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조 조정 논의의 출발점 마련을 위하여
[사설] 구조 조정 논의의 출발점 마련을 위하여
  • 가톨릭대학보
  • 승인 2017.09.02 02:45
  • 호수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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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는 양혜왕의 물음으로 시작된다. “천 리를 마다않고 오셨으니 틀림없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 줄 일이 있으시겠지요?” 이에 대한 맹자의 답변은 싸늘했다. "임금께서는 어찌해서 이익만을 말씀하십니까? 중요한 것으로는 오직 인의(􃤼􃢥)가 있을 따름 입니다.” 이어서 덧붙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임금이무엇으로우리나라를 이롭게 해주겠는가를 묻고, 대부들은 무엇으로 우리 집안을 이롭게 해 주겠는가를 물으며, 선비와 서민들은 무엇으로 나를 이롭게 해 주겠는가를 묻는다면,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추구하게 되어 나라는 반드시 위태로워집니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돌이켜 보면 지난 학기 가장 요란하게 반복되었던 담론은 열악한 재정 상황이었다. 재정 감축을 위하여 각 단위에서는 기존 사업을 다시 검토해야 했으며, 새로운 사업도 재정 압박의 부담을 근거로 상당 부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연구, 학습 활동에서 교수, 학생들의 불편이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방학 중 집중휴가기간을 실시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않다. 이 정도가 되면 학내 구성원들은 우리 학교가 처한 상황을 공유하기에 결코 모자 람이 없겠다. 이번 학기에도 이러한 조건은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닐 터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어수선한 전개 속에서도 우리 스스로를 꼼꼼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당장 이번 학기에 구조 조정 논의가 치열하게 펼쳐질 것이며, 거시적으로는 이를 계기로 우리 대학의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재정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지난 학기 내내 강조된 반면, 교육 환경진단을 둘러싼 문제가 방치되어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의아스러운 감이 있다. 지난 총장 시기 온갖 국책사업에 내몰리느라 교육이 파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익히 언급되어온 바 아니던가. 더군다나 당시 교수협의회에서 발표했던 몇 가지 성명서에 따르면, 당시 교육 방향은 우리 대학의 건학이념 및 교육목표 등과 배치되어서 문제였는데, 새로운 총장이 취임했을 때 이는 응당 점검했어야 하는 사항이었다. 따라서 이후 구조 조정 논의는 우리 대학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실현하는 바탕 위에서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차제에 본교만의 특색을 만들어 나갈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사회에서 모든 대학은 서열화의 그물에 엮여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의미 없는 경쟁에 허덕이는 실정이다. 여기에만 매달려서는 우리 대학이 다른 대학과 변별될 수가 없다. 명칭에 벌써 드러나듯이 가톨릭대학교는 종교대학이다. 종교(􃱕敎)란으뜸가는 가르침,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을 이르는 만큼, 다른 대학과 변별되는 우리 학교의 특색은 경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쟁 을 넘어설 수 있는 가르침을 교육 내용으로 마련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이후 벌어질 구조 조정 논의는 이를 구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덧붙이건대 한국 사회에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기 위하여 으뜸가는 가르침의 내용이 가톨릭 특유의 품 넓은 포용력을 바탕으로 상처 받는 모든 이들을 감싸 안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14년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그 길을 열어 보인 바 있지 않은가.

 『논어』에서는“근본이 서야 도가 생기는 법(􂵬􂨳􃤥􂝍􂾪)”이라고 했다. 사회가 이익을 향해 눈 가린 경주마처럼 앞으로만 내달릴 때일수록 대학은 대학의 존재 근거를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하고 이익(재정) 문제가 전가의 보도처럼 자리를 잡고 또 다른 다양한 논의를 잡아먹어버린다면 결국 구성원들은 모두 각각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 것이다. 그러고서도 과연 학교의 발전을 얘기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이 구조 조정 논의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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