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호와 300호 사이에서] 까다로운 주권자의 탄생
[200호와 300호 사이에서] 까다로운 주권자의 탄생
  • 허좋은 간사
  • 승인 2017.05.18 05:12
  • 호수 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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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좋은 간사 09학번 수습기자로 학보사에 입사해 그해 발행된 200호 특집신문제작에 참여했다. 2년 반의 기자생활 동안 학내외 취재를 했고, 졸업 후에도 학교와 학보사를 떠나지 못하고 계약직으로 행정업무를 보고 있다.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우리 학보가 200호를 낸 2009년 어느 시사평론가가 한 대학 학보에 쓴 기고문의 제목이다. 2009년 5월, 장기간 걸친 검찰의 표적 수사에 지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추모하고 슬퍼했다. 일 년 전 촛불집회를 경험한 이명박 정부는 광장을 경계했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전경들에 의해 광장은 순식간에 장악되었다. 그때 광장에는 소수의 시민활동가들 뿐이었다.

 기고자는 ‘권력의 골칫거리가 되었던 80년대 선배들’처럼 광장에서 권력에 맞서야 할 대학생들이 취업난에 압도되어 저항하지 않음을 한탄했다. 그는 “모든 사안을 ‘가치’보다 ‘자신의 유불리’에 방점을 두고 (중략) 밑도 끝도 없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설레발 떠는 부도덕한 후보에게 표를 헌납”한 20대들을 비판했다. 차라리 촛불집회를 주도한 10대 촛불소년소녀들에게 기대를 건다고 했다. 이 글의 필자는 이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로 유명해진 김용민 피디였다. 그는 반독재운동으로부터 시작된 학생운동의 마지막 황금기인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그보다 2년 전, 그 ‘80년대 선배들’중 하나인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가 저서 『88만원 세대』를 출간했다. ‘88만원 세대’는 불안정저임금 노동에 노출될 20대에게 당시 20대 비정규직 평균임금을 빗댄 말이다. 그는 이전 세대와 달리 외환위기 이후의 20대가 자기계발에만 열중하는 것은 사회안전망 없는 승자독식 경쟁에 노출된 최초의 세대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고도성장의 수혜를 받은 자기 동년배를 비롯한 기성세대는 20대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착취할 뿐이니 20대가 스스로 “토플 책을 덥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충고했다.

 두 기성세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달랐지만 20대를 ‘저항하지 않는다’고 본 점은 같다. 저항하지 않는 20대에 대한 화두는 ‘투표하지 않는 20대’비판으로 이어졌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17대 대선, 2008년 18대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은 3연속 대승을 거두었다. 같은 시기 20대 투표율은 평균 투표율보다 최소 16.4%에서 최대 18%까지 낮았다. 심지어 18대 총선에서는 20대 투표율(28.1%)이 50대(60.3%)나 60대 이상(65.5%)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혹자는 이런 진보적인 기성세대의 비판에 ‘20대 개새끼론’이라는 멸칭을 붙였다. 우석훈의 지적처럼 정치나 사회에 무관심하고 취업에만 매진하는 20대는 민주정부 집권기인 외환위기 이후부터 나타났다. 비정규직확대를 비롯한 고용불안정, 급격한 등록금 인상, 평범한 월급쟁이가 감당 할 수 없게 치솟는 주택가격 모두 민주정부 집권기의 현상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20대의 다수가 민주계열 정당을 지지했는데, 막상 효과가 좋지 않으니 투표 의욕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또한 20대의 낮은 투표율은 당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996년 총선에서 20대 투표율은 전체평균보다 20%나 낮았다.

 지금도 논쟁적인 비판이다. SNS가 발달한 지금 ‘진보적’이라는 지식인이 같은 발언을 했다면 감정적인 욕설 섞인 댓글에 찌든 자신의 페북 계정을 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20대 비판 속 메시지는 의미가 있었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더라도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극이 되었는지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각 선거별 20대 투표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무조건적인 지지가 아닌 정치 소비자로서 각 정당에 정책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생겼다. 20대표가 아쉬운 쪽에서도 과거보다 더 많은 청년정책을 약속했다.

 지난주에는 20대가 가장 많은 표를 던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동시에 2~3명의 후보에게 두 자릿수 지지율을 보낸 다른 세대와 달리 네명의 후보에게 두 자릿수 지지를 보냈다. 묻지마 투표가 아닌 것이다. 장년층에 못 미치지만 현재의 20대(72.1%)와 10여 년 전 투표하지 않아 욕먹던 30대(74.8%, 이상 지상파3사출구조사 추정치) 모두 평균(77.2%)에 가까운 투표율을 보였다.

 정치적인 힘도, 의지도, 희망도 없다고 여겨지던 20대가 변했다. 과거의 선배들이 광장에서 보여준 조직적인 전투력은 없지만, 높은 참여의지와 까다로운 정책 소비자의 시각은 정치권력을 긴장시킨다. 아마 지금의 20대 다수는 생애 최초로 자신이 뽑은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경험을 했다. 선거 이후가 중요하다. 민주국가의 주권자로서 대리인인 집권세력에 대해 선거과정에서처럼 요구하고 또 감시와 비판을 계속해야 한다. 희망은 그렇게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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