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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
[306호] 2018년 03월 21일 (수) 23:16:36 안보옥 교수 .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서가를 살펴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현악기가 지어내는 저음의 선율에 매료되는 나의 취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좀머 씨 이야기』, 『향수』, 『비둘기』, 『깊이에의 강요』 등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는 독일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모노드라마로 알려져 있다. 콘트라베이스의 연주자인 일인칭 화자가 관객들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의 이 작품은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의 속성, 오케스트라의 수직적인 조직체계 등 음악 전반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의 삶과 연애 문제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쥐스킨트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인 ‘익명성’, ‘소외’ 등을 중심으로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화자의 말에 따르자면, “현악기 중에서 가장 저음을 내는 악기”인 콘트라베이스는 “오케스트라의 악기 가운데 다른 악기들보다 월등하게 중요한 악기”이며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만 오케스트라 내에서의 서열은 가장 낮은 편이다. 게다가 콘트라베이스의 소리는 다른 악기들의 소리에 파묻혀 버리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음악 자체를 엉망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화자는 콘트라베이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확한 음을 끌어내기 위해 주위의 소리를 차단하고 방음벽이 설치된 방안에 틀어박혀 손가락이 짓무를 정도로 연습을 거듭하며 최선을 다해 아주 멋지게 연주한다.

그러나 아무도 콘트라베이스의 멋진 연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에 비해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는 화자는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마저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즉 오케스트라 내에서의 좁은 입지나 순조롭지 않은 연애 문제를 모두 거추장스러운 콘트라베이스 탓으로 여기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수직적인 조직 체계 속에서 콘트라베이스가 주목받을 기회가 전혀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빠진 화자는 이런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하며 오케스트라를 떠나버릴 궁리를 해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채 콘트라베이스를 지속해서 연주할 가능성이 없는 현실에서,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는 공무원 신분이 보장해주는 안정적인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 직면하게 될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화자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망설인다. “오케스트라의 구성과 조직체계가 인간 사회의 모형”이라는 화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의 불안감과 고뇌는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가 겪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콘트라베이스』가 꾸준하게 독자와 관객에게 사랑받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성공적으로 연주되기 위해서는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마다 내는 독특한 소리가 전체의 음악 속에 녹아들어 하모니를 이뤄야 할 것이다. 각 악기마다 저마다의 음색을 드러내 보이겠다고 과장된 음량으로 연주하거나 조화를 깨는 음을 낸다면, 또한 모든 악기들이 화려한 독주로 돋보이는 악기의 음색을 모방하려고 한다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케스트라에서는 화려한 독주를 하는 악기나 콘트라베이스처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악기 모두가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독주곡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악기라고 다른 악기를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관심과 인정이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발전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으니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존재가 진정으로 빛나는 순간은 각자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인정할 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소리를 찾아내 아름답게 만들려고 애쓰기보다는 주위의 다른 이들이 내는 소리를 모방하느라 힘들어하며 초조해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특별히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소리가 아니더라도 우리 각자의 진정한 소리는 소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으로 만들어가야 할 소중한 것이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묻혀있는, 콘트라베이스 음처럼 잘 들리지는 않지만, 자신의 삶에 토대를 만들어주는 소리를 찾아내 보고, 내면 깊은 곳에 귀 기울이며 묵직한 소리의 향연을 꿈꿔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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