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2병으로 ‘나’ 를 잃어버린 학생들
대2병으로 ‘나’ 를 잃어버린 학생들
  • 최지은 기자
  • 승인 2017.09.13 18:38
  • 호수 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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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면 다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내내 대입을 위해 치열하게 달려왔는데 대학교에 들어온 후에도 심리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계속 달려야 했다. 1년 내내 불안감과 우울감에 허덕이며 보냈다. 결국 심리학과에 들어갔지만 기쁨과 뿌듯함도 잠시, 끝없는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당장의 목표를 이루고 나니 달려야 할 방향과 그 이유를 잃은 느낌이었다. 무기력한 내가 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간다는 기분으로 한 학기를 보냈더니 ‘쉬는 시간’이 정말 절실했다.”

 본교의 고은빈(심리·2) 학생이 휴학을 택한 이유다.

 이제 대학생들에게‘휴학’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교육통계연구센터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대학생 중 휴학생은 약 591,088명에 달한다. 지난 5월 실시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도 대졸자의 휴학 경험 비율은 43.3%를 기록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학생들도 점점 늘고 있다. 서은숙의 『대학생의 진로 정체감과 우울의 관계에서 자아탄력성의 조절 효과』(2017)에 따르면 “우울증은 대학생의 정신건강 문제 중 과반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할 만큼 대학생들에게는 매우 흔한 증상”이며 “우울증으로 인한 대학 내 상담센터에 상담을 신청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고, 신경정신과를 찾는 20대 청년들 중 대학생들의 비중”또한 증가하는 실정이다.


 '대학에는 왔는데…’ 이젠 대2병을 앓다

 대2병이란 대학교 2학년이 되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급격히 낮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국 대학 사회의 고질병으로 간주되는 대2병. 지난 4월 2일 방영된 SBS 스페셜<대2병>에서 학생들은 모두 입을 모아 한국 교육의 문제들을 토로했다. 자신의 적성에 전공이 맞지 않아 휴학을 결심한 학생, 수업 듣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학생 등 그들의 공통적인 고민은‘내가 무엇을 위해 대학에 왔는가’였다. 그동안 최종 목적지로 여겨왔던 대학에 진학한 후, 앞으로‘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얻지 못하고 자신의 전공과 미래에 대한 회의감과 허무함에 방황하고 있는 학생들. 그들은 왜 이 방황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까.

 대2병의 원인은 빠르면 중학교, 늦으면 고등학교에서 발견된다. 한 가지는 입시위주의 교육 문제이고, 또 한 가지는 듣고 받아 적는 일방향적, 주입식 수업방식이다. 현재 한국의 중등교육은 인생의 방향을 설계하는 것보다 입시의 성공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학과보다는 대학의 이름에 집착하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자기소개서가‘자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현상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원하는 전공을 선택했으나 생각과는 다른 전공에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도 있다. 현재 서강대에 재학 중인 최유진 학생 (경제·1)은 세종대 호텔경영학과를 다니다 중퇴했다. 입시 과정에서 선택한 호텔경영학이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인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수업을 들을 때 즐겁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을 하며 즐거워하는 동기들을 보니 많이 부러웠다. 그래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며 재수를 결정한 이유를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지 못했으니 해당 학과에서 전공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와 전혀 다를 바 없는‘듣고 받아 적는’대학의 수업 방식에 실망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생 간 토론이나 발표 같은 학생의 참여보다는 교수의 일방향적 강의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지수현(숙명여대 영어영문학·1) 학생은“교수님이 가져오신 수업 자료로 진행되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필기했던 고등학교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아 실망이 컸다”라고 전했다. 취업에 요구되는 높은 학점을 위해 흥미 없는 강의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조차 흥미나 적성보다는 학점이나 취업을 신경 써야만 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가톨릭대는?

 본교 학생들은 어떨까. 대2병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가‘휴학률’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휴학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학사지원팀에 따르면 본교 2학년 학생들의 휴학률은 14학년도 7%, 15학년도 13%, 16학년도 17%정도로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3학년 학생들의 휴학률도 14·15학년도 17%, 16학년도 23%정도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년도 1학년 학생들의 휴학률(각각 약6%, 8%, 9%)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대2병을 앓고 있는 학생들은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배움의 즐거움을 나타내는 지표로 학과 만족도와 수업 참여도를 분석해 보았다. 학과 만족도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실시한 <2017 가톨릭대학생 의식 및 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약간 불만족’과‘매우 불만족’이 총 24.3%로 전체의 4분의 1에 달한다. 수업에 대한 흥미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인 수업참여도 역시 저조했다. 수업 중 교수의 질문에 ‘자주 응답한다’는 14.2%, ‘매우 자주 응답한다’는 6.9%로 매우 낮은 편이다. ‘수업 중 궁금한 사항에 대해 질문을 하느냐’는 설문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와 ‘가끔 한다’고 답변한 학생들이 각각 39.3%, 43.0%로 나타났다. ‘수업 중 발표에 얼마나 참여하는가’에 대한 응답 역시 ‘거의 하지 않'거나 ‘가끔 한다’가 30.9%, 45.1%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그에 반해‘자주 하’거나‘매우 자주 한다’고 밝힌 학생들은 17.4%와 6.6%에 그쳤다.

 대2병의 또 다른 문제로는 자신에 대한 이해 부족을 뽑을 수 있다. 본보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에 입학한 후‘자신에 대한 이해 능력’이 ‘변화가 없’거나‘조금 향상되었다’고 답한 학생이 각각 21.0%, 40.1%에 달한다. ‘나를 찾는 대학’에서 나를 찾지 못한 대학생이 61%나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른 채 어려운 전공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학생들이 전공에 대한 회의감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는 것은 필연적 결과일지도 모른다.


 바뀌어야만 할 때

 그렇다면 대2병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SBS 스페셜에서는 현재 서울대나 카이스트 등에서도 진행하고 있는 ‘플립 러닝 (거꾸로 학습법)’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거꾸로 학습이란 수업 전 강의 영상을 보고, 수업에서는 발표와 토론 등 학생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나가는 수업 방식을 말한다. 실제로 서울대 수학교육과의 권오남 교수는 화이트보드로 둘러싸인 강의실에서 학생들끼리 문제 풀이 방법을 공유하고, 토의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교수의 일방향적 강의가 아닌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수업의 흥미도나 이해도가 더 높게 나타나 수업의 효율, 학생들의 흥미 모두 높게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 9월 5일, 부산에서 성적에 대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려다 극적으로 구조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있었다. 매년 수능 전후에 반복되는 비극적인 사태다. 제로섬 방식의 입시 경쟁에서 도망치듯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따라서 입시 제도에 존재하는 결함을 고쳐나가야 한다. 수능 제도를 도입한 고려대 교육학과 박도순 명예교수도 “일종의 자격시험처럼 쓰이길 바랐던 수능이 학생들의 경쟁을 심화시키는 제도로 변질된 것이 안타깝다”며 현 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실제 입시를 경험했던 학생들의 불만도 크다. 건국대 경영학과를 중퇴한 송호빈 학생은 “고등학교 때 내신이 좋은 아이들에게 수시를 몰아주느라 다른 아이들에게는 신경을 써주지 않기도 했다. 교육의 본 목적은 사회화와 교화이나, 우리 교육에서는 입시에만 집중하며 본 목적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본교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나를 찾는 대학’이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교육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방식인 CAP수업은 적절한 사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부합하는 강좌는 <자기 설계와 탐구반>, <도전과 열정반>, <창의와 융합반> 등 단세개에불과하며, 이 또한 한 학기에 각각 1개씩만 개설된다. 그리고 최대 19명까지만 수강할 수 있어 수강인원의 한계도 분명한 상황이다. 학생들의 대2병 예방, 치료를 위해 이러한 대안적 수업방식의 강의를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본교를 포함한 대다수의 대학은 교실 ‘안’의 강의에만 집중하고 있다. 교수들이 교실 ‘밖’으로 나서 학생들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형식적인 면담에서 벗어나 학생들과 진로나 취업에 대한 대화, 더 나아가 삶과 경험의 나눔을 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입시과정에서 삶에 대한 고민이나 색다른 경험을 해보지 못한 학생들에게 경험 많은 교수들의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학생들에게는 큰 의미로 와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지금은 아무생각 없이 공부만 해! 대학가면 다 할 수 있어!”라며 학생들의 등을 떠민다. 그러나 대학 역시 학생들이 자신을 알아가고 진리를 추구하는 공간이 아닌, 취업을 위한 자원 양성소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자신의 꿈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조건에 집중해야 하는 시대, 늘어가는 대2병이 잘못된 사회가 만들어낸 부작용은 아닐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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