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당선] 행복 여행기
[수필 당선] 행복 여행기
  • 서동훈
  • 승인 2017.12.1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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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선 문에는 별로 좋은 감정은 없다. 그것 너머는 나에게 있어 고난이기도 했고 두려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삼층에서 내려가는 회색빛 돌계단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더러운 빛바랜 돌계단이 참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의 돌계단은 달랐다. 마치 낮과 밤과 같이. 따스한 빛과 추운 그림자같이. 꿈과 현실같이. 내려가는 계단과 올라가는 계단은 달랐던 것이다. 평소와 다를 것 없던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행복은 무엇일까, 라는 정말 지극히 단순하고도 누구나 하는 고민이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날, 나는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여행이라고 해도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동네 산책과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굳이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은 행복을 찾자, 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을 닫고 도어락의 잠금 버튼을 누르며 내 작은 여행은 시작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회색빛 돌계단은 나에게 상냥했다. 정문 밖의 하늘은 쪽빛으로 물들었고 태양은 따스하게 내리쬐었다. 좋은 출발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문 앞에서 나는 발을 멈춰야만 했다.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행복은 무엇인지, 어디를 가야 알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좋은 출발점에 멈춰 서서 곰곰이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다 옛날 추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였나. 문구점에서 팔던 뽑기 기계의 캡슐에서 원하던 상품이 나오길 바라며 백 원씩 넣어 도르륵 돌렸던 적이 있었다. ‘하나만, 하나만 제발’이라며 손을 모았지만 결국 나오지는 않았었다. 아마 그것이 나왔다면 나는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느낌으로.

 나는 그제서야 발을 움직였다. 의외로 좋은 기분이었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행이라니. 그야말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짓이라는 것은 내 자신이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행복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오르막길을 콧노래를 부르며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왼쪽으로 쭉 달려 내려갔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바보같이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문방구에 도착했다.

 문 앞의 뽑기 기계들을 훑어보았다. 10여 년 전과 다를 게 없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격도 상품도 그때와 똑같았다. 나는 무엇을 갖고 싶었을까. 수많은 상품들 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작은 팽이들이 그려져 있는 기계였다. 분명 나는 저것을 좋아했다. 백 원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나오는 것은 만 원짜리 지폐였다. 옛날에는 분명 이순신 장군이 더 가깝고 친숙했었을 텐데, 조금 그런 생각을 하며 변하지 않은 문방구의 변하지 않은 이순신 장군을 열 개 받았다. 남은 돈은 귀찮으니 지폐로 받아두었다.

 달칵하며 돈을 넣는 빈 공간이 나타났다. 한 번 도르륵 도르륵 돌려보았다. 덜컹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푸른색 캡슐이었다. 안에는 이상하게 생긴 지우개가 있었지만,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듯 삭아서 가루가 되어버렸다. 아, 이랬었지. 이 기계는 그런 기계였다. 헛된 희망과 행복을 보여주는 기계였다. 그만둘까, 했지만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에 다시 뽑기 기계 앞에 앉았다. 아직 아홉 개의 동전이 남아있었다. 남은 돈을 들고 다니는 것은 귀찮으니 아홉 번의 도르륵 도르륵 덜컥 소리를 듣자고 마음먹었다. 결과는 의외의 성공이었다. 여섯 번째인가 일곱 번째인가. 어중간한 차례에 갑자기 팽이는 튀어나온 것이다. 저가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빨간 팽이는 세월의 흐름에도 변함없었다. 약간 색은 바란 것 같지만 슥 돌려보니 휘청이지도 않고 잘도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전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왜일까 고민했지만 답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바에는 움직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나는 하나둘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어 행복했던 것을 찾으러 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행복을 주지 않았다. 높디높아서 시원하게 달려 내려가며 놀던 미끄럼틀은 내 키보다도 작고 보잘것 없어졌다. 더 이상 미끄러지지도 않았다. 하루가 다 지나도록 만화를 읽기만 해도 즐거웠던 만화방에서 읽다 만 만화의 결말을 봤지만 별로 재미없는 결말이었다. 산에 숨어있는 아무도 모르는 작은 놀이터에서 단지 누워있기만 해도 즐거웠지만 언제나 보다 더 쪽빛인 하늘이 내리쬐는 그 놀이터는 더 이상 신비해 보이지 않았다. 돌멩이를 차는 것도. 굴러다니던 공을 차는 것도. 어떤 것도 행복이 아니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여태까지 잊어왔던 행복을 찾아 옛날의 행복들을 떠올렸지만 그 모두 행복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을 때였다. 나는 돌아가야만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나는 행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도로 반사경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로 반사경에 비친 나였다.

 나는 어린 애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지만 쉽게 간과하고 있었다. 아무리 신바람 나게 언덕을 뛰어내려도, 변하지 않는 문방구에서 변하지 않는 뽑기 기계가 기다리고 있어도, 높았던 미끄럼틀이, 책 냄새 가득한 책방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내가 변해버린 것이다. 빛바랜 빨간 팽이가 아닌 삭아버린 가루 지우개였을 뿐이었다. 결국 그 때 같은 행복은 나와 함께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제서야 발이 움직였다. 결국 인정하고 만 것이다. 행복을 찾는 여행에서 내가 실패했다는 것과 내가 행복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고난과 두려움의 세상으로 돌아갈 차례가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만 것이다. 그때는 정말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한숨은 달고 살았지만 특별히 더 깊고 깊은 한숨이 우러나왔다.

 그 때였다. 근처에서 미야 미야 소리가 들려왔다. 발 근처에서 작은 고양이가 맴돌고 있었다. 잘 알고 있는 고양이였다. 절친의 집에 밥 먹으려 자주 드나들던 고양이 꼬맹이다. 나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한번 그냥 손을 뻗어 보았다. 기특하게도 꼬맹이는 내 손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손을 핥으며 재롱을 피우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귀엽게 내 손에서 그 작은 몸으로 꼬불꼬불 뒤척이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크게 웃어버렸다. 한동안 그렇게 웃으면서 마구마구 쓰다듬었더니 오히려 꼬맹이는 귀찮다는 듯이 휙 떠나버렸다. 한 번 뒤돌아 줄 법도 한데 그래주지도 않고 정말 도도하게 꼬리를 빳빳이 세우며 떠나갔다.

 하지만 나는 웃었다. 어두운 하늘 아래 가로등 불빛이 켜진 그 골목길에서 나는 계속 웃고 있었다. 너무 웃어서 눈물도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작은 고양이를 쓰다듬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일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행복이 변했고 나도 변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행복은 보잘 것 없고 사소하다는 것은 그대로였다. 우리들의 가까이에서 기다리지만 우리들 스스로 꼬맹이처럼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무시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걸 과거의 기억에서, 과거의 길을 따라 찾았으니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법이다. 이미 지나간 행복일 뿐이니까. 내친김에 돌아가는 10분도 안 되는 짧은 길에서 행복을 찾아보았다. 수없이 많은 행복들이 기다려주고 있었다. 골목길 보도블록 사이에서 피어난 작은 꽃을 보는 것은 행복이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쭉 늘어선 가로등 길을 걷는 것은 행복이었다. 아주 조금 쪽빛을 머금고 있는 검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짚어보는 것은 행복이었다. 언덕길을 내려갈 때 맞이해주는 시원한 바람은 행복이었다. 밝은 가로등 아래에서 나와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를 가지고 노는 것은 행복이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행복을 무시했던 사람이었을 뿐이다. 세상이 변해도, 내가 변해도 언제나 세상은 행복들이 가득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이 여행은 성공이다. 나는 행복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회색빛 더러운 돌계단을 마주했다. 평소에 올라가는 계단은 오히려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듯한 느낌의 두려운 길이었지만 그 날은 달랐다. 결국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내가 손쓸 수 없는 고난과 두려움뿐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계단은 상냥했다. 한 걸음 내딛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걷는 길에는 작은 창문에서 달빛이 내렸다. 평소에도 그랬을 텐데. 정말 아름답고도 행복한 풍경은 나락 아래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문 앞에 서서 웃을 수 있었다.

 문을 열었다. 여전히 그 문에는 좋은 감정은 없다. 그 문 너머는 여전히 고난이고 두려움이었다. 그때, 나는 보도블록 사이의 꽃과 꼬맹이의 빳빳한 꼬리를 떠올렸다. 다녀왔습니다, 라고 말하며 웃은 것은 아마 그 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서동훈(철학·2)

 안녕하세요. 제 작품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여행길은 어떤가요. 즐거울 수도, 쓸쓸할 수도 있겠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어두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땐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습니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매일 변하지 않는 일상 속에서 그것들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단지 우리들은 만나러 가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합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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