은 돌섬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 난지도리. 대호 방조제로 인해 지금은 육지가 되어버린 도비도를 포함해 아홉 개의 섬으로 구성된 서해의 섬마을이다.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봄가을에는 만선이 된 고깃배가 드나들어 어촌마을의 활기가 도는 동네다. 이 작은 섬마을의 해변이 지금은, 지난해 겨울 밀려온 기름띠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난지도 주민의 어선을 타고 방문한 비경도. 돌무더기가 해안을 이룬 이곳은 난지도에 딸린 무인도다. 비경도는 이번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섬에 발을 내딛었을 때는 예상보다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섬 안쪽으로 갈수록 바위틈에 묻은 기름때가 사고의 현장이었음을 보여주었다. 비경도의 기름띠 흔적은 해안을 따라 무려 1km에 이른다. 돌무더기에 부착된 기름때가 폭 7m씩 두 줄로 이어졌었다. 그나마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많이 지워진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방제는 더뎠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라 실제 방제를 하는 날이 적었기 때문이다. 이번 기름유출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비경도는 무인도인데다가 날씨 탓에 방제의 속도는 느렸다. 비경도를 안내한 주민 방진현(42)씨는“돌에 묻은 기름을 일일이 닦아내야 하는데, 추운 날 기름때를 벗겨내느라 손이 벌게진다”며 붉고 지문이 사라진 손가락을 담담히 보여줬다. 자연산 굴이 풍부했던 비경도에서 다시 굴을 딸 날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작은 사고인 줄 알았더니
사고는 지난해 12월 20일 밤 10시 40분경 발생했다. 난지도와 인접한 서산시 대산읍 소재의 대산석유화학단지(이하 대산석화) 내 현대오일뱅크 공장에서 부산 성호해운 소속 유조선 신양호에 주유를 하던 중, 현대오일뱅크의 관리자 실수로 벙커C유360(대형선박용 연료)이 유출된 사고였다. 사고가 발생한지 11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전에야 이를 알게 된 현대오일뱅크측은600ℓ의 기름이 바다로 유출되었다고 태안 해경에 신고했다. 이때까지 난지도 주민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방제 헬기와 선박이 오가는 것을 보고 작은 사고가 난 것으로만 짐작했을 뿐이었다.
22일 아침, 파도를 따라 기름 덩어리가 난지도로 떠내려 왔다. 그제야 주민들은 당진군과 태안 해경에 신고를 했다. 최 위원장은“신고 후 현대 측 보험회사와 사고조사 업체 코모스가 출동했다. 코모스 쪽에서 이장∙어촌계에‘200여 명의 인원으로 3일 간 방제를 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난지도 주민이 200명이 넘으니 우리끼리 수습해 일이 커지지 않는 선에서 해결하고자 순박하게 그 말을 따랐다”고 말했다. 작은 사고가 외부에 알려지면 수산물 판매와 여름 관광업에 해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2일 즉시 방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기름의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처음에 알려진 유출량과 달리 추정 유출량은 1000ℓ 안팎에서 최고 3000ℓ까지 높아졌다가, 1월 7일 태안해경은‘추정치가 약 5900ℓ’라고 발표가 났다. 처음 현대오일뱅크의 신고보다 10배나 높았다. 난지도의 8개 섬에 작게는 30cm의 기름덩어리에서 크게는 1km에 이르는 기름띠가 해안을 덮었다. 파도를 타고 온 기름띠가 해안을 덮치고 다시 파도에 쓸려나간 기름띠가 또 파도를 타고 해안에 부착되면서 광범위 하고 강하게 접착이 되어, 방제 기간은 길어져 갔다. 3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난지도 주민을 포함해 1천여명의 주민들이 방제에 참여해 1월 20일 경이 되어서야 방제를 마무리했다. 말이 한 달이지 추운 날씨 탓에 실제 방제일수는 16일 정도였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방제를 마무리하던 중 또 사고 소식을 접했다. 1월 12일 경 묘박지(일종의 선박 주차장)에 정박해 있던 중국 선적에 현대오일뱅크 유조선을 통한 해상급유 도중 기름이 유출된 것이다. 주민들은 다시 방제에 나서야 했다.

난지도가 뿔났다
예상했던 복구 날짜는 길어졌고 현대오일뱅크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책위는 뒤늦게 언론사에 연락을 취했다.“ 다들‘톱뉴스’감이라 그러더라”고 김우규(61) 대책위 부위원장은 말했다. 최 위원장은“태안 사고의 가해자 중 하나였던 현대가 2년이 채 안되어 다시 가해자가 된 것, 사고가 난 이후 11시간 동안 몰랐던 것, 경찰에는 신고하고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 사고를 낸지 한 달도 안 되어 다시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라 기자들도 특종이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죄송하지만 윗선에서 다 안된다’고 했다”며“현대의 언론 차단이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그 후 주민들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봤다. 상경해 시위도 하고, 당진군에도 도움도 청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조사결과가 나오면 보험사를 통해 법에 지정된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대책위는 보상금 외에도 생계비와 환경피해조사를 해줄 것을 요구한다. 오염된 바다 상태가 복구될 시간을 벌어 생업에 종사가 가능할 5월까지의 생계비와 기름피해로 인한 환경피해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지금까지도 심심찮게 소량의 기름이 바닷물에 떠다니던 것을 보아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고조사를 해 우리가 과연 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고자 한다. 또한 후일에 터질 사고에 참고할 자료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오일뱅크는 생계비와 환경 피해조사 중 하나를 택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난지도는 행정구역 상으로 당진에 속하지만 서산 소재 대산 현대오일뱅크와도 가깝다.
피해 지역은 또 있지만...
현대오일뱅크 공장이 소재한 대산석화는 서산시 대산읍이다. 난지도는 당진군에 속한다. 현대오일뱅크는 해마다 8천만 원에서 1억 원 정도를 서산시에 지원하고 있다. 또 내년에는 3억 2천억 원을 들여 원유 정제 후 남는 케미컬유로 화학원료를 생산해내는 새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대기업이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면서 공장을 더 증설할 계획을 갖고 있으니 서산시에서는 꽤 고마운 존재다.
서산시 삼길포는 횟집과 펜션이 가득한 여름철 관광지로 대산석화와 인접해 있다. 삼길포 주민들은 사고 관련 질문을 피했다. 이곳 주민들은“잘 모른다”거나“여기엔 기름이 안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명 삼길포해변에는군데군데기름흔적이있었다“. 현대측이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을 이용해 사흘 만에 다 퍼갔다. 현대가 서산에 지원을 많이 하는데다 삼길포는 어민보다 자영업자들이 더 많아 관광객이 떨어질까 쉬쉬한다”는 최 위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홀로 대기업과 싸우는 난지도는 외롭다.

난지도는 태안의 현재다
지난 2007년 태안에서도 기름유출 사고가 터졌다. 삼성중공업 소속 바지선과 대산석화 현대오일뱅크 공장을 향하던 유조선 허베이스프리트호의 충돌로 터진 사고였다. 1만 500kℓ의 기름이 서해바다를 덮어 놓았다. 엄청난 양의 기름 유출로 인한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와 전국민적 관심이 태안 앞바다를 살렸다. 그러나 그 상처는 아직도 깊다.
지난 2월 26일, 충남 태안에서 성모씨(53)가 자살했다. 사고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알려졌다. 태안의 대표적 여름 관광지인 만리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문홍용 씨는“사고 전과 비교해 관광객이 반으로 줄었다. 그나마 2008년 여름엔 사고의 책임이 큰 삼성에서 지원도 많이 하고, 직원들 휴가도 태안으로 많이 보냈으나, 작년엔 그런 이벤트마저 없었다”고 말했다. 보상 문제와 관련해서 문씨는“계속 지연되어 작년 12월 쯤 로펌에 알아보니 전체의 3%만 보상이 해결되었다고 들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사고 후 3년이 지난 지금도 보상은 보이지 않는다.
보상을 받으려면 소득을 증명해야 한다. 사고 전과 후의 신고 된 소득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영세 자영업자들의 관행 상 현금 거래의 경우 소득 신고를 축소해왔고, 양식업자들은 직거래 시 영수증을 따로 모아두지 않는다. 게다가 양식장에서 굴 까는 일로 일당을 받아왔던 노인들의 경우 입증할 자료가 애초에 없다. 난지도 역시 피해 규모만 상대적으로 작을 뿐 태안과 다를 게 없다.
한국은 세계 7위의 석유 소비국이면서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다. 국토의 3면이 바다이면서 분단의 현실을 고려하면 기름은 바다를 통해서만 들어온다. 해상 기름유출 사고의 가능성은 항시 존재한다. 대비책은 사고가 터진 후에야 세운다. 게다가 피해 주민의 생계를 위해서 보상도 빨리되어야 하는데, 사고 수습 후 묻혀버린 뒷이야기를 들으면 답답하기만 하다. 재발 방지 대책도 말뿐이다. 태안 사고로 인해 위험성이 크게 부각된 단일선체 유조선을 이용하는 비율은 각 정유사들마다 10% 안팎을 차지하며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19.2%로 국내 정유사들 중 가장 높다. 사고가 나면 결국 피해자 주민들만 어려워진다. 태안도 그러했고 난지도도 그렇다.


<글∙사진 : 허좋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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