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네 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유령 연구를 위해 자신의 열정을 바친다. 패티의 경우 지루한 매표원 자리를 박차고, 그녀를 매료시킨 유령을 쫓기 위해 고스트버스터즈에 합류했다. 에린은 정장 차림의 종신 교수직을 포기하고, 철도노동자 차림의 유령 소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애비와 홀츠먼은 이전부터 꿋꿋하게 유령연구에 열정을 쏟으며 살았다. 물론 그들의 열정은 주류 사회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한다. 주류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언론과 SNS는 논리와 상식, 데이터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활동을 사기로 매도한다. 그들은 아랫집 음식 배달원에게 무시당하고 길거리의 추레한 행인에게도 사기꾼이라 조롱당한다. 특히 주인공들의 연구와 활동이 진짜라는 것을 알고도 권위로 억누르는 정부는 얄밉기까지 하다. 영화는 그렇게 그녀들의 꿋꿋한 성장을 비추는 동시에, 관객에게 불편한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한편, 이 영화의 악역은 심지어 주인공들보다도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이다. 영화 중반, 그는 하필 주인공들에게 무시당한 삶의 가치를 묻는 절규를 외친다. 웃프게도 비주류로 살아왔던 주인공들은 그 절규를 받아주지 못한다. 그의 한 맺힌 치밀한 절규는 뉴욕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지만, 기존의 보수적 체계는 그 보수성이 잉태하고 있던 경직성으로 인해 가사상태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무지와 조롱을 견뎌왔던 유령 소녀들은 언제나 그래왔듯 꿋꿋하게 서서 그 위기를 박살 내버린다.
나는 이 영화가 젠더 미러링 영화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상업영화에선 관객에게 쌓인 감정을 잘 해소해주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데, 이 영화는 중요한 그 부분에서 부조리를 똑같은 폭력으로 처단하는 미러링 방식을 배격한다. 대신 영화는 ‘I♥GB’라는 네온사인이 가득히 빛나는 뉴욕을 울먹이며 바라보는 주인공들을 비춘다. 영화는 미러링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자아를 실현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으로 씩씩한 모든 비주류를 응원하며 관객의 감정을 해소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