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2병, 청년 실업률이 만들어낸 우울한 자화상
대2병, 청년 실업률이 만들어낸 우울한 자화상
  • 익명
  • 승인 2017.09.13 23:09
  • 호수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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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조어는 그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유독 청년들의 애환과 관계된 신조어들이 빈번하게,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인구론(인문계 전공자 90퍼센트가 논다)’, ‘문과충(인문계 전공자를 비하)’, ‘사망년(취업스펙을 준비하느라 고통받는 3학년)’, ‘호모인턴스(정규직 취업이 되지 못해 인턴만 전전하는 사람)’,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장미족(장기 미취업자)’, ‘대오족(대학교 5학년, 졸업을 미룬 대학생)’등의 자조적인 명명들이 그것이다. 높은 청년 실업률이 만들어낸 대한민국 청년들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최근 유행하는 ‘대2병’이라는 신조어도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대학에 진학했으나 대학 공부와 전공에 회의감이 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한 가운데 허무감, 우울감, 열등감에 빠지는 현상을 일컫는다고 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청년기에 자기 정체를 재정립하고, 자아 정체성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에게 던져야 하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나를 찾아야 삶의 좌표를 설정하고 주체적으로 타인과,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소통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국 청년들의 경우, 다소 늦은 대학교 2학년 시기에 자신의 가치관, 진로와 직업에 대한 고민을 본격화한다고 하는 통계를 볼 때 ‘대2병’은 어쩌면 자기 탐색 과정에서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혼란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2병’을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는 청년들의 정신적 방황 정도로 가볍게 넘기기에는 다른 지표들이 심상치 않다. 해마다 높아지는 대학생 자살률, 높은 스트레스와 우울증 지수, 학교 부적응등, ‘ 대2병’이극복되지못하고장기화, 고착화 되어 가는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청년들이 처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참으로 암울하다. 중, 고등학교 시절 끔찍한 입시지옥을 겪으며 대학에 진학했건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무시무시한 취업지옥이다. 취업지옥은 다시 생계지옥으로 이어진다. 무한 경쟁이 무한 반복되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청년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들 번듯한 직장에 취업을 하고, 자신이 번 돈으로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일상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예감하는 삼포세대의 좌절감이 청년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 열정과 패기로 가득해야 할 청년들의 가슴에 열등감과 열패감, 분노와 체념이 자리한 지 오래이다.

 높은 청년 실업률과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고용 현실, 계급 고착화와 양극화가 심화되는 경제 현실, 대학 서열화와 스펙 경쟁이 난무하는 교육 현실,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과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정치 현실이 청년들을 병들게 하는 원인임을 직시해야 한다.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정부와 대학은 더 늦기 전에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몇 년 전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식의 힐링 담론처럼 사회 전반의 문제를 개인이 감내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로 왜곡,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하거나 청년에게 어설픈 격려와 위로를 보내며 경쟁력 강화와 자기 계발을 권유하는 식의 무책임으로 일관해선 안 된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교육부터, 대학부터 바뀌어야 한다. 대학이 자본의 논리에 침식된지는 이미 오래지만 이제라도, 아니 우리 대학부터라도 청년들이 참 나를 발견하고, 자존감을 갖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람이중심이 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새 총장님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처럼 “나를 찾는 대학, 기쁨과 희망이 있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대학의 건학 이념인 “인간 존중의 대학”, 우리 대학의 교육 목표인“진리, 사랑, 봉사”야말로 우리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이 캐치프레이즈가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치지 않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알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인본주의 가치를 실천하는 윤리적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대학 재정 적자를 메우고, 교육부 평가를 염두에 둔 구조조정을 계획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자 대학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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