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필요한 질문을 가장 유쾌한 오락으로 - <레디 플레이어 원>
가장 필요한 질문을 가장 유쾌한 오락으로 - <레디 플레이어 원>
  • 김정년(국문·휴)
  • 승인 2018.05.22 11:44
  • 호수 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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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생각해보자. 굳이 깜깜한 방에 들어앉아 스크린을 물끄러미 바라봐야 하는 까닭을. 왜 하필 영화일까. 우리네 삶에 영화가 깊숙이 파고든 까닭이, 영화에 매료되는 이유가 무엇일지.영화감상의 마땅함을 따져본다. 일단 ‘영화’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것, ‘영화’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흥을 쫓아가자. 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을 구현한 영화. 나는 정확한 예시로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을 끌어들이고 싶다.

 

 

19세기 말, 영화가 갓 태어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뤼미에르 형제가 <열차의 도착 >(1896)을 틀자 몇몇 관람객은 혼비백산 도망간다. 기차가 스크린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진짜로 여겼기 때문이다. 백여 년이 흐르고 나서도 영화는 계속 가상을 진실로 여기게 만든다. 나는 <인터스텔라>(2014)를 IMAX 상영관에서 봤을 때, 우주선이 블랙홀로 진입할 때 느꼈던 황홀함을 여전히 몸에 간직하고 있다. 가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을 때 얻는 감흥.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그것을 최신-최선의 영화양식으로 구현한다. 

영화는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아 가상과 현실을 뭉갠다. 헛것이라 하긴 손에 쥘 듯 실감 나는 화면. 화면 안을 열심히 들여다본 시간. 시간이 빚어낸 판단. 그렇게 영화에게만 허락된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그렇게 우린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이렇듯 영화 자체가 세련된 기술로 가상과 현실을 뭉개며 황홀한 체험을 안겨주는데,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앞으로 인류가 가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세계에 산다면 넌 어떻게 살래?” <레디 플레이어 원>은 현실을 등지고 가상세계에 심취한 사람들이 모여 산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전 세계가 동일한 가상세계를 탐닉하며 살게 된 모습을 상상한다.


 
마침 요즘 VR 방이 온 나라 번화가에 유행하기에, 영화에 제시된 세계는 제법 낯설지 않다. 정말 있을 법한 미래요, 실제로 우리는 이미 ‘가상과 현실’이 뒤섞인 세계를 살고 있다. ‘SNS 페이지를 운영하는 나’, ‘인스타그램에 저장된 나’는 얼마나 현실과 다른가? 관객은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가상과 현실’이 파괴되기 시작한 시대의 인류로서 몇십 년 뒤 예상미래를 바라본다. 영화가 보여준 이야기를 따라간 관객에게 윤리적 물음이 싹튼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 담긴 풍부한 대중문화 떡밥이나 작중에 설계된 가상현실게임에 대한 논의를 잔뜩 이어가도 좋겠으나, 지면에 한계가 있어 생략한다. 참 지지하고 싶은 구석이 많은 영화다. 그럼에도 입이 근질거려 딱 하나만 더 적어둔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을 가장 유쾌한 오락으로 체험케 한다. 이것은 오늘날 상업영화가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필수조건이자, 위대한 영화에 깃든 공통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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