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서적 비싸" ···제본 택하는 학생들
"전공서적 비싸" ···제본 택하는 학생들
  • 김다은 기자
  • 승인 2018.05.22 11:18
  • 호수 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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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5월 10일부터 14일까지, 5일 동안 <가톨릭대학보 저작권법 학생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은 제본행위(PDF파일 인쇄, 교재 복사 단, 스프링 철을 하는 것은 제한다)와 저작권법에 관련한 가톨릭대 학생 인식을 알아보고자 실시됐다. 설문에는 총 425명 학생이 참여했으며, 이중 제본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를 선택한 응답자는 71%(305명)였다. 반면, ‘아예 없다’에 응답자는 28%(120명)로 약 2.5배에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설문 결과, 제본 경험이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제본이 저작권법에 위반됨을 알고 있었다. ‘교내 복사점이나 학교 주변 인쇄소에서 교재를 복사하는 행위가 불법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불법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58%(249명)에 달했다. ‘잘 모르겠다’는 30%(131명), ‘불법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10%(45명)로 나타났다. 응답학생의 절반이상이 제본을 불법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계속 제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못된 건 알지만...
교내 복사실이나 학교 근처 인쇄소에 한 번이라도 제본을 해본 경험이 있는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해당 문항은 복수로 최대 2개까지 선택이 가능했다.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문항 1위(48%)는 ‘비용 절감 효과가 있어서(204명)’였으며, 2위(36%)는 ‘교수님이 애초에 교재를 제본된 것으로 구매하라 해서(157명)’로 집계됐다. 2위를 차지한 문항은 교수가 직접 교재를 PDF 파일로 자체 제작했거나, 논문 혹은 전공서적 일부를 발췌해 만든 경우를 포함한다. 다만 도서관 자료의 경우, 전체분량의 1/3이하로 부분복사를 해야 저작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비용 절감 효과가 있어서’ 문항을 고른 응답자들은 ‘비싸다고 생각하는 전공서적의 가격’에도 답하였다. 결과는 ‘2만원 이하~3만 원 미만 19%(84명)’와 ‘3만 원 이하~4만 원 미만 19%(81명)’였다. 즉, 전공 서적의 가격이 평균 3만 원을 호가한다는 수치다.

해당 항목의 설문결과와 실제 전공서적 평균가의 일치정도를 조사했다. 교내 17개 학과에서 대표적으로 쓰이는 전공 서적을 한 권씩 선별해 정가의 평균값을 내보았다. 전공서적 17권 평균가격은 약 29,550원으로 나타났다. 3만 원의 전공서적이 학생들에게 실제로도 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가의 전공서적 가격은 학생들이 불법복제에 다가가도록 등 떠밀고 있었다.


괜찮아, 중고책이야
본교에서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국제학부 학생회는 매 학기 ‘책 물려주기’ 행사를 진행하여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책을 기부하도록 유도한다. 전성표(국제학부‧3) 학부장은 “매 학기 초 지속적으로 실시해오는 행사다. 이번 학기에는 책 기부 학생에게 소정의 상품을 지급했다. 평소 전공 서적에 대한 학생들의 높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행사에 참여한 연수연(국제학부·1) 학생은 “교재는 물론이거니와 후배를 위해 선뜻 기부한 선배들 마음이 고마웠다. 전공 서적을 비싼 값에 구매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부담이 덜했다. 수업시간에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러한 학과 행사 외에, 본교 학생들이 접할 수 있는 중고 거래의 장은 무엇일까. 바로 익명 SNS 에브리타임 ‘책방’ 게시판이다. 현재 책방 게시판에는 500개(제본한 서적과 일반도서는 제외)이상의 중고 서적 판매 글이 올라와 있다. 게시글에 제시된 전공 서적 가격은 정가보다 44%가량 낮았다. 만약 이곳을 적극 활성화한다면, 학생들의 전공 서적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

교외에서도 고려대학교(이하 고려대) 학생들은 전공 서적 직거래 서비스 어플 ‘책잇!’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중고 서적을 사고판다. 이는 고려대 대표 커뮤니티 ‘고파스’에서도 마찬가지다. 타 대학교 학생 간 전공 서적 중거래 역시 가능해졌다. 전국 대학생 중개 서비스 어플 ‘북딜’의 이용자들은 필요한 책을 절반 이하 가격(3~5만 원→약 1만 원)에 합법 구매할 수 있다.


제본이 나쁜 건가요?
다시 한 번 제본이 나쁜 거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제본 행위는 명백히 저작권법에 위반한다. 다른 이가 피, 땀, 눈물을 흘려 만든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저작권법 제 136조(벌칙)는 “법에 따라 보호되는 창작물을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침해”할 경우를 불법으로 명시한다. 이 조항을 어긴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병과(동시에 자유형과 벌금형에 처함)할 수 있다. 저작권을 침해하면 그에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12일에 보도된 EBS NEWS에서 상명대학교 김종원(크리에이티브 콘텐츠랩) 교수는 “교재 저자들이 교재를 기증하거나, 출판사에서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재들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식으로 학생 교재비 부담을 줄여야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출판사가 저자들의 동의를 얻는다면, 기존 전공서적을 절반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매 학기 초가 되면 ‘저작권 도둑’이 되길 자처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도 사정은 있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3백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야한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나면 강의를 듣기 위해 또 고가의 전공서적을 사야한다. 올해 최저 시급은 7,530원이다. 한 권에 3만 원을 호가하는 전공서적 가격은 학생들의 하루 아르바이트 4시간과 같다. 6권의 전공서적을 구매하려면 꼬박 하루를 일해야 하는 것이다.

대외활동, 봉사활동, 학교 과제, 시험공부로 바쁜 학생들에게는 24시간도 모자라다. 3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전공서적만이라도 합법적으로 싼 값에 구매할 수 있다면, 학생들은 ‘저작권 도둑’이라는 옷을 벗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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