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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세상 만들기에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징검다리, 차별을 건너다
[305호] 2017년 11월 02일 (목) 22:17:56 홍문보미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cuknews@catholic.ac.kr
 차별금지법 괴담

 ‘차별금지법’을 검색하면 세간의 다양한 유언비어를 만날 수 있다. 며칠 전에는 한 교사가 수업시간에 이런 말을 설파했다고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자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처벌받는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은 역차별이다.” 오늘은 삼촌이 이런 말을 했다고 분개하는 트윗을 보았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혼이 허용되어 여자들은 남편과 아이를 잃어버린다. 여성단체는 인공임신중절권을 말하기 전에 차별금지법부터 반대해라.” ‘차별금지법은 종교탄압법이며 국민통제법’이라는 카톡이 자꾸 날아와서 괴롭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게 들었다. 조직적으로 퍼져나가는 이러한 루머들은, 마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이 소수의 특수한 자들에게 무언가를 빼앗길 것 같은 위기감을 자아낸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이 과연 그러한 법인가?

 평등한 사회를 바라지 않는 이들은평등을 지연시킬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한때는 그것이 반공 이데올로기였다. 지금은 혐오의 이데올로기를 들고온다. 루머와 괴담 속에서 혐오스러운 타자를 발명해내면서, 마치 ‘차별’이 몇몇 특수 대상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사실은 살아가면서 차별을 받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극소수이다. 남성이 아닌 많은 이들이 성별에 의한 차별을 경험한다.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은 많은 이들이 학력차별을 경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가 한두 살 많다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다.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십 년간 계속 좌절되어온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출신학교,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에 의한 차별을 줄이고 평등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법이다.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이다.


 “차별을 법으로 없앨 수 있나?”

 이러한 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이들도 많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다보면 “이건 무슨 차별을 금지하는 거예요? 성차별? 장애차별?”이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고 답하면 다소 놀란 얼굴로 쳐다본다. 한 분은 “이게 실제로 가능한 법인가요? 차별을 어떻게 법으로 없앨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렇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모든 차별이 사라질 수 없다. 그러나 차별금지법도 못 만들면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볼 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간명하다. 헌법 제11조에 차별금지에 대한 조항이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평등의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최고원리”이며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헌법상 기본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법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의 평등을 선포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계속 좌절되어 왔다. 2007년부터 계속 발의되어 온 법안들은, 악의적 루머처럼 누군가를 처벌하는 법이 아니라, 차별로 피해 입은 이들을 구제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임에도 십 년째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실패의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와 ‘평등한 사회’를 향한 의지가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고 어떤 분은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지난 겨울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보았고, 그것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격했다. 광장의 열기가 일상의 열기 속에서 소멸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목소리를 더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평등과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당연한 가치이다’라는 기본대원칙에 대한 확인이다.

 최근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18개월 안에 한국정부가 이행 상황을 보고해야 할 3대 과제로 꼽았다. 또한 채택될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도록 보장할 것을 특별히 권고했다. 물론 유엔의 권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회권위원회는 이미 2009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왔으며,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인종차별 철폐위원회 등 소수자차별을 다루는 위원회도, 인권 규약을 다루는 자유권위원회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왔다.


 이제 제정할 때도 되었다

 이번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최종 견해에서 주목할 것은 차별금지법 제정 지연에 우려를 표하는 ‘긴급성(urgency)’에 대한 언급이다. 이에 대해, 국내 114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차별금지법 제정연대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논평을 내었다. <차별금지법, 이제 제정할 때도 되었다> 차별금지법도 못 만드는 나라, 부끄럽다. 계속 외쳐온 슬로건처럼, 평등한 세상에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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