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연대기(3. '총학생회장을 만나다')
총학연대기(3. '총학생회장을 만나다')
  • 김신규 기자
  • 승인 2018.04.27 18:35
  • 호수 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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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대 총학생회장 김경용

2010년에 평균 50%를 유지하던 총학 선거 투표율이 점점 하락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총학에 대해 무관심하던 시절, 묵묵히 23대 총학생회장 역할을 해낸 김경용(사회·졸) 씨가 있었다. 그는 최초로 본교 생리공결제도 공식화를 주장했으며, 학생과 총학 간 적극적인 소통을 행하려 노력했다.

이에 본보가 그와 함께 총학 활동에 대한 경험과 ‘불통’ 등 현재 총학 관련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 총학과 본교 학생들이 해야 할 일’을 언급하기도 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글 말미에는 기자의 개인적 인터뷰 소감을 달았다. 이는 ‘인터뷰를 마치며’로 표기했다.

Q1 총학생회장을 하던 당시 총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는 어떠했나?

: 관심이 높았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비단 본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재학하던 2000년대 중반에도 많은 대학생들이 총학생회와 대학사회에 무관심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학교 상황보다는 그 당시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때는 사회적으로 대학사회가 고등교육과 관련한 이슈를 주도하는 흐름이 잔존하던 시기였다. 총학생회의 존재감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또 2009학년도 본 선거는 본교 총학생회가 경선구도로 치러졌고, 뒤이은 2010년에도 경선이었다. 다수의 학생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선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기에 ‘나 때와 같은 관심은 좀 덜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Q2 역대 총학생회의 공약을 살펴보면 학생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공약들이 많다. 그만큼 총학생회장의 소통 노력이 중요하다는 얘기인 것 같다. 당시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 역설적이게도 SNS와 스마트폰이 대규모로 보급되기 직전이어서 소통하기 좀 더 용이했다. 싸이월드(가톨릭대를 좋아하는 사람들), 총학 홈페이지 등 학내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총학은 수시로 학생들의 고충처리를 위해 모니터링을 했고, 사소한 문제에도 답변하는 태도를 보였다.

2학기에는 총학 사업평가를 본교 공간 한쪽 벽면에다 가득 채웠다. 해당 내용은 온라인상에도 게재했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다수의 학생들이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다만 지금의 상황은 무척 다른 것 같다. 다양한 종류의 SNS 채널들(예를 들어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이 생겼다. 이러한 다대다 소통구조 채널들이 생겨 학생기구는 학교 구성원에게 매우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 학생들이 선택적으로 정보를 취급하게 되었고, 이는 총학생회가 갖는 정보의 전파력과 수집력을 극도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소통 부재는 총학생회·단과대·학부·학과 학생회 기구 모두와 연결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각 학생회의 네트워크가 사실상 붕괴되고 있어 의견 수합이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향후 총학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학생들 역시 적극적으로 먼저 소통에 참여해야 한다. 출마자들에게 필요한 것들 중 하나가 ‘현재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주장하거나 ‘총학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Q3 23대 총학에서 처음으로 생리공결제도 공식화에 대해 공약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총학이 임기 중 생리공결제도와 관련하여 활동했던 것이 24대 총학의 사업 마무리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총학 후보들의 공약이 쳇바퀴 돌 듯 반복된다는 선입견 속, 생리공결제도 같이 참신하면서도 필요한 공약은 분명 존재한다. 23대 총학은 그러한 공약을 어떤 식으로 찾았는지 궁금하다.

: 현재 학생사회 혹은 대학공동체가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큰 관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교내 문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다양한 종류의 견해를 수합해야 한다. 교육부의 정책방향, 시민사회단체의 교육개혁방안, 언론에서 주목하는 교육 관련 오피니언 등을 두루 보면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이를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는데, 결론이 반드시 개혁적이거나 혹은 진보적일 필요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내 구성원들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마련돼야 차후에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상호간 설득 근거도 마련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돌아가면, 젠더, 주거 같은 거시적인 주제 속에서 공약을 찾다가 본교에 젠더이슈 키워드를 적용하게 되었다. 본교의 경우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학부 구성원 중 여성 비율이 80%에 육박할 때도 있었다. 또 교정은 다르지만 간호대의 경우 거의 학생 전원이 여성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가지는 요구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체적인 흐름과 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종합했을 때 생리공결제도 같은 복지제도가 이슈화되기에 적정했다.

간호대 학생회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 학내에서 1천명 이상이 참석했던 외부 명사 초청 강연(김제동씨로 기억한다)때 참가 학생들로부터 생리공결제와 관련한 300-400명의 의견을 모았다. 지금처럼 젠더이슈에 대한 갈등이 첨예하지 않았기에 대다수 남성들에게서도 우호적인 답변을 얻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실제 국내에서 생리공결제도를 시행하는 타 학교의 규정 등을 종합하여 본교에 제안서를 보낸 뒤 교섭을 진행했고 이듬해부터 시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Q4 시기에 상관없이 총학생회장이 임기 동안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나. 한 가지만 뽑는다면?

: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먼저 학생회를 경험했던 선배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서 공감하는 내용이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과 ‘책임감’이다. 다시 말하면 판단력과 책임윤리 정도가 될 것 같다.


Q5 이전 총학(22대)과 공약 면에서 인수인계가 잘됐나? 임기를 마친 후 24대 총학 당선자에게 이행하지 못한 공약에 대한 자료 등을 인수인계했는지도 궁금하다.

: 22대로부터 비교적 온전한 형태의 업무 진행 파일을 전달받았다. 선대에게 자료를 잘 전달받기 때문에 24대로 업무를 인계하는 부분은 매우 신경 써서 진행하려 했다.

먼저 이전까지 총학생회실 한 구석에 놓여있던 자료들을 연도별로 나누어 정리했다. 목표는 데이터베이스화였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었기에 미완에 그쳤다. 그래서 짧은 총학 백서를 제작해 전달했다. 백서에는 본교 학생원동 흐름과 총학생회 활동 관련된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외에도 한차례 24대 총학생회 당선자와 학생회 국장 내정자들을 모아 짧게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래도 인수인계 과정에 미흡함이 있었다고 본다. ‘좀 더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총학생회실에 쌓여있던 사진자료를 비롯한 영상자료까지 데이터베이스화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데이터베이스화는 꼭 필요하다. 향후 총학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가지고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 답변서를 받고 나서, 당시 총학이 부족했던 것이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인수인계가 조직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서 데이터베이스화가 힘들다”는 그의 말, 그리고 생리공결제와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뇌리에 남는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 총학의 중요한 자질로 보인다. 실현성 없는 공약을 붙잡지 말고, 할 수 있는 공약들에 집중해서 완수하는 것. 앞으로 나올 총학이 행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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