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 오명진 기자
  • 승인 2018.04.27 17:04
  • 호수 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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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좀 하고 살아라. 사안의 경중을 막론하고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엄마 아빠에게 들었다. 심지어는 칭찬받을 상황에서도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칭찬할 상황이면 칭찬만 하면 되지, 꼭 저 말을 덧붙여 내 심기를 건드리나 싶었다. 특히 엄마의 말은 더욱 가시가 되곤 했다. 이건 엄마 성격상 아빠보다 거칠게 말을 하는 편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그 말이 더는 가시처럼 들리지 않았다. 엄마 아빠의 진심 어린 소원대로 생각 좀 하게 된 것일까. 병아리 눈물 만큼이지만, 나도 사안의 경중을 막론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취재원이 날 보고 도망갔다. 마주치기 약 5일 전이었다. 당시 그 취재원은 인터뷰 질문에 회의 후 답하겠다고 했다. 계속 기다렸으나 끝내 답은 오지 않았다. 정황을 파악해보니 인터뷰 질문 속 언급된 사람이 취재원과 친분이 있었다. 팔은 정말 안으로 굽는구나 했다. 그 팔이 도덕적이든, 그릇된 관점을 가지고 있든, 죄의식이 없든, 아무 생각이 없든, 악습에 절어 있든 간에 말이다. 물론 몸 자체 구조가 안으로 굽힐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또 이에 따른 결과가 행동하는 자의 온전한 선택임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도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해 비판할 수 있다. 팔을 꼭 안으로 굽혀야만 하나. 때에 따라서는 꼿꼿하게 세워야 하지 않나. 팔을 굽히고 굽히지 않고는 뇌의 명령에 따른 것인데. 뇌가 명령해야 신체가 움직인다는 것은 중학생도 안다. 그렇다면 앞서 제시한 경우를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내 팔이니 내 쪽으로 굽히는 게 맞지”라고 웅얼대는 것은 “난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라고 해석하고 싶다.

이번 호에서는 보도부 기자들이 참 고생 많았다. 가장 많이 회의했고, 가장 많이 자료 조사를 했으며, 가장 많이 개인 시간을 투자했다. 어쨌거나, 이들과 함께 정했던 이번 호 주제는 ‘총학 연대기’였다. 작년 최초로 전 단위 후보자가 부재했던 본교, 선거 한 번씩 치를 때마다 점차 무너지는 학생사회, 개봉 선에 본드를 바른 것인 양 쉽게 열리지 않는 투표함.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들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20년간 총학 관련 자료를 모조리 분석하고자 했다.

연대기 기사를 맡은 보도부 김신규 기자는 주말에도 나와 학보를 뒤적거렸다. “진짜 다 뒤졌다. 기사까지 일일이 다 읽어서 그런가, 학보사의 역사가 내 안에 들어온 느낌이다.” 김신규 기자의 소감이다. 당사자가 알지 모르겠으나, 나는 연대기를 담당한 김신규 기자에게 매번 응원의 말을 보냈다. 혹여나 이 기사를 발행한 뒤 학보사에서 도망칠 것을 우려해 응원한 건 아니다.

지난 한 달 이래저래 일이 많았다. 보궐선거가 치러졌으며 총학과 사회대 선거는 재투표까지 진행됐다. 익명 SNS 에브리타임에서는 3월 중후반 “교수님 미투로 농담하지 마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학생의 공감을 샀다. 글 내용은 제목과 일치했다. 동아리 군기, 기수문화, 족보문제도 에브리타임을 뜨겁게 달궜다. 새내기들은 처음 맞이하는, 재학생들은 여느 때와 같이 맞이하는 중간고사도 끝났다. 원래대로라면 나와 같이 대학에 입학했을 얼굴 모를 그 친구들이 떠나게 된 참사는 어느덧 4주기다. 이에 맞춰 영화 <그날, 바다>도 개봉했다. 팩트로 가득 찬 다큐멘터리다.

학보사에서도 큰일이 있었다. 3월 말일 기준으로 26기 수습기자 모집을 마감했다. 21명. 내가 학보사에 들어온 이래 역대 최고 지원자 수였다. 4월 초 진행된 1차 작문, 2차 면접을 거쳐 7명이 최종선발 됐다. 지난 학기 ‘정기자가 된 수습들의 소감’을 브리핑에 실은 적이 있다. “브리핑에 실으려 하니 소감들 좀 말해 달라”하니 굉장히 재밌어하는 듯 보였다. 이번에는, 새 수습기자가 된 파릇파릇한 그들의 좌우명을 실으며 글을 마친다. 학보사에서 최선은 다해 필요한 사람이 되어 좋아하는 모든 것을 하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당신들의 루트를 개척하길 바란다.

고유정(법정경학부·1) “필요한 사람이 되자.” 김다빈(법·2)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자.” 김예진(물리·2) “최고가 되기보다 최선은 다하자.” 박서연(법정경학부·1) “나만의 루트를 개척하자.” 이수진(인문학부·1) “DO IT WHAT YOU LOVE.” 임윤아(법정경학부·1) “하고 싶은 건 다 하자.” 장현진(법·2)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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