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송경동, "다들 단잠 한 번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인 송경동, "다들 단잠 한 번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최지은 기자
  • 승인 2017.09.02 01:40
  • 호수 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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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정부는 특정 문화예술계 활동가들을 불온한 자로 취급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해당 인사들을 관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들은 그 정부의 ‘불온함’을 역으로 꼬집듯이 활동을 이어왔다. 그중 시 쓰기와 사회운동을 별개로 두지 않는 시인이 있다. 시인 송경동, 그는 지난 7월 2일 ‘친일 문학상을 받을 수 없다’며 2017 미당 문학상 후보 선정을 거부했다. 2011년 발간한 시집 <꿀잠>과 같은 이름인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꿀잠’건립 추진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본보가 이번 작가탐방을 통해 유의미한 행보를 ‘시’로 표현하는 시인 송경동을 만났다.
-편집자주-

<작가 프로필>
 - 1967년 출생
 - 2001년 실천문학 등단
 - 수상 : 제 12회 천상병 시문학상, 제 6회 김진균상,제 29회 신동엽 창작상 수상
 - 작품 :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 등
 - 활동 : 구로노동자문학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민간위원, 희망버스 기획 등

 Q.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중학교 때 숙제가 봄비를 주제로 시를 써가는 것이었다. 그 숙제를 보고 선생님이 직접 이름을 부르며 잘 썼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학창 시절 내내 악동이었는데 그 칭찬으로 인생이 바뀌었던 것 같다. 이후에는노동 현장에서 살게 되면서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를 쓰게 되었다.

 Q. 시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시위 등에 참여하고 있다. 작가님의 시<혜화경찰서에서> 에는 경찰의 협박을 받은 경험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박근혜 정부 때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계속되는 억압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잘못된 현실과 맞서 싸우는 용기가 어디에서 나오는가?

 A.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 나가는 과정이 내게는 삶을 살아나가는 동기다. 항상 끌려가고, 길에서 농성을 하는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렸을 때 배웠던 역사의식이 나를 붙잡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나 혼자였다면 이뤄내지 못 했을 것들이 참 많다. 작년의 촛불 시위가 그랬던 것처럼 함께 해준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동지애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다. 또 사회적인 지위는 낮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평화와 평등을 향한 그 사람들의 몸부림을 보면서, 그것에 대한 연대감으로 함께 하는 과정 속에서 용기가 나온다.

 Q. <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시>나 <오랜 나무에 대한 은유를 베어버려라> 와 같은 작품들 속에서 서정적이고 함축적인 표현들로는 참혹한 약자들의 현실을 말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는가?

 A. 주변 사람들이 겪었던 좌절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 용기를 보고, 그런 것들을 동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시를 쓰면서 내가 스스로와 했던 약속이 너무 많은 비유와 수사를 나의 시에서 걷어내는 것이었다. 은유와 운율, 시를 장식하는 여러가지것들을 걷어내고‘, 사실 ’이 말을 하게 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정서와 느낌을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내가 무얼 말하는지는 알 수 있게 시를 써야 한다고 본다. 특히 시를 접해보지 못 했던 노동자들을 위해 좀 더 알아듣기 편한, 직설적인 시를 쓰고자 했다.

 Q. <암호명> 이라는 시를 읽고 노동자들이 노동 이외의 것들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꼈다. 이외에도 노동자들이 현실에서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에는 무엇이 있을까.

 A.‘ 노동자’라는 존재자체는 현대판 노예제와 같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왕이나 귀족에게 존재 자체가 매여 있었다면, 현대에는 자본과 소수 집단에게 계약 형식으로 묶여있는 거지. 그런데 그 최소한의 계약형식을 넘어서 많은 부분의 권리를 착취당하고 있는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는 끊임없이 짓밟히고 스스로의 삶에서 소외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 계속 착취당하고, 착취당하는 만큼 소외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어려움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가면서‘노동자’라는 계급도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 자본 공유 등의 시스템을 통해 ‘자본가’가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그들에게 착취당하고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도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현실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살피기 전에) 노동자가 왜 있어야 하고 어떤 필요에 의해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사회적 질문을 먼저 던져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문에 중세 봉건시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인구의 절반은 사회주의 체제를, 인구의 절반은 자본주의 체제를 실험해 본 것이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어떤 사회 체제가 가장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평화롭고 개개인들의 인권이 지켜지는가를 고민하고, 그 안에서 노동자라는 아주 특수한 사회적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최근에 ‘친일 문학상을 받을 수 없다’며 미당 문학상 후보가 되는것을 거부하면서 이슈가 되었다. 친일 문학이나 문학상 청산을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A. 미당 문학상 주최 측의 전화는 상품 광고, ARS 같다는 느낌밖에 없었다. 정말 아무 느낌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 상의 취지가 내가 살아온 인생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상을 받을 수도 없을 뿐더러 받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Q. 시 <마음의 창살>에서“내 밥 그릇 두 개면 / 누구 하난 밥그릇이 없다는 것”이라는 구절이 인상 깊다.

 A. 잡범 징역 2년을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쓴 시다. 거기서는 식기가 딱 하나뿐이라 누가 식기를 하나 더 가져가면 또 다른 누군가는 식기가없다. 우리 세상에서도 각자 가진 식기가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하나뿐인 식기를 뺏어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중간에 싸움을 포기하면 더 많은 불이익과 폭력이 돌아오더라. 그러니까 ‘끝까지 싸웠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을 우회적으로 표 현한 시다.

 Q.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시인과 운동가 중에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

 A.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말이 있다. 해방 전후에 활동했던 시인 유진오의 첫 시집 서문에 적혀있는 “시인이 되는 것은 급하지 않다. 우선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글귀다. 이게 시가 가야할 길이자, 시인이 가야 하는 방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시와 사회운동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는 시 창작 과정이 곧 사회 운동을 배워가는 것이었고, 그 자체가 문학 수업이었다.

 Q. 최근에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이 완성되었다고 들었다. 작가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고 하던데, 꿀잠은 어떤 곳이고, 어떻게 만들어진 곳인가.

 A. 기륭전자 비정규 여성 노동자 시위가 10년 넘게 이어져 왔는데, 악덕 사장이 기업을 공중분해하고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도망갔다. 이는 기륭전자의 여성 노동자들만이 아닌 천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 모두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기륭전자 비정규 노동자의 시위는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 같은 것이었기에 이렇게 아무런 답 없이 종료되면 안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이런 사회적 질문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하게 된 일이다. 장기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편히 쉬고 다시 투쟁을 하러 나갈 수 있는 자기 집 같은 편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사회 각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였다. 현대 차, 이랜드, 통신회사 등에서 스스로 비정규직 투쟁을 하면서 아픔을 겪었던 분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회 각 분야의 사람들(종교, 교수, 의료, 인권, 문화, 사회 운동 등)이 포괄적으로 연대해서 작지만 참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공사비가 부족해서 근 두달째 건설 두레를 통해 공사도 함께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노동자들의 공적 쉼터이자 비정규직 투쟁자들의 집이 되었으면 한다. 굳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민 주주의를 위해서 싸우는 민중들 누구나 잠깐씩 쉬어갈 수 있는 곳이고. 또 문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만나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모색하기 위해 노동 문화 사랑방도 만들어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탄압과 입었던 피해들에 맞서 싸워나가는 과정, 그런 투쟁의 경험들을 잘 모으고 전달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Q. ‘꿀잠’은 첫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꿀잠’이라는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A. 누구나 잠 한 번 편하게 자기 어려운 세상이다. 길거리에서 투쟁을 해야만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민중들도 끊임없는 경쟁 속에 몰려있는, 살아가기가 너무 팍팍한 세상이지 않은가. 겉은 화려하고 평화로워보여도 개개인들의 삶은 각박하고 가파르다.

 대학생들만 하더라도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으면 대학을 다니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럼 졸업 이후에는 다시 그 대출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이렇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잠 한 번 자기 어려운 세상에서, '다들 단잠 한 번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Q. 문학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은데, 장래에 대한 고민이 깊을 듯하다. 삶의 태도나 자세에 대해 한 마디 부탁한다.

 A. 오히려 나보다 정당한 분노와 인간다움에 대한 숭고한 꿈을 가지고 있을 학생들에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다만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 사회가 용기를 많이 뺏어간다는 걸 안다. 그래도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위해, 내가 원하는 세상과 꿈을 위해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잃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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