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도 ○학기 중간고사 <○○○> ○○○ 교수님.hwp
○○○○년도 ○학기 중간고사 <○○○> ○○○ 교수님.hwp
  • 오명진 기자
  • 승인 2018.04.27 17:52
  • 호수 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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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비밀리에 전해진 '선배님의 유산'

지난 3월 말 ‘생명환경학부 학술부 족보 고발’ 사건으로 익명 SNS 에브리타임 게시판이 들끓었다. 한 학생이 ‘선배님들의 유산’이라는 학술부 게시판 속 족보 자료를 캡쳐해 올린 것이다. 글쓴이는 게시글에서 사진 자료와 함께 “한 끗 차이로 족보 본 **은 장학금 받고, 족보 안보고 그저 열심히 했는데 밀린 **은 장학금 못 받으면 상당히 억울하겠지?”라고 했다. 게시물은 좋아요 49개를 받아 화제가 됐으며, 학내 가장 공론화된 족보 관련 논란 사례가 됐다.

한편, 생명환경학부 학술부 족보 논란은 작년 11월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제보자는 “생명공학, 생명과학, 환경공학 순으로 족보 문제가 심각하다”며 “사실 족보가 없다 해서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 계산 문제가 많으면 수식 과정을 이해해야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개념과 이론을 서술해야 하는 문제가 족보 영향을 많이 받으며, 학술부 사람끼리만 족보를 공유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 생명환경 학술부 게시판 캡쳐 사진

현재 생명환경학부 학술부는 2018 대표자 부재로 폐지된 상태다. 하지만 에브리타임 논란이 불거지자, 작년 학술부 부장 박단비(생명공학·휴) 학생이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박단비 학생은 “이번 문제들에 대해 사죄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의도가 어떠하였든 간에 학술부에서 시험이 끝나면 족보를 만들어 공유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인정했다. 또한 “족보로 새내기들의 가입을 권유한 것도 맞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오길 바라면서 홍보하였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마치 장점인 듯 여긴 것에 정말 죄송함을 느낀다”고 했다. 족보 파일이 올라가 있던 싸이월드 클럽, 네이버 카페는 전체 글 삭제 후 비공개로 전환됐다.

주동자가 개인이어도 피해 발생한다
족보 공유 문제는 특정 단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한 학부의 전공 주요 프로그램 수업을 들은 제보자는 “6~70명 정도 되는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을 듣는 학생 절반이 복학생이다. 그런데 복학생들이 전에 해당 수업을 들었던 고 학번 동기에게 족보를 받아 공부하더라. 그리고 A+, A0를 차지해버린다. 과목 특성상 자기 생각을 서술하는 문제가 아니어서, 어느 부분이 출제되는지 미리 아는 학생에게 상당히 유리한 구조다. 연줄이 없는 사람들은 족보 얻기가 힘들다”고 했다. 또한 “중고등학교보다 공정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는 선생님들이 알아서 검수하고, 전년도 문제와 겹치지 않게 검토하지 않나. 그런데 대학은 똑같이 내도 아무 말 없으니까. 너무 속상하다”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제보자의 지인은 해당 교수에게 직접 이의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다. 제보자는 “교수님과 친한 선배가 ‘교수님 수업에 족보가 있습니다’라 말씀 드렸다. 당시 교수님도 알겠다 하고 넘어가셨는데, 다음 시험에서 문제가 족보와 똑같이 나왔다. 교수님이 알고 계셨음에도 왜 안 바꾸셨는지 궁금했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공론화로 시작된 족보 문제, 학내 구성원 모두가 자정해야
이준구 서울대 교수는 2009년 정시 합격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족보를 언급했다. “학점이 나빠도 좋으니 진취적으로 공부하라. 족보에 의존한 공부보다 책을 광범하게 읽어 식견을 넓혀라.” 이 논리에 따르면 족보는 단순주입식 교육의 폐단이자, 최소노력 최대결과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잘못된 현상이다. 앞서 언급한 에브리타임 고발이 기억나는가. 꽤 많은 학생은 생명환경학부 학술부를 고발한 글쓴이에게, “족보 좀 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요청 쪽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이는 글쓴이가 쪽지 캡쳐로 다시 글을 올려 알려졌다. 이에 다른 학생들은 “제발 성인으로서 마땅하게 행동하자”며 비판했다.

지금까지 본보가 인터뷰한 학생들의 주장은 일맥상통했다. 그들은 “몇 명한테만 공유되는 시스템은 공정하지 못하다”, “교수님들이 ‘족보가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치는지 아셨으면 한다”, “문제 어구마저, 빈칸 위치마저 똑같은 것은 문제를 그대로 낸 것이나 다름없다”, “학생이 이런 의견을 교수님께 직접 제시하기 어렵다”며 현실에 맞닿는 문제들을 지적했다.

한편, A교수님의 수업 방식이 족보 논란에 대한 이상적 해결방향이라 소개한 학생도 있다. 조덕현(수학·4) 학생은 “족보는 치트키(Cheat-key)다. 아는 사람끼리 공유하면 그만이다. 족보를 막을 수 없다면, 교수님께서 기출문제처럼 사용하라는 의미로 공개하고 평소 수업 중 강조한 부분에서 시험을 출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했다. 또한 “A교수님 수업이 그러한데, 이 수업 학생들은 열심히 참여하며 준비하더라. 그만큼 학생들이 공정하다 생각하여 점수에 수긍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구조적 차원의 주도적인 관여도 필요해 보인다. K교수는 “족보가 한 두 사람의 사건을 다룬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학생과 교수를 대상으로 하는 ‘족보에 대한 인식·실태조사’가 좋은 방법일 듯하다. 이것만 한다 해도, 족보 문화에 대한 반성의 계기, 잘못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며 “교수에게만 혹은 일부 학생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결국 이번 족보 논란은 학내 구성원 모두의 노력을 합쳐야 해결점이 찾아질 것이다. 침체된 교육 방식 아래서는 그를 답습하는 학습 방식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고인 물은 그 옆에 새로운 물길을 뚫어야 제대로 흐르는 것이 당연하다. 공론화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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