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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당선 및 심사평]시퍼런 봄
[0호] 2017년 12월 11일 (월) 11:31:58 김민경 cuknews@catholic.ac.kr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다 보면 그 겨울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정신과 의사의 말대로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기억하는 것들이 정확한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순간만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바닥을 향해 떨어지던 선영의 모습. 그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무한히 반복 재생된다. 어느새 나는 그 기억의 순간으로 되돌아가 있다. 하지만 나는 선영을 잡지 못한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선영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견딜 수가 없다. 숨이 가빠오고 초조해진다. 불안감의 넓이는 이미 내가 견딜 수 있는 넓이를 넘어섰다. 그래서 선영에게 전화를 건다. 확인이 필요하다.

-괜찮아. 수연아.  선영의 목소리가 나를 진정시킨다. 거짓말처럼 나는 다시 차분해진다. 우리는 늘 그랬듯이 서로의 근황을 묻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 침묵이 흐르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몇 번이나 반복한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그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그 겨울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

 선영과 나는 성당에서 처음 만났다. 일요일 새벽 미사였다. 나는 일요일마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집을 나와 성당에 갔다. 새벽의 맑은 공기와 한적한 거리는 나의 일상과는 반대였다. 그래서 새벽 미사를 가는 것은 나에게는 일탈에 가까웠다. 미사 중간에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간이 나는 늘 기다려졌다. 나는 늘 똑같은 짧은 기도를 한 다음 살짝 눈을 떠서 아직 눈을 감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기도하는 척하지만 졸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소리 없이 중얼거리며 열심히 무언가를 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저 사람을 도대체 무엇을 저렇게 열심히 비는 걸까, 나와 같은 기도를 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을까를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중 나는 어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시리도록 흰 얼굴이었다. 나는 나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기도하는 시간이 끝난 뒤에도 나는 건너편에 앉아 있는 그 아이를 계속 힐끔힐끔 관찰했다. 그 아이도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꾸만 서로 눈이 마주쳤다. 미사가 끝난 뒤에도 나는 의자에 계속 앉아 있었다. 신자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후 주위를 둘러보니 그 아이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이미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선영이라고 했다. 그 날부터 나와 선영은 미사 시간에 그 날과 같은 자리에 늘 앉아 서로를 계속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면 웃었다. 예전처럼 미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미사가 끝나면 나는 선영과 함께 강변에 갔다. 그때는 더운 여름이어서 우리는 자주 강변에 발을 담그며 이야기를 했다. 대화는 점점 깊어지다가 갑자기 침묵 속에 빠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영이 나에게 미사 시간에 무엇을 기도하냐고 물었다.

-늘 똑같아. 그냥 맞지만 않게 해달라고.

-나도 너랑 똑같아.

 선영은 약간 놀란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선영을 관찰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에 난 상처는 내 몸에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상처들은 익숙한 폭력을 나타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녀와 내가 서로에게 끌리게 된 것은 아마 맞고 자란 우리의 취향이 통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그리고 선영과 나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그녀 또한 이미 손목으로 우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사회복지사는 내 몸의 상처들을 보자마자 내 집안 문제를 알아챘다. 정확히는 아버지에 대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그 상처들과 함께 섞여 있는 다른 상처에 대해서는 딱히 말이 없었다. 그가 알아채지 못한 건지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말을 하지 않은 편이 더 나았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가 연결해준 정신과 의사는 나의 그 상처들을 바로 알아챘다. 그는 나에게 왜 자해를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자해’라는 단어가 주는 그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단지 손목으로 운 것뿐이라고 했다. 그는 또다시 나에게 왜 그런 방법으로 우냐고 물었다. 순간 나는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우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알았지만 지금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결국 정신과 의사에게 눈으로 우는 것이 지쳐서 그랬다고 둘러대었다.

선영은 미용사가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녀는 가끔 내 머리를 잘라주었다. 그녀는 쥐어 뜯겨서 엉망인 내 머리를 잘도 정돈했다. 반면 나는 소질이 없어 늘 선영의 머리를 더욱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그녀는 그 머리를 좋아했다.

 선영은 미래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그녀의 눈은 빛을 머금는다. 나는 그 빛이 정말 보기 좋았다. 닮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면 집을 나가 미용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적한 시골에 큰 집을 사서 나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사실 그녀와 함께라면 허름한 쪽방이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선영에게 기꺼이 그러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강아지도 키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강아지를 아주아주 예뻐해 줄 거라고 했다. 이 말을 그녀는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선영은 이미 울면서 계속 그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날 눈물샘이 마르도록 실컷 울었다. 그리고 퉁퉁 부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어댔다.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선영의 눈은 금방 빛을 되찾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선영은 언젠가 반드시 그녀가 말한 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말 그럴 터였다.

폭력의 유일한 좋은 점은 맞을수록 점점 그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하자 사회복지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게 아버지의 폭력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그 폭력에 익숙해질 때 즈음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했다. 술을 먹고 토한 토사물로 인한 질식사였다. 나는 사람이 이렇게 쉽게 죽을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사회복지사는 그 허망한 죽음을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왜 헷갈려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 한 가지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쉽게 죽은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가 술에 취해 바닥에 쓰러져 잘 때마다 옆으로 젖혀진 그의 고개를 정면을 바라보게 돌려놓았으니까.

아버지가 죽고 한 달이 흐른 뒤에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나는 그녀가 왜 이제야 집을 나갔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자꾸 책을 찢어대는 통에 한참 책을 읽지 못했었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선영을 만나고 나에게도 미래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소설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때 읽었던 소설 중에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소설이 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인생을 비관하여 욕조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자살에 사용한 도구는 면도날이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보고 한참을 망설이며 생각한다. 그녀는 그녀가 면도날로 죽으면 그녀의 아버지가 더 이상 면도날로 면도를 할 수 없을까 봐 걱정을 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도서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작하듯 웃어댔다. 사람들이 쳐다봐도 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샌가 나는 선영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랐다. 정말 순수하게 선영이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선영이 그녀의 손으로 직접 벗어나는 것을 바란 건 아니었다.

선영은 그녀의 아버지를 죽였다.

 선영이 우리 집에 찾아 왔을 때 그녀의 눈에는 이미 초점이 없었다. 대신 그 속에는 짙은 암흑만이 있었다. 그녀는 덤덤히 나에게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하고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다. 영화에서 상당히 진부하게 나오는 장면과 같은 우발적인 살인이었다. 여주인공이 겁탈에 저항하다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사고에 가까운 살인.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는 결코 진부하지 않았다. 선영은 내일이면 엄마가 발견하고 집에 경찰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나는 그녀가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선영과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순간 나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조금의 망설임도 생기지 않았다.

 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 내리는 겨울이었지만 옥상의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그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선영은 묵묵히 옥상의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밑을 내려다보니 확실히 죽을 수 있는 높이였다. 선영은 곧바로 난간 위로 올라갔다. 선영이 서 있는 자리 옆에 그녀처럼 시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도 함께 올라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는 선영에게 미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안다. 그리고 나의 미래 또한 선영과 떨어질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그녀를 이해하니까.

선영이 뛰어내렸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선영의 손을 놓아 버렸다.

 선영의 손을 놓아버리고 나는 옥상 위로 넘어졌다. 나는 도저히 아래를 볼 수 없었다. 나는 도망쳤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도망쳤다. 이유를 생각할 틈도 없이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치다가 무너져 가는 폐가에 도착했다. 나는 이끌리듯이 폐가 안의 방 속으로 들어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바로 옆의 무언가가 보였다. 매직으로 그은 원 안에 갇혀 죽은 개미 한 마리였다.

 사회복지사는 폐가 철거 직전 점검을 하던 공사 인부에 의해 내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 인부의 말에 의하면 내 주위로 매직으로 그은듯한 원이 둘러져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나는 복지시설로 보내졌고 여러 질문에 답해야 했다. 사회복지사는 우선 내가 왜 거기에 쓰러져 있었는지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선영과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어디론가 심각하게 전화를 했다. 그때까지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했다. 사회복지사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하고 돌아와서는 나에게 심각하게 말했다.

근래에 이 동네에는 아무런 살인사건도 없었고 투신자살사건 또한 없었다고.

 나는 곧바로 정신과 의사에게 보내졌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그는 결론부터 말했다. 선영은 이 세상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나는 그의 말을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선영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허상이고 그녀에게 나의 무의식적 욕구가 반영되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가 허무하게 죽고 나서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욕구가 선영에게 투영되어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어 선영을 통해 나는 자살시도를 한 것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선영과 내가 아주 비슷한 환경이었던 것, 내가 선영에게 이끌렸던 것, 선영의 자살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병이 많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내 스스로 환각을 제거해버린 특이한 케이스라 약만 잘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나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 꾸준히 상담을 받아야 했다. 사회복지사는 나의 가정사에 대해 물었고 정신과 의사는 내가 겪었던 폭력에 대해 물었다. 그 무렵 나의 꿈에는 자꾸만 개미를 괴롭히는 어떤 아이의 뒷모습이 나왔다. 그 아이는 매직으로 개미 주변에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개미는 꼭 투명한 감옥 속에 갇힌 것처럼 그 원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아이는 개미가 죽을 때까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개미가 죽고 나서 그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선영의 얼굴이었다.

*

 지금의 나는 미용사가 되었다. 실력은 없지만 그래도 먹고 살만은 했다. 한 날은 가게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도 나를 알아보았다. 어머니의 머리를 다듬으면서 그녀가 고생을 많이 겪고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았지만 우리는 침묵했다. 서로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지 않는 것이 암문적인 규율로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머리 손질이 끝나고 계산을 하고 가려는 어머니에게 같이 살자고 했다. 어머니는 약간 놀란 듯했지만 이내 그러겠다고 했다.

 가게를 쉬는 날에 나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 왔다. 시골 한적한 곳에 있는 오래된 작은 집이었다. 하지만 둘이서 살기에는 충분했다. 집에서 어머니와 밥을 먹고 나서 나는 글을 쓰러 방에 들어갔다. 한참 글을 써 내려가고 있을 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집 앞에 뭔가 놓고 가는 소리 같았다. 밖에 나가보니 현관 앞에 상자가 있었다. 그 상자 안에 새하얀 강아지가 잠들어 있었다. 강아지의 털은 시리도록 희어서 그리운 누군가를 생각나게 했다. 강아지는 인기척에 깨어나 나를 올려다보았다. 강아지의 두 눈망울에는 낯익은 빛이 감돌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 집에 온 뒤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러자고 했다. 강아지는 우리가 한 말을 알아들었는지 신나는 표정으로 헥헥거렸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나는 항상 선영에게 전화를 한다. 요즘 그녀에게 전화를 할 때면 나는 항상 긴장을 한다. 다행히 오늘도 선영은 전화를 받는다. 우리의 대화는 여느 때와 같이 진행되다가 침묵 속에 빠진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내가 미용사가 된 사실, 시골집에서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된 사실, 그녀를 닮은 강아지를 키우게 된 사실을 말한다. 선영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고맙다고 답한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눈물이 떨어진다. 밀려오는 울음을 참느라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선영은 나에게 평소와는 달리 안녕이라고 말한다. 나는 겨우 대답을 하려고 하지만 전화가 끊긴다. 나는 거실에 나가 그녀를 닮은 강아지를 바라본다. 창밖에는 해가 떠오르고 새벽이 찾아온다. 시린 눈이 녹고 시퍼런 봄이 온다.

   
   
김민경(사회과학부)

 이번 가대문학상 투고는 저에게는 우발적인 일이었습니다. 사실, 마감 전날 오전까지 저는 소설의 초입도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무기력증에 빠져있던 저에게는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날 저녁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저는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썼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 첫 소설이 완성되었습니다. 어제 내린 첫눈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왜 그런 소설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그때는 알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소설 또한 저의 삶이자, 경험이자,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소설 속 두 아이의 아픔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도 어떠한 아픔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제 심장은 떨렸고, 저의 손은 지진계처럼 제 심장의 여진을 기록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는 조금이나마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순간의 경험은 제가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나가는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소설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퍼런 봄’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수상에 대해서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은 제 첫 소설에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 문학 정신의 지주가 되어주신 정창준 선생님, 오랜 시간 함께 있어 준 무거고 친구들, 제 글을 사랑해준 기숙학원 친구들, 좋은 독자가 되어준 문학개론 친구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저를 응원해주신 부모님께 이 자리를 빌려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안용희 국어국문학 교수

 이번 가대문화상 소설 부문의 응모자들에게 왜 소설을 쓰는지 물으면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 웬만한 정성이 아니고서는 힘들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먼저 그 한 걸음을 떼어놓았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그들 중 처절한 비상구로 문학을 택한 이도 있을 터이지만, 애석하게도 소설은 미디어의 일종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소설도 그 나름 미디어로서의 규칙이 있다. 응모작들이 보여준 날카로운 감각은 놀라웠지만 규칙의 세련됨을 소설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를 기준으로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네 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엄마는 멍청멍청 살아야지>는 장애라는 소수성의 문제에 치열하게 다가가고 있다.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의 시선을 따라감으로써 정서적 거리를 조정하려는 시도가 주목되는 한편, 비슷한 처지의 어머니들 간의 심리적 격차, 그리고 교회 신도들의 입장차이 등을 현실적으로 다룬 점은 문제의 복잡성을 형상화하고자 한 노력으로 비친다. 하지만, 인물들의 관계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극적 연출을 위한 도식적 대립으로 나아간 결말은 소설의 규칙을 다소 거칠게 다룬 것으로 보인다.

 반면, <검은 미로 속의 소녀>는 단순한 상황 설정이 두드러졌다. 이 소설은 ‘언제’와 ‘왜’, ‘어떻게’는 생략하고 ‘무엇’, ‘어디에서’만을 다룬다. 즉, 제목 그대로 ‘검은 미로 속’에서 ‘소녀’를 쫓는 인물만 등장한다. 이런 경우에는 주체(‘누가’)의 성격이 점차 구체화되든지, 아니면 ‘무엇’과 ‘어디에서’의 의미가 압도적이어야 하는데, 이것들의 구체화를 외면했다는 점이 아쉽다. 지금 20대가 처한 상황의 알레고리라는 해석도 가능하겠으나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다. 소설 미디어의 특성이 효과적으로 살아나지 못했다고 하겠다.

 주제의식에서는 <눈물의 악어>가 가장 꼽을 만했다. 동서양의 대가들이 다룬 죄의 문제를 전면화하면서도 이를 군대라는 한국적 상황과 연결했기 때문이다. 사격훈련 중 지나가던 누군가가 총탄에 맞아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음을 인지하기 전 자신도 모르는 어떤 느낌을 받는다, 마치 그것에 책임이 있다는 듯이. 하지만, 무게감 있는 소재를 골라냈으면서도 서술자의 기능 설정이나 인물 형상화를 위한 사건 배치 등에서 실패하고 있다. 소설의 변죽만 두드리다 미디어의 핵심을 간과하고 만 셈이다.

 <시퍼런 봄>은 헤어진 어머니와의 우연한 만남 등 기교적 미숙성에도 불구하고 수연과 선영의 관계가 약자의 연대라는 최근의 의제를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가정폭력에 닿아 있고, 여러 가지 상징을 통해 주제를 적절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난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소설 미디어에서 요구하는 서술자와 사건 구성을 적절히 고려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에 이 작품을 올해 가대문화상의 소설 부문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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