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더 안전하고 건강하다
[사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더 안전하고 건강하다
  • 가톨릭대학보
  • 승인 2017.05.30 19:27
  • 호수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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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의 역학자인 리처드 윌킨슨(Richard Wilkinson)과 케이트 피켓(Kate Pickett) 은, 2009년 전 세계를 뜨거운 논쟁으로 달구었던, 저서 에서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사회 문제들은 하나의 공통된 원인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하나의 원인을 해결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범죄, 폭력,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역설한다. 현대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그들의 해답은 경제발전을 통한 국부의 축적, 기업이나 일자리 창출, 혹은 세금을 통한 빈부 간 부의 분배 같은 사회정책이 아니라, 바로 '소득 불평등의 해소'였다. 우리 사회에서 소득 불평등의 해소는 차별적 임금의 철폐뿐만 아니라,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 보호에 기반한 부당대우의 철폐, 그 일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얼마 전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우리 사회 불평등과 격차해소를 위한 새 정부의 주요 과제로 '정규직-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불평등 해결'에 대한 요구가 1위를 차지했다. 국민들이 일자리와 소득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의 비정규직의 숫자는 2000년대 초반 이후 꾸준히 증가해 그 규모는 전체 피고용자들의 절반에 이른다.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자들의 삶의 질 차이는 많은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바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유해한 작업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으로 인한 만성질병, 직업훈련과 안전교육의 부족으로 인한 사고의 가능성, 직업 안정성의 부재에 기인하는 삶에 대한 불안감, 직장 내 인적 네트워크의 부재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에 시달린다.

​ 한국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러한 취약한 삶의 조건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것은 비정규 노동자들만의 문제로만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임금의 격차와 노동조건의 차별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지고, 사회 전반적인 수준에서의 신뢰, 즉 사회적 자본의 축적을 방해하며, 사회 전체의 응집력과 효능감을 저해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차별은 결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으로 연결된다. 다행히도 새 정부는 이러한 노동문제의 해결을 한국사회의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그에 부응한 공공기관들의 변화도 감지된다.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시작으로 한국전력공사, 수자원공사 등 비정규노동 고용비율이 가장 높은 5대 공공기관들을 비롯한 많은 기관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다.

​ 그러나,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화려한 정책 이면에 또 다른 비정규직 문제가 존재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노동은 부정적 노동조건과 동일시된다는 점이다. 사실 비정규 고용은 업무의 성격에 따라 혹은노동자들의 유연한 노동시간의 필요에 의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노동형태이다. 즉 비정규직은 그 자체가 철폐되어야 하는 폐습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의해 지속되는 고용형태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은 곧바로 열악한 삶의 조건을 의미한다.

​ 특수 고용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노동자의 지위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파견, 용역 등의 간접 고용 노동자들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의 적용조차 받지 못한다. 경력에 비례해 임금이 상승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의 상승에 의존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60% 수준이다. 호주의 경우 동일 업종에대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임금이 25% 가량 높은데, 이것은 유급 휴가같은 혜택의 부재나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노동시간 등 비정규 노동자들의 불리한 노동조건에 대한 보상을 통해 동일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이 실현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을 OECD 의 평균수준으로 낮추겠다고 한 새 정부의 약속은 이들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비정규 노동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갖추어져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이 최소화될 때 지켜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 사회보장의 확충, 기본노동권 보장, 임금 구조에서의 차별 철폐 등 비정규 노동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가 법제화되는 것이 새 정부에서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 하겠다.

​ 더 나아가 평등의 실현은 정규직 전환이나 일자리 창출, 합리적 임금의 책정과 사회 부문들 간의 소득격차에 선행하는 근본적인 요소를 전제로 하는데, 그것은 바로 노동에 대한 존중과 그 가치의 사회적 확산이다. 지난 대선시기 TV 토론회에서 한 후보가 도지사보다 월급 더 받는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에 분개했던 장면이나 지속적인 갑질 논란 등은 우리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노동에 대한 존중이 공정한 사회적 관계를 가져오며,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그래서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새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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