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차별을 건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 모임
[징검다리, 차별을 건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 모임
  • 노새(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 승인 2017.09.02 02:23
  • 호수 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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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 없는 세상을 여는, 차이로 사이를 여는, 여성주의로 당신의 마음을 여는 한국여성민우회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모든 폭력이 정의롭게 중단된 사회‘, 여자답게’,‘남자답게’라는 말에 나다움이 가려지지 않는 사회, 모두가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더 삶을 가꾸는 사회, 모두 독립적인 존재임을 존중하며 서로가 의존하고 있음을 기뻐하는 사회를 향해 1987년부터 걸어왔습니다.

 시작은 한 통의 전화였습니다.

 2016년 10월의 <검은 시위>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낙태죄’폐지를 요구하는 여성들이 거리를 메우고, 당당하게 거리에서 자신의‘중절수술 경험’을 발언하는 여성들의 에너지가 서울 도심한 구석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던‘시작’이었습니다.

 그 열기로, 2017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한국의 여성대회는 ‘낙태죄 폐지’를 올해의 5대 핵심요구사항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즈음, 민우회 사무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이 만나 서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한 여성의 제안이었습니다.

 여성들을 낙인 속에 침묵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낙태죄’를 이용해서 여성을 협박하고, 고발하고, 다시 그 공포로 여성을 침묵하게 하는 지금의 불합리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힘을 모으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겠다는 판단으로, 즉각 이 모임을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침묵을 깨려 합니다

 연간 3~40만 건의 임신중절이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연간3~40만에 달하는 여성들의 경험은 사회적 고통으로서 이야기되지 못하고삭제됩니다. 임신중절 경험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이런 ‘이야기의 공백(말할 수도, 들을 수도,그래서 알 수도 없는)’을 경험하며 살고 있죠. 금지된 경험에 대해 단순히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선택지만 하나 더 늘어나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임이 열린다는 공지를 올리자마자 여성들의 신청이 이어졌습니다.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는 분, 조금씩이 경험을 털어놓을 때마다 조금씩 더 단단해지는 걸 느끼며 더욱 단단해지기 위해 이 모임에 신청한다는 분,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에게 위로 받고싶다는 분들의 사연이 속속들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달마다이 작은 이야기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서로 다른 무게로 간직하고 있어요

 예상했던 대로 여성들의 경험은 (삶의 또 다른 많은 경험들처럼) 그 모양도 결도 무게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수술실에서의 공포가 지금까지도 선명한이가 있었는가 하면, 괴로운 기억이기 때문에 빨리 잊어버려 수술 당시의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이도 있었고, 크게 염려했던 수술이 너무 간단하게 끝나버려 황망한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간단히 끝난다던 수술의 통증과 후유증이 너무 심해 몸고생 마음고생을 심하게 겪은 이도 있었지요.

 그러나 그 속에 모두가 공통으로 겪어온 감정의 결 또한 존재했습니다. 내 삶이 나 자신의 통제권 밖으로 이탈하려 할 때의 두려움과 막막함, 당장 ‘내 몸으로 겪게 될’수술에 대한 공포, 이 모든 두려움과 고통을 오롯이 (네가 아닌) 내가 겪고, 느껴야 한다는 중압감‘, 여성들이 낙태를 너무 쉽게한다.’고‘, 낙태죄가사라지면 더 쉽게 낙태할 것’이라는 세간의 곡해에대한 격노까지.

 이것은 이야기의 연대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

 첫 모임에서 한 참여자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오랜 시간 힘들었다고, 이제 내가 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며 힘을 느낀다고. 그런 ‘힘’을 나누면서, 마지막 시간에는 함께 다음 모임 참여자들에게 보내는‘연대의 메시지’를 썼습니다.

 이 모임이, 느끼지 않았어도 될 불필요한 감정들을 덜어내는 시간, 오랜 시간 묵혀둔 죄책감을 툭툭 털어내는 모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은 ‘이야기의 연대’이고,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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